영아기에 잠깐 조부모 댁에서 살다가 돌아왔을 때 나는 부모의 얼굴을 알아보거나 반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일곱 살 때부터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기억상으론 나도 눈을 마주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은 본능적으로 눈맞춤을 거부했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생활기록부를 살펴보면,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으며 항상 경직된 모습으로 생활함’이라고 적혀 있다. 이러한 징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모님이 정신적 장애에 무지했기 때문에 나는 정신과에 가지 못했고, 진단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학교생활에서 나의 이러한 특성들에 대해 어떠한 배려도 받지 못하고 비장애인 아이들과 같은 교실에서,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받았다. 당연히 학교생활은 괴롭힘의 연속이었다. 부정적인 상황을 한번 겪으면, 그 상황을 일일이 뇌에 입력해서 다음에는 그러지 않는 방법으로 사회 적응 훈련을 혼자 해나가려 노력했다. 그렇지만 어떤 노력을 해도 부정적 반응만 왔기 때문에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신경다양성 단체 ‘세바다’ 활동을 하고 다른 신경다양인들과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내버려 두었던 나의 과거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과거로 돌아가서 정신과를 간다면 나는 자폐나 그에 준하는 진단(신경다양성에 관련한)을 받을 수 있었을까? 나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고, 나의 그런 성향이 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게 그러한 ‘장애’가 있었는지를 확신할 수 없다.

그나마 최근에 대학병원에서 나에게 자폐 성향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으나 주치의가 성인 자폐 전문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마저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정신과에 한 번이라도 갔다면, 정신과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면, 그래서 나의 특성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었다면, 그래서 학교생활에서 어떠한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면…. 그러면 나의 삶은 조금이나마 더 좋게 바뀌었을까?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의문은 머릿속을 뱅뱅 돌면서 원망을 남겼다.

물론 어릴 때 진단을 받는다고 해서 당사자의 삶이 꼭 행복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영유아기나 아동기에 진단을 받은 당사자의 일부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치료’에 노출된다고 한다. 또한 ‘도움반(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을 부르는 멸칭)’ 딱지가 붙어 더욱 심한 괴롭힘을 당하는 당사자도 있다. ‘내 아이가 발달장애인이 아니라면’, ‘내 아이의 발달장애가 사라질 수 있다면’이라고 생각하는 양육자에 의해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는 당사자의 이러한 아픔에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특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 특성으로 인해 집단괴롭힘과 수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과 자신이 어떠한 특성을 가졌는지 분명하게 이해하고 구체적인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진단명이 없었던 나는 왜 내가 괴롭힘을 받는 건지, 왜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건지 알 수 없어 괴로웠다.

진단명이 당사자의 수많은 특성과 고민을 단 한 단어로 뭉뚱그리는 부작용도 있으나, 당사자의 특성을 명쾌하게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일단 한번 특성을 이해한다면 그에 맞는 배려와 도움을 구하는 일은 쉽다. (특수)교사들은 진단명에 따라 각 학생을 어떻게 대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훈련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단명은 곧 정체성이 된다. 진단명이 나의 전부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진단명이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무수한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 삶의 어떠한 부분과 연결된다. 정신적 장애는 나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짓는 요인 중 하나이다. 따라서 정신적 장애 진단은 나를 정의하는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정신적 장애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아가 한층 성숙해지기도 한다.

물론 앞에서 얘기했듯 진단명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으며, 학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학대는 정신적 장애인의 특성에 대한 무지와 경멸에서 시작한다. 진단명 때문에 학대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특성 그 자체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생긴다.

진단을 받지 않더라도, 정신적 장애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한국에서 결국 학대와 괴롭힘은 생길 수밖에 없다. 자신의 특성과 진단에 대해 이해한다면, 그러한 학대와 괴롭힘에 대처할 방안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을 키우는 모든 양육자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아이가 다른 이들과 조금이라도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교사 등 다른 관계자가 정신과 진단을 받길 권유한다면 아이를 정신과에 데려가 진단만이라도 받게 했으면 좋겠다.

실제로 진단을 받게 된다면 마음이 아플 수도 있다. 그러나 진단을 받는 것은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첫걸음이며, 아이와 그의 특성에 적합한 환경을 구축하는 일의 밑거름이 된다. 나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진단을 받는 것이 아동기뿐만 아니라 성인기 이후의 삶에 있어서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진단받으라. 당신과 당신의 아이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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