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순 수도권에 쏟아진 역대급 폭우로 지하방에 거주하던 입주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서울시가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놨다.

지하방 거주자에게 월세 지원, 보증금 무이자 지원, 임대아파트 공급 확대 등 폭우에 취약한 지하방 거주자들의 주거지를 지상으로 유도하겠다는 것이 핵심이지만, 환영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큰 듯 보인다.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1인 가구이자 장애인의 입장에서 서울시의 지하방 일몰 정책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을 합해 “지옥고”라고 부른다. 그중 고시원이 가장 나중에 언급된 것은 열악한 환경 중에서도 거주지로서 누릴 수 있는 개인적인 사생활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하방과 옥탑방의 경우 날씨와 주변 환경에 따라 각각 단점이 존재하지만 집 안에서 마음 놓고 TV를 보거나 전화통화 혹은 가족이나 지인을 초대해 이야기를 하는 등의 사생활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그러나 고시원의 경우 좁은 건물 안에 수십개의 방을 사이에 두고 각각 거주하기 때문에 조금 전에 언급한 개인 생활을 누리기에는 불가능하다.

간혹 방송에서 고시원 입주자들과 나누는 인터뷰 영상을 보면 “고시원이라 방음이 안 되기 때문에 조용히 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고시원 거주자들이 고시원은 집이 아니라 잠만 잘 수 있는 곳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하방 거주자들이 옮길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되는 곳 중에는 옥탑방도 있지만, 옥탑방은 비장애인들에게만 접근이 허락된 주거 공간이다. 오래된 사다리 혹은 좁은 계단이 옥탑방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옥탑방은 그림의 떡이 된 것이다.

지하방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하면, 그곳에 살던 장애인들이 개인 사생활을 보장받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민간주택은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고시원을 선택하려 해도 기존 지하방 거주자들이 저렴한 월세를 찾아 고시원으로 이동할 경우 고시원의 월 임대료가 상승하는 풍선효과도 우려된다.

우리나라 철도의 여객 객차를 견인하는 기관차는 대부분 전기 기관차로 바뀌게 되지만 단전, 전쟁 등 국가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기존에 운행하던 디젤 기관차 중 일부는 남겨 두겠다고 한다.

경우는 다르지만 준비 없는 지하방 일몰정책으로 인한 고시원 등의 임대료 증가 때문에 소득 취약계층에게 더 큰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러한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방안을 먼저 세우고 섣부른 정책보다 멀리 보고 천천히 준비하는 지하방 일몰정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취약계층은 골다공증을 가진 뼈와 같아서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취약계층에서 극빈층으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