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하순이 되자 밤에는 풀벌레 소리도 들리고, 한낮 햇볕이 뜨거워도 가을 문턱에 있음을 알려준다. 올해 추석이 다른 해에 비해 빠른 것으로 보아 가을도 더 빨리 오겠지. 계절을 바꾸는 것은 비인 것 같다.

두 계절이 겹쳐 공기의 기온 차가 생겨 비가 내리는 것인지, 책을 넘기면 장이 바뀔 때마다 빈 페이지가 나오듯이 비가 계절 사이에 끼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절은 비라는 터널을 사이에 두고 있어 그 터널을 지나면 계절은 변해 있다. 이제 비가 한 번만 더 오면 완연한 가을이겠지.

고경명은 조선 숙종 때부터 선조기에 살았던 문인이자 의병장이다. 1200여 편의 시를 제왕집에 남겼다. 서인으로 성균관에서 일하다가 좌천되어 지방 영호남 여러 곳에서 군수직을 맡았다. ‘유서석록’이란 산행기록을 남길 만큼 등산에 취미가 있었고, 울산 군수 시절 시름을 달래기 위해 시적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에 ‘황백국’이란 시가 있다. 국화는 중국에서는 노란꽃이라고 하여 황화라고 한다. 하지만 국화는 노란색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노란색과 흰색의 국화라고 하여 황백국이란 시를 썼다.

正色黃爲貴(정색황위귀) 天姿白亦奇(천자백역기)

世人看自別(세인간자별) 均是傲霜枝(균시오상지)

자체 빛깔인 황색을 귀하게 여기지만

타고난 모습 흰 빛도 기이하구나.

사람들은 보고서 구별할지라도

모두 서릿발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가지라네.

황색과 백색이 섞여 있는 국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다르다며 차별을 하는데, 고경명은 다양성이 중요하며 모두 소중하다고 노래하였다. 이 시를 다섯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인이 시를 지을 당시의 입장에서 해석해 볼 수도 있고, 현대식으로 우리가 감상하는 자세에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얼마나 시인의 의도를 이해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시를 통해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니 자신에 맞게 해석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 해석이 시인의 의도와 일치할 필요는 없다. 시는 창작이고 태어나면 그 자체가 시인과 분리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해석은 사극 드라마 ‘동이’에서 한 해석이다. 동이는 천민으로 영특하다. 장옥정이 천민의 계급을 넘어설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이 시의 앞 구절을 암송하고 나서 뒤 구절을 동이에게 말하도록 시험한다.

장옥정은 중인계급 출신이지만 무수리로 살다가 왕비가 된 인물이다. 천민은 아니지만 신분의 벽을 체감했을 것이다. 장옥정이 동이에게 꿈에 대해 물으며 야망이 있는지 알아보는데, 자신의 신분에 한을 품지 않고 ‘제 처지에 감히’라며 겸손하게 처지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

스스로 신분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늘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니, 자기 의지로 하늘의 뜻을 그슬리면 장옥정과 같은 오히려 불운을 맞게 된다. 적극적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는 것이 오히려 망하는 결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천명론으로 드라마를 해석하면 인간의 의지가 무시 된다.

모순에 대적하고 맞서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동이의 성공비결이라고 한다면 드라마는 무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도록 순리로 풀어가는 것이 장옥정과 동이의 차이일 것이다. 국화의 색은 신분을 말하는 것으로 신분이 달라도 모두 소중한 같은 존재라는 의미가 된다. 황색은 귀족이나 임금의 색이고, 백색은 가난한 백성의 색이다.

두 번째 해석은 선조는 후궁의 아들이다. 정통 왕위 계승권으로 보면 자격이 좀 모자란 임금이다. 장자가 아니거나 서자이면 말이 많다. 하지만 그 임금도 하늘이 낸 것이니, 귀하게 여기고 받들고 따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왕의 자격에 대해 임금 면전에서는 감히 말도 하지 못했겠지만, 당파싸움과 임진왜란 직전의 나태해진 관료들과 전쟁에 대한 소문들은 민심을 혼란하게 했을 것이고, 전쟁이 임금의 자격 부실 탓으로 여기기까지 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왕권을 둘로 나누어 전쟁에 대한 문제는 왕자에게 넘겨주었을까? 이런 자격 논란에 모두가 귀한 것이니 받들어야 한다고 시를 썼다면, 정몽주의 단심가의 답을 하게 한 이방원의 하여가처럼 해석이 된다. 지지율이 떨어져 민심이 흉흉한 것을 위로하는 시로 해석할 수 있다.

세 번째 해석은 당파와 정적들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인식이다. 서로 자신의 것만이 옳다며 관철하기 위해 절대 굽히지 않고 심지어 임금에까지 조선은 왜의 나라가 아니라 선비의 나라라며 권력의 주인 행세를 하는 관료들이 패를 나누어 권력 다툼을 할 때 비록 서인이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고 협력하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황국과 백국이 모두 귀하다고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이 좌천되면서 당파의 희생으로 여겼을 수도 있고, 서로 존중하지 않는 문화에 대해 아쉬움이 시상을 국화에서 찾게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네 번째는 고경명은 말을 탈 줄 모르는 의병장이었다. 물론 칼도 제대로 사용할 줄 몰랐을 것이다. 전쟁이 나서 국란에 휩싸이자, 패잔병을 모아 다시 싸우도록 하는 역할을 고경명이 했다. 싸움터에서 도망친 사람들을 모아 다시 관아에 인계하는 일을 하다가,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왜군이 공격하려 한다는 첩보를 듣고, 스스로 전쟁터에 나간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 자신이 쓴 시를 모두 둘째 아들에게 맡겼고, 그 아들의 손에 의해 후대에 문집이 발간된다.

패잔병들은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었고, 화력과 지도자의 전략부족 차이로 전투력을 상실한 상태였는데, 이러한 사람들을 의병으로 모았으니 싸울 의지가 약했을 것이다. 침략에 대한 수호 의지가 강력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면서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화합을 이끌고자 했다.

금산전투에서 모두 도망을 쳤지만, 누군가는 장렬하게 전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며 큰아들과 함께 싸워 전사하였으니 부하들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도리를 다하고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정신에서 두 가지 색을 모두 중하게 여긴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는 전쟁 중이라 시를 쓸 당시 그런 의미로 썼다고 하면 시대적으로 순서가 틀리게 된다. 시상이 상징적이듯이, 시의 의미도 대자뷔로 타나난다. 그리고 그런 시를 쓴 사람이라면 당시는 다른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전쟁터에서는 부하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생각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등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존중과 화합, 비차별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고경명이 살았을 당시 장애학이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여러 가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억압의 문화는 예민한 시인의 의식 속에는 감지되었을 수 있다.

그것을 확대하여 오늘날의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장애인들의 차별금지와 존엄성을 말한다고 해석해 보는 것이다. 지난주 막을 내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마지막 편에서 우영우 변호사는 서로 가진 것이 다르고, 차이가 있지만 각자는 모두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드라마의 결론을 맺었다. 이런 결론이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는 졸작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번 가을이 오기 전에 동양화를 그리는 장애인 화가에게 국화 서예 작품 하나를 부탁해야겠다. 이왕이면 황백화 시도 적어 넣어서 사무실에 걸어두고 사람들에게 국화를 이용하여 장애인의 인권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에서 인종은 각기 피부색이 다르지만, 차별을 해서는 안 되며, 다양한 차이를 인정해야만 한다고 장애인의 차이를 인종의 피부색에 비유하여 강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고경명은 400년 전에 색에 대한 차이를 인정하고 모두 귀히 여긴다는 생각을 시를 이용하여 아이디어 특허를 냈던 것이다.

미국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처음 발명을 하였다지만, 108번의 실패 비행을 하였고, 단지 19초 날았을 뿐이다. 프랑스 아델이 발명 시기가 더 빨랐다고 주장하며 다투고 있지만, 사실은 임진왜란 때에 진주성 전투에서 정평구가 일주일 고안하여 비차를 만들어 6차례 공격을 했다는 여암전서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인들은 정말 지혜롭고 정의로운 국민들이다. 단지 그 당시의 설계도가 전해지지 않아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지적 능력과 정신적 능력이 대단한 한국인들이 인권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에도 가장 예민하게 감수성을 드러내고, 앞장서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고 화합하면서 통합사회를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한다. 그러한 DNA를 가진 한국인이니 가장 높은 인격과 다양성의 존중,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실천에서 장애인의 동등함과 존중의 인정을 최우선으로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국화 앞에서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맡으며 그런 조화로운 사회를 위해 나는 기도하며 꿈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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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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