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학자금 대출 상환 종료 시점의 한국장학재단 전산 화면. ⓒ장지용

과거 대학 시절에 제가 학기를 시작하는 행사는 의외로 수강신청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학자금대출 신청 교육’이었습니다. 학자금대출을 받기 위해서 이수해야 한다는 ‘사전 영상 교육 수강’이 그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학자금대출을 위해서 이 교육을 이수하여야만 학자금대출 실행이 가능하다는 규정 때문이었고 그 학자금대출로 등록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것도 학기 내내 그래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대출’이라는 단어에 대단히 질색하면서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내는 편입니다.

그래서 대출의 상환 시즌이 극적으로 시작된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 졸업 직후 한국장애인개발원 입사가 결정되었고 그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어 본격적으로 직장생활에 입문했고, 결국 악착같이 노력하여 결국 상환 개시 6년, 최초 대출 기준 11년만인 2019년 말, 극적으로 학자금대출을 전액 상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때 매우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출이라는 단어를 말끔하게 지워냈다는 자부심과 이제는 빚 그런 것을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채워졌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집에서 새집을 마련하면서 대출을 끼고 사는 바람에, 이제는 다시 30만 원의 월 지출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실정이 되었습니다.

장기적으로 LH 임대주택 등 독립 주거 마련을 위해 집 대출을 끌어써야 할 터인데, 이러한 것에 긴장한 나머지 대출 공포가 밀려오는 것이니 말입니다. 언젠가 재정 여력이 생겨서 독립 주거를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독립된 주거지에서 완전히 정착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대출을 끌어쓰지 않더라도 안전히 마련하고 싶은 욕망이 앞섭니다.

대학원 진학도 또 다른 재정 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을 것인데, 이는 대학원 학비를 처음에는 마련하기 어려워서 일시적으로 학자금대출로 1차 방어를 한 뒤 상환하는 방식으로 대학원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이러한 방법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해도 대학원 학자금 부담은 늘 걱정부터 앞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대출을 하나 끼게 될 운명이 될 것 같지만, 학자금대출 시절의 고초를 잊지 않고 있는 저로서는 다시는 대출을 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앞서니 대출에 대한 공포는 두렵기도 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장애인 가정에서 대출이라는 단어가 쉽게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장애 자녀의 재활교육비 지출은 비장애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고, 제 경우에도 재활교육비가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100만 원 이상 청구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1990년대에 20만 원이었다고 했지만, 그 사이 물가는 지금의 100만 원 상당으로 변화했을 테니 말입니다.

제가 들었던 몇몇 발달장애인 가정에서는 재활교육비 문제 때문에 가정에 위기가 닥쳐오는 일이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끼자니 발달장애 자녀의 장애로 인한 위기는 닥쳐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일종의 진퇴양난의 고초를 치러야 하는 것이 발달장애인 가정에는 큰 위기가 있습니다. 실제로 모 법조인은 발달장애 아동의 재활교육비 수요로 인한 대출에 대해 채무 탕감을 이뤄냈다고 실적 선전을 했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의외의 사태를 느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정확히 선을 긋지 않아서 논란이 된 이른바 ‘빚투 탕감’ 논란 때문이었습니다. 발달장애 자녀 가정의 채무 탕감을 위해 쓰여야 할 재정, 장애인 권리예산에 투입되어야 할 재정 자체가 이딴 ‘투자는 철저히 개인 책임’ 원칙을 무시하고 채무 탕감을 한다는 것으로 해석되어 문제가 된 것입니다.

가상 자산 투자나 주식투자 실패로 지게 된 채무는 탕감해주고, 정작 중요한 발달장애인 가정의 채무 탕감은 이뤄주지 않는다는 인식을 정부가 스스로 부른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발달장애인 가정과 같이 장애로 인한 손실을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발달장애인 가정과 같이 과도한 채무로 고통을 치르는 것은 무시하고, 자기들을 지지했다고 생각하는 그런 집단의 대출 해소를 위한 것은 아낌없이 하는, 일종의 대출에서의 ‘내로남불’을 저지르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의 재정정책은 사회적 목표를 위해 투자해야 할 것이지,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해결하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발달장애인 가정의 재활교육비 등으로 인한 채무는 탕감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대출을 끌어쓰지 않도록 하는 재정지출을 과감히 투입해도 어떠한 비난은 받지 않을 것이지만, 단순히 투자 실패를 만회한다는 대출 탕감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도덕성을 더는 못 믿겠습니다. 장애인 가정의 빚을 줄여줄 대책은 없고 빚투하는 투자자의 빚은 줄여주는 그런 ‘내로남불’ 정책은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금이 투입되는 정부의 재정정책 우선순위가 단순한 투자 실패를 상환해주는 그런 존재가 아닌, 자칫 재정적으로 붕괴하게 되어 ‘초가삼간까지 다 태우는’ 그런 불을 끄는 정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단순 투자 실패를 해소하기 위해 세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 가정같이 재정을 끊임없이 써도 근본적 원인 해결이 이뤄지지 않는 그러한 곳에 세금을 써야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를 것입니다.

학자금대출을 지운지 2년여 뒤, 정작 새로운 대출 공포를 안으며 대출 사태를 바라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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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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