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이미 해질 대로 해진 글쓰기와 관련된 고민을 하나 가지고 있다. '타인의 삶을 내 글에 넣을 때 어느 선까지 동의를 얻어야 할까?'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다.

나는 내 이야기 위주로 쓰는 거라면 바람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주변 이야기는 이니셜이나 그 사람, 저 사람 같은 인칭 대명사 등으로 가려 표현한다. 궁금했다. 다른 분들도 나와 같이 두리뭉실한 표현법을 쓰고 있는지, 이 처럼 가려 쓰더라도 글에 등장하는 이 모두에게 일일이, 그리고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매번 동의를 얻는지.(현실적으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와 같은 글쓰기 고민이 최근 들어 봉긋 솟아올랐다. 일전에 주변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풀어낸 글을 써냈다가 난감한 상황을 경험한 영향 때문이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해볼까? 싶었지만 장애로 인한 엉뚱한 고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섣부른 질문을 올렸다간 웃음거리가 될게 뻔하다 싶어서 내 장애를 잘 알고 계신 지인분께 SOS를 보냈다. 나처럼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셨다.

"유리 씨만의 고민이 아니에요... 그래서 글쓰기란 어려운 일이에요."

라고 말씀하시며 본인만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셨다.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만이 가진 엉뚱한 고민이 아니라는 이야기에 코끝이 찡해왔다. 나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장애가 있건 없건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크고 작은 고민거리를 품고 있었다.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자주 찾는 심리상담 유튜브 채널,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은 직장인이 모여 있는 온라인 카페... 그곳은 나도 그들과 틀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질 경우 집중하지 못하고 어느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던지, 사람들과 친해지고 새로운 일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던지, 입사한 지 석 달도 안돼 다른 직장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던지, SNS를 통해 보이는 다른 이의 행복한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며 혼자 땅굴 깊숙이 들어간다던지, 그러면서도 SNS를 쉽사리 끊어내지 못한다던지,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치고 올라오는 잡다한 생각과 주기적으로 겪는 의욕상실, 완벽주의 성향...

내가 겪는 모든 어려움이 오롯이 장애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인 줄 알았다. 아무런 불편함 없이 완벽해 보이기만 했던 비장애인도 나름대로의 불편함을 겪고 있었다.

장애인을 만나보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장애인의 삶은 대단히 특별할 거라고 생각한다. 돌봄이 필요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존재라고들 생각하는데 따지고 보면 비장애인의 삶도 마찬가지지 않은가? 장애인의 삶도 비장애인의 삶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사람 사는 건 모두가 똑같다. 그리고 다르다.

나에게는 나이 차이가 조금 나지만 동갑내기처럼 친하게 지내기로 한 친구가 한 명 있다. 작년 여름, 자조모임에서 처음 만남을 가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았을 때만 해도 우리는 정말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같은 유형의 장애, 같은 직업.... 나와 똑 닮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와 정말 많이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참 좋다. 혼자 글 쓰고 취미생활을 즐기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나를 잘 아는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하지만 이 친구는 많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좋다고 한다.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밖에도 나와 다른 점이 수두룩하다.

같은 점이 장애유형과 직업을 빼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잘 지내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퇴근 후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나는 항상 집에 있고 친구는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사람들과 만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엔 걱정이 되었다. '회사일 마치고 피곤하지 않나?'

하지만 지금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맞춰가며 잘 지내고 있다. 만일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와 다르다고 무작정 밀어낸다면 지금쯤 나는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로봇처럼 똑같다면 무서울 것 같은데 나와 다르다고 배척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왕왕 일어나는 것만 같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