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에이블뉴스DB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차별시정 기능이 실효적이지 않음은 앞에서 봤다. 진정사건 가운데 인용보다 각하, 기각이 월등히 많았던 게 이에 대한 한 요인이었다. 실지로 인권위 진정 기각 사유 가운데는, 이미 피해회복이 이뤄지는 등, 별도의 구제조치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 각하 사유에선 진정인이 진정을 취하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사건을 해결했을 땐, 진정인이 자발적으로 진정을 중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피진정인이 해결했는데 진정인한텐 정서적인 피해까진 해결되지 않았을 경우, 진정인이 자발적으로 진정을 중단하지 않고, 손해배상을 하고 싶으나, 인권위에선 어쨌든 해결했으니 이 사안에 대해 중단하고, 기각할 확률이 높다. 이러면 진정인은 법원에 가 해결해야 한다.

이런 경우가 상당한 등, 인권위 차별시정 기능이 미흡하니, 결국 법원에 가서 차별시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 시행된 후 6년이 지난 시점부터 2018년까지 차별시정 역할을 하는 구제 조치 사건은 7건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국가와 지자체를 상대로 한 장애인차별 소송 구제 조치는 한 건도 없다.

이와 관련해 2015년 시외 이동권 보장 요구 사건의 경우엔 법원이 국토교통부 장관,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등이 휠체어 승강 설비를 하지 않은 건 장애인차별이지만, 이에 대한 시책을 마련하라는 조치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보면 법원의 장애인식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애인을 보호와 안전의 관점으로 바라보기에 실질적인 구제 조치보단 조정과 합의로 장애인차별 사안을 처리하려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러기에 차별시정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 배경엔 전문적으로 장애를 배우고 장애인 관련 모의재판 등을 실습하며 피드백을 받는 등의 과정이 필수과정으로 개설된 로스쿨이나 법과대학들이 단 한 군데도 없음이 한몫을 한다.

물론 그보다 더 근본적인 건 장애인식 증진 과정 등을 포함한 실질적인 통합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 장애인과 함께 부딪히며 배우는 시간이 적고, 여기에 장애를 다양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고쳐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문화와 정서니 장애인 개개인별로 이해하며 장애 감수성에 맞게 판결한다는 게 상당히 어려운 일일 수밖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권단체가 3년 전 6월 14일 오전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휠체어리프트 철거를 요구하는 모습. ⓒ에이블뉴스DB

장애인차별에 대한 구제조치를 법원에서 받으려면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 때 변호사 선임 등의 많은 비용을 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 민사소송법 제128조엔 국가에서 소송비용을 대납하는 소송구조 제도가 자금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신청이나, 또는 법원의 직권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이 제도는 소송인 중 저소득 계층인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지, 장애차별소송을 고려해 만든 건 아니다. 게다가 일부만 승소하거나 전부 다 패소하면, 피해를 받은 사람은 상대방 변호사 비용과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등, 부담이 상당하다. 이러기에 장애인 차별소송 접근성에 어려움을 겪어 차별소송이 잘 이뤄지지 않는 거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 휠체어 사용인이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단차 때문에 수도 없이 넘어지는 바람에 소송했는데, 1심에선 전동차에 휠체어 승강설비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2심에선 차별행위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승강장 구조 변경 등의 서울교통공사 부담이 만만치 않다면서 1, 2심 다 기각된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패소하는 바람에 휠체어 장애인은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합쳐 모두 천만 원의 비용을 지불하게 되었는데, 장애인 당사자는 월세 보증금까지 빼야 하는 금액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를 보며, 사법부가 아직도 장애인의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은 물론 인권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편, 장차법에 나와 있는 법무부 시정명령의 경우, 예전엔 정당한 사유 없이 인권위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게 4가지 유형 중 하나에 해당함은 물론 피해 정도가 심각하고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까지일 때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말도 추상적인 데다 시정명령 요건이 엄격해 장차법 시행 이래로 2건만 내려졌고, 8년 전 장애인권리위원회 최종권고 이후엔 시정명령이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피해의 정도가 심각하고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를 장차법 제43조 1항의 문구에서 삭제했다.

게다가 법무부에선 시정명령을 위한 자료를 인권위로부터 충분히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있었고, 인권위는 법무부의 강력한 처벌을 원했다. 이에 장차법에 법무부 장관은 인권위에 시정명령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제43조의 4항으로 신설했다. 법무부와 인권위 연계를 통한 시정명령의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43조 2항에는 시정명령 전 차별 행위자의 의견진술 기회 부여는 물론, 피해자, 진정인 또는 이해관계인에게 시정명령과 관련해 필요한 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고 돼 있어, 사실상 법무부의 조사권을 인정하는 셈이다. 여기에 45조 1항에 확정된 시정명령 이행상황 자료를 차별 행위자가 직접 제출하도록 법무부 장관이 요구한다는 내용이 있어, 이를 통해 적극적인 시정명령이 나오는 걸 기대할 수 있게 됐다.

2021년 12월 7일 장애인차별 시정명령 4건이 났다는 법무부의 보도자료 발표 중 일부내용. ⓒ법무부 보도자료 캡처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법 개정 후 법무부는 방송사 웹사이트 시각장애인 접근성 보장, 놀이기구 탑승 거부 중단 등의 장애인차별 사안에 대해 총 4건 시정명령을 내려 이전의 2건보다 증가했다. 하지만 43조 1항의 1호에서 ‘피해자가 다수인인 차별행위에 대한 권고 불이행’이라는 것이 피해 정도가 심각하고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함을 의미하기에, 개인적인 차별의 경우엔 차별시정이 이뤄지지 않을 여지를 주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 차별도 차별시정이 되지 않는 경우, 이로 인해 공익에 미치는 영향은 중대하다고 할 수 있기에, 이에 대해서도 장애인 차별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폭넓은 시각이 법원 등 사법부에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법원의 장애 감수성과 관련해서는 로스쿨과 법과대학에서 장애에 대해 배우고 장애인 관련 모의판결 등을 실습하고 피드백 받는 등의 장애 전문 과정을 필수과정으로 의무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변호사시험법에서 변호사 결격사유인 피성년후견인(자폐인 등 정신적 장애인 포함) 부분을 삭제하고, 정신적 장애인 등 장애인들에게 변호사시험 시 맥락에 따르거나 쉬운 정보가 담긴 시험지 제공, 차분한 분위기 조성 등의 합리적 조정을 제공해야 한다.

대학이나 로스쿨에서 법을 공부하고픈 정신적 장애인 등의 장애인에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대학입시, 대학교 수업 등에서 역시 차분한 분위기 조성 등의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들이 변호사로서 활동할 길을 열어주고 넓히는 게 사법부의 장애 감수성 제고 일환으로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어려서부터 장애인 권리와 차별금지 내용, 장애 당사자의 개인적 차별 내용까지 포함된 장애인식교육을 포함한 실질적 통합교육 실시가 중요하다고 본다.

장애인 차별시정 소송과 관련해선, 패소 여부 관계없이 장애인 차별소송 비용을 전부 패소자 부담으로 하지 않고 경감시키는 대책이 필요하며, 경감시키더라도 소 제기 비용이 정 부담스럽다면, 권익옹호기관 변호사가 대리해 무료소송을 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장애인차별소송의 접근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본다.

Equality(좌측), 다양성을 중시하며 평등을 강조하고 있음을 상징한 그림(우측). ⓒPixabay

이렇게 법원 및 법무부 등의 사법부에 차별시정권을 부여하고, 이를 활성화해 ‘평등과 비차별’이 장애인에게 체감되면서 현실로 다가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전에 말한 인권위 차별시정 대책도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장애인에 대한 의료적 모델 폐기와 장애의 인권 모델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야 한다.

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 제6호에선, 장애의 의료적 모델은 장애인과 관련한 평등 원칙 적용을 방해하며, 장애인은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함은 물론 장애인에 대한 차별, 배제는 당연한 규범으로 여겨지며, 의료적 시각에 따른 무능력 접근법으로 정당화된다고 나와 있다.

이를 보면 결국 장애의 의료적 모델을 폐기하고 장애가 사회적 구조이자 다양성이며 인권을 부정할 근거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인권모델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 당선인이 여가부 페지 공약을 내세우는 등 여성장애인의 권리를 후퇴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임은 물론, 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예산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로지 집무실 이전 예산 등에만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며, 인권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계속 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정부에 장애의 인권 모델은커녕 오히려 의료적 모델만 강화·유지하는 게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장애인에게 평등과 비차별은 그냥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게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든다.

그러기에 앞으로 장애인에게 ‘평등과 비차별’이 체감되도록 하기 위한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계의 투쟁은 이전보다 더욱 가속화될 것 같다. 시위를 통해서든, 인권위의 장애차별 진정과 법원, 법무부 등을 통한 차별시정소송 등의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평등과 비차별’이 우리 사회에 일상이 되도록 하기 위해 장애인들의 몸부림은 계속될 것이다. 장애인도 장애인이기 이전에 시민이요, 인간다운 삶을 살고픈 동등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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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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