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푹 빠졌다.

종이를 접고 있으면, 조그마한 비즈 알갱이들을 만지작 거리고 있으면 열 손가락이 모두 자유로이 춤을 추는 것만 같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하는 취미생활은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안에는 또 다른 꿍꿍이 속이 숨어 있었다.

종이학을 천마리, 아니 만 마리를 접고 나면 내 손이 조금은 빨라지지 않을까?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를 정말 많이 했다. 종이학도 접고 뜨개질도 했던 기억이 난다. 뜨개질은 아무리 연습해도 이쁘게 잘 안됐다. 지금도 잘 되지 않는다. 종이학도 처음엔 잘 안 접어져서 부모님이 도와주셨다. 어느 날 처음부터 종이학 한 마리를 오롯이 혼자서 접었을 때, 쾌감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젓가락으로 콩 짚는 연습도 매일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내 손이 비장애인들보다 많이 느리다 보니까, 재활 차원에서 시키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든다. 아쉽게도 내가 접은 종이학, 내가 뜬 털실 목도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진 못한 걸로 기억난다. 백번, 천 번, 만 번, 아무리 연습해도 옆에서 함께 뜨개질을 한 비장애 친구처럼 깔끔한 모양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중학생 때 지적장애 판정만 받았지, 손에 대해선 검사를 받아 보지 않았다. 그래서 손에 대한 불편함을 매번 겪어도 나도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손에 대해선 장애판정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손에 대한 불편함을 논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직무적응훈련을 받을 때 도움을 주시던 선생님께 "제가 손이 조금 불편해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손이 느려도 열심히 하겠으니 너그러이 봐주십사 하는 요량에서였다.

"그 정도는 불편한 게 아닌데요. 유리씨는 노력하면 얼마든지 빨라질 수 있어요."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뻘쭘함을 한번 겪고 난 후부터는 "제 손이 조금 느립니다."라고 말한다. 그랬더니 노력 부족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 종이학만 천마리 넘게 접었던 사람이다. 컴퓨터 자격증 취득 및 대회 준비로 인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컴퓨터 자판 연습만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종이학은 여전히 이쁘게 안 접히고, 타자 속도는 겨우 200타 안팎을 맴돈다. 얼마나 느렸으면 세계 장애인 기능경기대회 데이터 입력 종목 경기장에서 우리나라 심사위원분이 내 옆을 맴돌며 안절부절 못 하셨을까?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그때의 광경이 문득 떠오를 때면 괜스레 웃음이 삐져나온다.

손으로 인한 불편함은 손을 사용하는 모든 일상에서 겪는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내 손과 같았으면 세상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손의 불편함을 겪는 줄 생각했었다. 이런 이유로 금손, 곰손, 똥손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알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금손을 가진 사람들만큼 해내기가 어려워요. 곰손을 가진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세요.'라는 목소리가 세상 곳곳에 퍼지지 않았을까?

서류 정리를 깔끔하게 해주는 기계가 나온다던지, 컴퓨터 타자 자판 모양이 사람 손 모양처럼 다양해진다던지, 모든 과일 껍질이 잘 깎아져서 나온다던지, 이를 꼼꼼히 닦기가 어려워 스케일링을 1년에 두 번, 세 번 이상 받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던지,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주문한 메뉴가 늦게 나와도 화내는 광경을 보지 않게 된다던지..

'많이 어려울 수 있어요. 안된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여러분 잘못이 아니에요.'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만들기 강좌마다 이런 친절한 멘트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손에 대한 불편함을 전혀 모르고 살아갈 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은 나는, 나를 아는 사람들도 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경미한 불편함을 가졌음에도 많은 불편함을 느낀다.

특히 취업시장에서 낙오당하기 십상이다. 자격증 취득, 대회 수상경력 등 화려한 스펙을 가지고 있어도 직업 선택의 폭이 바늘구멍만도 못하다.

어렸을 때부터 최근까지도 만들기를 장애극복의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느린 손이 빨라지도록,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나 스스로 갖은 노력해 왔다. 느린 손을 열심히 움직여 빨라지게 만들어서 좀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은 온전히 취미 생활로만 즐기게 되었다. 만드는 속도가 느리다고, 이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안달복달하지 않게 되었다. 종이학을 천마리를 접는다고 해서 손이 빨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날마다 조금씩 쌓여가는 종이학에서 작은 성취감을 맛본다. 수천번 접어도 모양이 삐뚠 종이학, 잘못 끼운 비즈도 하나의 작품으로 보게 되었다.

어릴 때 학 천마리, 만 마리를 열심히 접었다고 손의 불편함이 극복되었다면 어쩌면 공예 공방에 취업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얇고 기다란 색종이로 접는 별 접기도 종이 접기에 열정을 다했던 꼬꼬마 시절에 진작 성공하고도 남았겠지! 그 정도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를 많이 해 왔고 좋아했으니까!

손을 움직이는 일들을 꾸준히 해왔음에도 손의 불편함은 전혀 극복되지 않았다.

서류 정리를 깔끔하게 해 주는 로봇이 나왔을 때서야, 내 손가락에 꼭 맞게 개발된 컴퓨터 자판을 접했을 때서야 그때서야 비로소 불편하지 않는 손, 손의 불편함이 극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흙길, 돌길, 비탈길 가득한 산길을 오르내릴 때 주변 경관은 살피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다리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는 내가 아스팔트 깔린 출퇴근 길에서는 불편함을 전혀 모르고 지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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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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