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 휠체어를 타는 중증 장애 여성인 나 혼자, 온전히, 오롯이 아주 낯선 해외를 간다는 것이, 겁이 없는 나도 아주 망설여지고 두려운 일이었다. 당시는 휠체어를 타고 ‘혼자’ 해외를 여행하는 게 나도 처음이었고, 지금처럼 수동휠체어 전동화키트 같은 것도 없던 2004~5년이었기 때문이다. ​

그런 내가 너무 가고 싶은 마음에 ‘한번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들면 행동이 앞서는 나는 마카오, 홍콩으로 가는 항공권과 숙소를 덜렁 예약해버렸다. 그렇지만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고 나니 걱정이 많이 되었다.

사진으로 보고 상상했던 홍콩을 가고 싶었다. ⓒ박혜정

만약 혼자 가서 마카오 공항에 내렸는데, 그 어떤 교통 수단으로도 휠체어가 전혀 이동할 수 없어서 숙소까지 못 가면 어떻게 하지? 사람들이 진짜 불친절하고 말이 안 통해서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등등.

가보지 못한 미지의 도시에 대한 두려움과 무엇이든 처음 하는 것에 대한 불안, 걱정, 두려움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걱정과 두려움이 있을 때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을 많이 떨쳐내고 용기를 낼 수 있다고 어떤 교육에서 배운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나도 홍콩과 마카오를 가서 전혀 여행을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냥 공항이나 숙소에서 있다가 바로 돌아오면 되지 뭐~ 이런 식으로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니 조금 더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홍콩은 서울보다도 작고, 마카오도 작아서 사실 비장애인이 3박4일을 여행하면 거의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휠체어를 밀고 혼자 다녀야 하니 기동성이 당연히 떨어진다. 이것도 비장애인 만큼 여행하자는 목표가 아닌, 그들이 하는 여행의 절반이나 2/3 정도만 보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무조건 저렴하게 가려고 예약한 에어마카오. ⓒ박혜정

나는 패키지 여행을 선호하지 않아서 무조건 항공권과 숙소를 스스로 알아보고 정한다. 항공권은 제일 저렴한 걸로 예약하는 편이고, 숙소도 일일이 찾아보고 휠체어 시설 등을 문의를 해보​고 예약한다.

이번에 홍콩을 가면서도 경제적인 부분을 찾다보니 저렴한 에어마카오 항공을 타게 되었다. 싼 게 비지떡이었을까. 출발하는 것부터 비행기가 2시간이나 지연이 되어서 힘들기 시작했다.

마카오에 도착해서는 홍콩으로 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너무도 낯선 곳에서 철저하게 혼자인 채, 영어도 못하고 도움을 청하기가 너무 두려웠다. 입도 못 떼고 한참을 버스정류장 앞에서 4일 지낼 짐을 휠체어 뒤에 매고 목에도 걸고 앉아 있었다. 정말 말이 나오지를 않았고, 너무 무서웠다.

한국에서는 선배 한 명이 날 업고, 또 한 명이 휠체어를 들고 딱 한 번 타본 대중 버스였고 여기서는 어떻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막막했다.

마카오에 처음 내려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박혜정

한 2~30분을 그러고 있었을까. 이대로 계속 주저하며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정말 철판을 깔고 아무나 보고 ‘헬프미’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리고는 바디랭귀지로 버스에 타는 시늉을 했더니, 정말 다행히 근처에 있던 남자 두세 명이 나를 휠체어 채로 들어서 버스에 태워줬다.

덜덜거리는 버스에서 40~50분을 달려서 페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내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또 고민 했었는데, 드디어 운전기사도 나와서 도와주고, 곁에 있던 백인 외국인이 흔쾌히 도와주었다.

​그 이후에는 페리로 한 시간을 달려서 홍콩 구룡반도 페리 선착장에 도착했다.

​거기서 침사추이 MTR(지하철)역을 찾아서 또 휠체어를 밀고 밀고. 당시 7월 중순에 갔기 때문에, 온도가 32~33도 이상에 습도가 80%였다. 몸을 휘감는 더위에 정말 너무 힘들었지만, 첫날이라 그래도 의욕에 불타서 몇 시간을 길을 찾아 짐이 가득한 휠체어를 밀고 밀고 왔던 것 같다. 오래 걸렸지만 어떻게든 해낸 스스로가 너무 대견했다.

한국에서는 편하게 내 차로 늘 다니지만, 혼자 휠체어를 밀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고작 하루, 한 것도 없이 숙소를 찾아 온 것 밖에 없었지만, 난 해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가 너무 기특했다. 내가 하고자 하면, 어떻게든 길이 열린다는 것도 깨달았던 것 같다.

드디어 홍콩에 왔다. ⓒ박혜정

다음 날은 센트럴 피크에 가서 빅토리아 피크 트램을 탔다. 피크 트램을 타는 것도 처음이 어렵지 이제는 그냥 도와 달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탈 수 있었다. 빅토리아 피크 트램은 홍콩에서 도움을 받더라도 꼭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크 트램을 타고 올라가서 내려다 본 홍콩의 전경은 너무 멋있었고, 힘들었던 나의 고생을 시원한 바람이 잠시나마 날려 주었다.

​나는 쇼핑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아서 여행가서 내 물건이나 지인들 선물을 잘 사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홍콩이 정말 쇼핑 천국인 건지, 정말 싸고 좋은 게 너무 많이 보였다. 새롭고 좋은 게 많이 보이니 생각나는 사람들을 위해 이것 저것 많이 사게 되었다. 그 때는 뒤를 생각하지 못했다. (ㅋㅋㅋ)

뒷 생각은 하지 않고 괜히 쇼핑을 많이 해서 정말 후회했다. ⓒ박혜정

이제 멋진 펍들이 모여 있다는 란콰이퐁으로 가려고 버스를 물었더니 15C번 버스를 타라고 알려줬다. 버스를 기다려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기껏 탔더니, 운전기사가 란콰이퐁 안 간다며 막 짜증을 냈다. 그 운전기사는 영어도 잘 못했고 중국어로 아주 짜증스럽게 센트럴에서 내리라는 느낌으로 고함을 질렀다. 하는 수 없이 센트럴 역에서 내려 란콰이퐁으로 다시 휠체어를 밀고 갔다.

​아니 이번엔 또 경사가 너무 심한 길이 펼쳐졌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쇼핑한 짐도 많았고, 날씨가 덥고 습하니 목도 마르고 너무 힘들었다. 착해 보이는 커플에게 좀 밀어달라고 해서 언덕의 중간쯤 가다 보니, 란콰이퐁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이라도 할 수 있는 곳이 도무지 없어 보였다. 가게들이 모두 2층이거나 지하였고, 계단도 꽤 많아서 그냥 란콰이퐁은 가다가 포기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다.

너무 힘들고 서러워서 한참을 혼자 울었다. ⓒ박혜정

아침부터 너무 움직였더니 정말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다.

​란콰이퐁으로 갈 때부터 휠체어 뒤에는 커다란 짐을 두 개나 걸었고, 다리 앞에도 큰 가방에 작은 쇼핑백도 있어서 조그만 턱에도 짐이 떨어질까 잡고 넘어가야 했다. 내가 뭐하러 싸다고, 이거 좋다고 쇼핑을 많이 했는지 스스로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땀도 뻘뻘 흘리고 진짜 너무 지쳐서 탈진할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말을 거니 거지 혹은 구걸하는 사람으로 쳐다보고는 몇 명이나 가버렸다. 15C 운전기사가 짜증을 낼 때도 서러웠고, 도움을 청해도 계속 거절을 당하는 내 꼴을 보니 정말 거지,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갑자기 너무 힘들고 서러워서 정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한참을 구석에서 혼자 울다 보니 ‘이렇게 계속 울고 앉아만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4박5일을 잘 보내고 꿋꿋하게 하면, 분명히 나는 뭐든 할 수 있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롯이 혼자 하는 이 여행, 철저히 혼자 모든 걸 감당하고 책임져야 하는 이 여행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그래도 즐기고 많은 깨달음과 생각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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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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