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대 대선 사전투표 기간에 모 당의 투표참관인으로서 일했다.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진로에도 맞는 일이며,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체험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지원하였다. 나는 양일 모두 오후조에 지원하였다.

오후조 참관인의 일정과 역할은 다음과 같다. 12시 이전에 출근하여 오전조 참관인과 교대한다. 참관인 명찰을 받아 잘 보이게 착용한다. 본인인증, 투표용지 출력 및 배부, 투표함에 투표용지 투입 등의 투표 전 과정을 참관한다. 투표 진행 중 사고가 나는지, 다른 이상은 없는지 감시한다.

5일에는 확진자 투표가 있었다. 참관인 일부는 확진자 투표소로 가서 확진자 투표가 잘 되고 있는지, 이상이 없는지 감시한다. 확진자에게서 서류와 신분증을 받아 투표 용지를 출력하여 다시 전달하는 과정도 참관한다.

투표가 종료되고 관리관이 종료를 선언하면 관외투표함의 우편봉투를 세어 정리하여 전용 박스에 투입하는 과정을 참관한다. 그리고 투표함과 투표에 사용된 기기를 봉인하는 과정을 참관하고 특수봉인지에 서명한다. 희망하는 참관인은 관외투표 우편봉투를 우체국에 전달하고, 관내투표함을 선관위에 이송하는 과정에 동행하여 참관한다.

이렇듯 투표참관인은 민주주의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대의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올바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감시하는 것은 당과 국민이 참관인에게 하달한 명령이다. 임시직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투표참관인을 ‘꿀알바’로 생각하고 가볍게 지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내가 이 칼럼을 기고하는 이유는 투표참관인의 역할을 소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나는 이 칼럼에서,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가 투표참관인에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정신적 장애인은 피선거권은 고사하고 선거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정신적 장애인은 참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으며 이번 선거에서조차 그렇다. 실제 현장에서 이뤄지는 장애인 지원의 대부분이 신체장애인에 치중되어 있을뿐더러, 발달장애 유권자가 보조 인력이 없어 투표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등 장애인 차별 사례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의 장애인 단체들은 이러한 사례를 모아 인권위에 집단 진정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을 정도이다.

필자가 사전투표소에 참관인 자격으로 입장하였을 때, 오전조와 오후조를 통틀어 장애인 참관인은 필자 혼자였다. 필자는 등록장애인이 아닐뿐더러, 신체장애인은 한 명도 없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장애인 참관인은 비장애인 유권자의 시선에서 투표를 감시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 참관인이 없으면 투표소에서 장애인 유권자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정신적 장애인이 투표소에서 차별을 당해도 항의할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다. 결국 선거는 비장애인만을 위한 선거가 되고 만다.

어떤 사람은, 정신적 장애인은 투표도 제대로 못 하는데 참관인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가 참관인으로 참여해야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참정권 차별이 조금씩 시정될 수 있고, 다음 선거의 장애인 투표율을 올릴 수 있다. 장애인 투표율이 올라가면 정치권에서도 장애인을 무시하지 못한다.

일부 정신적 장애인은 인지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참관인을 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 그런 당사자를 위해 고인지 당사자가 참관인으로 참여하면 좋겠다. 고인지 당사자께 전체 정신적 장애인 유권자의 권리 실현을 위해 힘쓰기를 부탁드린다.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을 차별하는 투표소 직원들에게 당당하게 항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선관위와 정치권 그리고 장애인 단체에서도 참관인 제도를 홍보하여 더 많은 장애인들이 선거 과정을 참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장애인 유권자뿐만 아니라 장애인 유권자도 함께 선거 과정을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더욱 다양한 계층의 참관인 참여가 필요하다. 그래야 앞으로의 선거가 장애인을 위한 선거, 소수자를 위한 선거, 다양성을 위한 선거가 될 수 있다. 장애인 참관인의 참여가 더욱 평등한 선거를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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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회로가 비장애인과 다른 신경다양인들은 어떻게 살까? 불행히도 등록장애인은 '발달장애인' 딱지에 가려져서, 미등록장애인은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비장애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경다양인이 사는 신경다양한 세계를 더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당사자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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