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카드라고 여겼던 복지카드가 왜 나한테 생겼고, 반 친구들 중 나만 가지고 있는지 특수학급 선생님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었다. 곧 여러 가지 생각에 휩싸이게 되었다.

'왜 내가 장애인이 된 거지?'

'친구들이 애자라고 놀리면 어쩌지?'

'병원에서 검사받을 때 너무 벌벌 떨었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그까짓 지하철 공짜로 안 타도 되고, 용돈을 더 안 받아도 되니 카드를 반납하고 싶었다. 장애를 극복하고 싶었다. 20대 초반까지도 장애극복을 외치고 다녔다.

나에게 카드가 없다면, 장애가 사라진다면 취업이 잘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을 것이다. 장애를 가졌다고 놀리고 괴롭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장애가 없어지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운전면허를 따는 일이었다. 혼자서 이곳저곳 자유로이 여행을 다니고 싶었다.

장애가 심하지 않은 편인. 나라면 장애극복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장애는 극복할 수 없었다. 장애인이 노력한다고 비장애인이 될 수 없었다. 장애가 아무리 경증이라도 본인의 노력으로 장애가 사라진다면 애초에 장애진단을 잘못 받은 것이다.

지금의 난 장애 극복을 포기했다. 장애를 극복하지 못해도 직장생활을 별 탈 없이 해 나가고 있다.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로 나도 할 수 있는 직무가 계속 개발되고 있는 덕분이다. 장애를 가진 나를 괴롭히는 사람과는 아예 상종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운전면허 따는 일이야 10년, 20년 후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된다면 면허 따는 일이 굉장히 쉬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발달장애인도 쉽게 자율주행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나 혼자서도 여행을 다닐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리라고 믿는다. 관광지마다 알기 쉬운 안내판을 볼 수 있을 거고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장애로 인해 포기해야 하고 불편하고 하지 못하는 게 많지만 그만큼 받을 수 있는 혜택도 많으니까! 내가 실감하는 건 지하철을 무료로 타서 출퇴근 비용을 아끼는 것 정도이긴 하지만 말이다.

관광지 입장료 감면이나 고속도로 통행료, 대형 항공사 비행기 티켓 할인 혜택도 있지만 동행인 없이는 여행을 다니기가 쉽지 않은 나에겐 없는 혜택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내가 편하게 이용 가능한 출퇴근길 교통수단은 지하철 하나뿐이다. 버스는 계단이 무섭고, 택시는 돈이 무섭다.

지하철을 타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밖으로 나다니려고 한다. 이 세상엔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 주고자 하는 위함이다. 장애인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바뀌게 되면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하련다. 여행을 마치고 숙소에 머물며 여행 에세이를 써 봐도 좋겠다. 이 시기 즈음이면 장애 옹호가게를 발길 닿는 곳마다 실컷 보았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장애인이 복지혜택을 너무 많이 받는다고 한다. 걱정 붙들어 매시라! 장애가 있든 없든 다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이 온다면 장애인 복지혜택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테니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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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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