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유소는 거의 대부분 셀프로 하도록 되어 있다. 시대의 흐름이 그런거겠지만, 언젠가부터 셀프주유소로 하나 둘 바뀌기 시작해서 최근에는 셀프가 아닌, 직원이 직접 주유해주는 주유소를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휠체어를 차에 싣고 주유소를 가면, 휠체어를 다시 내리고 주유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너무 힘들고 쉽지가 않다.

​다행히 직원이 한명이라도 있어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주유를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직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곳은 차로 돌아보다 그냥 나오거나, 사무실 안에 있는 직원을 몇 번이나 부르다가 도저히 안되서 나온 적도 많다. 셀프주유소가 생긴지 얼마 안되었을 때,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이라 주유를 좀 부탁하니, 잘 못 알아듣고 건방지다고 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부산의 OO터널을 넘으면(아직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GS칼텍스 주유소가 나란히 두개가 붙어 있다. 하나는 기름값이 싼 셀프 주유소이고, 다른 하나는 기름값이 비싼 직원 주유소이다. 누구든지 나란히 있는데 당연히 셀프 주유소를 가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도 셀프주유소로 들어 갔고, 다행히 직원이 있어서 상황을 얘기했다. 그런데 그 직원이 하는 말이 셀프로 주유를 못할 것 같으면, 바로 옆에 직원 주유소로 가라고 하는거다.

나는 어이가 살짝 없었지만, 다시 한번 설명을 했고 이곳에서 주유하고 싶으니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직원은 바쁘다며 옆의 주유소로 가라는 말만 했다. 나는 결국 그 직원에게 화를 내고 말았지만, 인성이 안된 사람에게는 필요없는 화일 뿐이었다. 그 직원의 몰상식한 손짓과 말투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집 근처의 배려 깊은 주유소. ⓒ박혜정

시나브로 조금씩 조금씩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졌을까. 며칠 전 갔던 집 근처의 주유소에는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고객께는 주유해 드립니다.'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곳은 직원이 대부분 있는 곳이라 자주 가기도 했지만, 그 전에도 '제가 휠체어...'라는 운만 띄워도 흔쾌히 도와줬었다.

나는 기름값이 좀 비싸더라도 할 수 없이 거의 그 주유소를 갔었다. 직장 근처에도 직원이 항상 있고, 흔쾌히 잘 도와주는 주유소만을 가게 되는 것 같다. 이제는 위의 입간판 처럼 주유 회사에서 저런 배려를 해준다니 더욱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 더 많은 주유 회사들의 인식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거창하게 4차 산업혁명을 말하지 않아도 인공지능, 로봇기술, 무인시스템이 점점 발전해왔다는 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다 코로나19로 인해 급물살을 타게 되면서 비대면, 무인자동화 시스템으로 키오스크라는 무인단말기는 이제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나는 4차 산업혁명이나 키오스크 등에 대해 말하려는게 아니고, 휠체어를 타고 접하게 되는 무인단말기 키오스크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예전부터 접할 수 있던 키오스크는 은행 현금 지급기 정도였다. 현금 지급기는 아직도 휠체어를 타고 이용을 하려면, 높이가 높기도 하고 글자나 숫자가 빛에 반사되어 잘 보이지가 않는다.

최근에는 장애인 사용자를 위해 높이를 조금 낮춘 지급기가 많아지긴 했다. 휠체어 장애인 개개인의 앉은 키에 따라 불편함이 다를 수는 있지만, 앉은 키가 작은 편인 나는 아직도 좀 불편하긴 하다.

현금지급기. 높이를 낮춰도 빛에 반사되어 글자가 잘 안보이기도 한다. ⓒ박혜정

현금지급기 외에 최근에는 정보 안내, 예약, 이용 방법 등의 정보 제공이나 검색을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공과금 납부, 예약, 결제, 주문, 서류 발급 등등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점점 더 그럴 것이다.

이젠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도 키오스크 주문을 해야 하고, 서류 하나 떼는 것도 키오스크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휠체어를 타고 키오스크를 이용하기는 정말 힘든 부분이 많다.

영화관 팝콘 주문할 때 손이 잘 안 닿고(사진 왼쪽), 식당 음식 주문할 때 글자가 안보이고 손도 잘 안 닿는다. ⓒ박혜정

우선 키오스크 기계 자체가 서있는 비장애인의 높이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현금지급기 보다도 훨씬 더 키가 큰 기계 앞에 서면, 휠체어를 타고는 또다른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다.

도대체 터치하는 화면에 손조차 닿지 않는데다가, 화면의 글자나 숫자도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직원이 있다면 도움을 받으면 되지만, 그저 사소한 일인지 몰라도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사소하지 않은 좌절감을 주기도 한다.

서류 발급기. 글자가 아예 안 보인다. ⓒ박혜정

요즘은 무인편의점도 꽤 많이 생기는 추세이다 보니 실제로 내가 겪은 일이 있다. 무인편의점에 커피를 사러 갔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설명을 읽어 보니,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대거나 꽂으면 문이 딸깍 하고 열린다고 되어 있었다.

문제는 카드 단말기와 입구 문까지 거리가 약간 있는데다가 경사로로 올라가서 무거운 유리문을 열어야 했다. 휠체어 브레이크를 잠그고 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읽힌 다음, 카드를 빼고 휠체어를 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 빠른 속도로 문까지 갔다.

하지만, 그 사이 딸깍하고 열렸던 문은 다시 딸깍하고 닫혀버린 뒤였다. 정말 5초 만에 닫혀 버리니 휠체어를 타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학교 안의 편의점에 이른 아침 출근 전일 때라서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정말 당황스러웠다. 결국은 한참이나 곤혹을 치르고 있는데 지나가는 학생 한명이 도와줘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휠체어장애인은 들어갈수조차없는 무인편의점 무인시스템. ⓒ박혜정

이미 비대면 세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고, 더욱 무인, 자동화, 인공지능, 로봇 등의 기술로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이런 변화에 장애인의 불편은 더 늘어날게 많아 보인다.

타인의 물리적인 도움이 아무래도 필요한 장애인들은 무인, 자동화 시스템에 다가가기 조차 힘든 상황이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높디 높은 차가운 기계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이동 시간이 전혀 고려가 되지 않는 무인시스템 앞에서 원하는 곳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들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의 작은 바람은 앞에 말한 셀프주유소의 따뜻한 배려처럼, 키오스크에서도 높이 조절이라든가, 도움벨이라든가 적절한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다함께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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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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