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이송 모습. ⓒUnsplash

독일은 지난해 11월에 접어들면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연일 2만명 대를 훌쩍 넘어섰다. 며칠 전에는 심지어 하루 10만명 이상의 확진자 수를 기록하다보니, 이제는 하루 2~3만명이라는 수치가 적게 느껴질 정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일 내 입원 병상과 응급실 포화 상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같은 전례 없는 위기 속에 만약 응급실이 포화 되고 산소호흡기 같은 의료장비가 부족하게 될 경우, 의사들은 중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것은 바로 "누구를 먼저 살릴 것인가?", "누가 생존할 확률이 더 큰가?"이다.

이러한 최악의 시나리오 앞에서 독일 장애인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이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응급환자분류, 일명 트리아지(triage)에서 뒤로 밀려나지 않을까,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응급상황에서 차별 받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지난해 콘스탄틴 그로쉬(Constantin Grosch)를 포함한 장애인 9명이 장애인 차별 금지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은 코로나19 대유행 속 의료자원이 극도로 부족해지면 장애인들은 생존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치료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며, 그럴 경우 이는 독일 기본법 조항 "누구도 장애를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를 위반하는 거라며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지난 수개월간 의료 현장을 객관적으로 심리하는 과정에서, 응급 상황에서 장애인들이 충분히 보호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장애인은 장애로 인해 회복 가능성이 낮다'는 의료진의 그릇된 편견으로 인해 장애인들이 응급실 치료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독일에는 응급환자를 분류하는 법적 규정이 아직 부재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병원은 독일 의학전문협회가 제안하는 의료윤리적 기준에 따라 '생존확률'이 높은 환자를 우선시하고 있다. 생존확률을 결정하는 요소로는 현재 건강상태, 노쇠 정도, 중증 기저질환 등이 있다.

물론 의료 전문가들은 응급환자를 분류하는 데 있어 장애나 연령,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그로쉬를 비롯한 장애인들은 전문가들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었다.

판사봉. ⓒUnsplash

장애인들이 위헌 소송을 제기하고 수 개월이 지난 후, 드디어 지난달 28일 헌재의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팬데믹 속 병원들이 한계에 다다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환자가 장애 등을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환자의 장애와 연령, 기저질환, 코로나19백신 접종 유무 등과 상관없이, 환자의 '현재 단기 생존 확률'(aktuelle und kurzfristige Überlebenswahrscheinlichkeit)만을 고려해 응급환자를 분류할 것을 촉구했다.

즉, 의사는 환자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앞으로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 지를 고려할 게 아니라, 지금 현재의 생존 확률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어 헌재는 "응급환자분류 시 환자는 연령과 성별, 국적, 장애, 사회적 지위, 치매, 기타 만성질환 등의 이유로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앞으로 의회가 응급환자분류와 관련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구체적인 기준'을 '지체 없이'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구체적인 기준'과 관련해, 응급환자를 분류할 때 여러 명의 의사가 함께 상의하는 과정을 거치고, 의사들아 응급환자분류와 관련한 전문연수교육을 받을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지체 없이'란 표현을 통해 의회가 관련 기준을 신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헌재의 이번 판결은 많은 이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로쉬를 비롯한 수많은 장애인들도 놀라게 한 결과였다. 독일 언론들은 이번 판결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보내는 분명하고 용기 있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앞으로 응급상황에서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법적인 초석이 마련된 것은 분명 박수 칠 일이다.

그런데 아직도 의문이 든다. 장애와 기저질환, 연령 등 사실상 생존확률과 직결되기도 하는 이러한 '차별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의사가 응급 환자의 생존확률을 결정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과연 인간 평등과 차별금지 원칙을 수호하는 가운데 가능한한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법적 기준을 마련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와 관련해 독일 의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법을 제정하고 시행할 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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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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