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0월, 그날 만약 바람이 거세게 불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의 꽃다운 시기를 그토록 힘들게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그때 휘몰아치는 바람에 8미터나 되는 큰 간판이 떨어지며 나를 덮쳤습니다.

정신을 잃은 내가 병원으로 옮겨지고 의식을 회복한 건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 사고로 폐가 파열되고 척추 신경이 손상된 나는 1년 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다친 게 당신들 탓인 양 죄책감에 시달리셨고, 간판 제조업체와 간판 상호 회사와의 피해 보상 문제 등으로 지쳐갔습니다. 나는 척추 신경 손상으로 하반신 마비는 물론, 장기의 기능과 대소변 감각까지 잃었습니다. 대소변을 내 의지대로 가릴 수 없어 다 큰 처녀가 바지에 실수할 때 그 비참함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장애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나는 점점 주눅이 들었습니다. 집 밖에 나가는 걸 극도로 꺼리며 하루 종일 집안에서만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처럼 몸이 불편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삶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대소변 감각을 잃은 게 내 탓이 아닌데도 나 자신을 비하하고 숨어 지내는 삶이야말로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고가 난 지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소변 감각은 느낄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있어도 밝은 모습으로 열심히 살면, 건강한 사람 못지않게 빛나 보인다는 것을 발견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삽니다.

나는 팔을 이용해 모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옷을 입고, 집안일을 하는데 남들보다 두 배 이상 걸립니다. 하지만 이제는 행동이 굼뜨다고 조급해 하지 않습니다. 비록 두 다리로 달리거나 걸을 수 없지만, 살아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내가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서 삶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1996년 한 해 동안 고등학교 검정고시와 수능을 치르고, 이듬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장애인은 취직하기 힘들다는 주변 사람들의 염려에도 나는 취업하여 전자 회사와 교육 회사에서 근무했습니다. 또한 대학원을 다니고, 어학 연수도 다녀오는 등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놀라운 능력은 바로 선택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일이 일어나고,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라는 말이 가슴 속에 깊이 와 닿습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사고를 당한 그 날 이후 많은 것을 잃었지만 얻은 것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내 인생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었고, 전에는 알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또 내 인생을 완전히 뒤바꾼 운명의 간판 덕택에 시련이나 고통이 와서 주저앉게 되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습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와도 꿋꿋이 살아갈 자신감이 생겼으니 나는 충분히 행복합니다.

하반신이 마비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1만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9천 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잃어버린 1천 가지를 자꾸 떠올리며 후회할 수도 있고, 아직 내게 가능한 9천 가지를 생각하면서 기쁘게 살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오로지 내게 달려있습니다.”<잡지 ‘좋은 생각’ 2009년 6월호 ‘그러나 수기’에 게재>

“아마도 설레는 가을 소풍을 이틀 앞둔 1994년 10월 12일 이었다. 이 날은 태풍 세스가 지나간 뒤였고, 비는 안 왔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던 날이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서 학교에 지각하게 생겼다. 엄마한테 좀 태워 달라고 하니 엄마 학교와는 방향도 다르고 엄마도 늦었다고 그냥 나가셨고, 아빠한테 태워 달라고 하니 아빠는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제대로 일어나시지도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수영교차로의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 갔고, 버스 정류장 100m 전 쯤에서 나는 회수권을 꺼내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그 이후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확히는 이 순간부터 보름 간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조합을 해보니, 내가 회수권을 꺼내기 위해 잠시 서 있던 순간 건물 6층 꼭대기에 있던 8m, 180kg의 증권 회사 대형 간판이 땅으로 떨어졌고 그대로 나를 덮쳤다고 했다. 희한하게 내 주변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고, 커다란 소리를 듣고 나온 건물의 경비원 아저씨가 나를 제일 먼저 발견했다고 한다. 119를 부르는 게 생활화되어 있지 않았던 1994년이어서 그 경비원 아저씨는 지나가는 1톤 트럭을 불러 세워 내 팔다리를 붙잡고 짐을 싣는 트럭 뒤편에 나를 싣고 당시 OO병원으로 갔다고 한다. 혼수상태로 이틀을 지나도 소변을 누지 않았고 내가 어디를 다쳤는지도 알지 못한 OO병원 의사들에 화가 난 부모님은 서울로 이송을 하겠다고 하셨단다. 그런데 내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서울로 가기는 무리였고, 개금 O병원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나의 긴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남편, 딸과 함께. ⓒ박혜정

2009년, 좋은 생각 잡지에 실린 것을 그대로 옮겨 썼고, 그 뒤에는 일기를 조금 덧붙여서 썼습니다. 그때 내용이 지금까지 제가 좌우명 삼아 생각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누구나 각자 힘든 부분이 있고, 자신의 상처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린 이유는, 제가 제일 힘들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혹은 대단하다는 말을 듣고 싶다거나 제 자랑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또, 오래전 다쳐서 유용한 재활 정보 같은 건 드릴 것도 없지만, 이 글을 보고 한 분이라도 힘이 난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글을 썼습니다.

동전의 앞 뒷면이 모든 일에 있듯이, 나에게 주어진 힘든 일,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면 감사한 일, 좋은 일로 바뀌는 게 느껴집니다. 저는 지금 너무 이쁜 딸내미들이 있고, 나를 항상 위해주는 남편도 있고,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걸 깨달은 게 저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저와 같은 상황이나 더 힘든 상황에서도 스스로 이겨내는 힘을 가지고 있는 분이고, 당신도 분명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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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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