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지원인이 필자에게 문서를 읽어주고 있는 모습. ⓒ한지혜

“잠시 시간 될까요? 지금 조금 만났으면 하는데....”

주말 낮에 갑작스럽게 연락 온 이는 다름 아닌 필자의 근로지원인이었다.

직장에서 매일 만나는데 주말에 따로 왜 만나자고 할까?

이런 제안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필자는 이미 긴장이 시작되었다.

필자의 근로지원인도 미래에 대한 계획이 확고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가 퇴사를 희망할 때는 언제든지 쿨~~ 하게 보내 주리라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정 속내는 이곳이 그녀의 마지막 직장이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5년이라는 시간을 돌이켜 보면 그동안 근로지원인 덕분에 많은 추억을 쌓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20여년이 넘는 필자의 직장생활의 상반되는 모습 중 두면을 논해라면 단연코 근로지원인 서비스를 받을 때와 그러지 못했을 때로 나눠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근로지원인 서비스에 대해서 언급해보겠다.

근로지원인 서비스제도란 중증장애인 근로자가 핵심 업무 수행능력은 보유하고 있으나 장애로 인하여 부수적인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근로지원인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필자와 같은 시각장애인인 경우 서류 대독, 대필, 업무관련 정보 검색 지원, 출장 및 업무 시 이동 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해주었다.

근로지원인 서비스가 없었을 시기를 상기해보면 직장생활에서 장애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직무능력에 대한 인정을 받을 수 없었던 시간들이 참 많았다.

이전 근무했던 영리기업에서는 기획과 시나리오는 필자가 직접 짰지만 이동의 불편으로 행사실무자로는 참석하지 못했던 일, 바쁜 직원들에게 다량의 문서를 읽어달라고 부탁해야하는 미안함, 또 가끔은 경쟁이나 대립이 생길 때 본질과 관계가 없는 장애가 화두가 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회식 때가 되면 필자는 회식을 즐기기보단 음식을 먹다가 하게 되는 실수들, 나갈 때 신발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을까 등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또 즐기지 못하고 그런 소모적인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는 자신이 나약해 보이고 안쓰러웠다.

일반기업에서 사회복지기관으로 이직한 이후에도 장애인 근로자로서 겪는 고충은 정도와 상황이 달라질 뿐 여전했다. 그러던 중 2013년 본격적으로 근로지원인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었고 근무시간에 필자의 눈을 대신하여 도와주는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특히 몇 명의 파트너를 거쳐 지금의 근로지원인과 만나게 된 하모니는 참으로 이상적인 조화를 만들어 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장애인들을 비장애인들이 도와주고 배려함에 있어 가장 으뜸이 되어야 할 덕목은 정서적 편안함과 신뢰감이라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의 근로지원인은 정말 탁월했다. 언제든 도움을 청하였을 때 같은 마음이 되어 흔쾌히 직무를 수행해 주었고 좋은 성과가 있을 시 당사자인 필자 이상으로 기뻐해 주었다. 정성스러운 문서편집으로 부족한 기획안을 더 멋있게 만들어 주었고 외부 강연을 나가면 완벽한 서포터로 미흡한 내가 자신 있게 과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역할을 드러내고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필자의 근로지원인은 장애인 당사자인 필자를 통해 온전히 그 보람을 찾는 통 큰 넉넉함이 있는 고마운 분이었다. 아마 이는 근로지원인으로서 진정성과 사명감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결과일 것이다. 가장 낮은 자세에서 소리 없는 열정을 품어준 그녀 덕분에 비로소 필자는 신체적 장애로 인해 부딪히게 되는 업무의 한계점들에서 해방되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근로지원인 서비스 취지를 잘 살린다면 장애로 인해 직무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사례들이 많이 해소될 것이라 확신한다.

필자도 이제 기존 근로지원인은 아쉽지만 보내고 새로운 또 다른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되는 시점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다짐해 본다. 기존 근로지원인을 표본으로 새로운 누군가를 억지로 그 틀에 끼워 맞추려 들기보단 나 스스로가 좀 더 우호적인 이용자가 되어 보아야겠다고.

우리는 가끔 장애인 당사자로서 우리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하고 불합 관계가 지속될 시 그 상대를 원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 이해관계들에서 많은 부분 서로를 존중하고 공감하지 못해 발생하는 엇박자들도 꽤 있는 것 같다.

우리 장애인들은 서비스 수혜자의 입장일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권리에 앞서 우리가 지녀야하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에티켓에 대해 둔감해질 수도 있다. 모든 공적서비스는 쌍방에 의해 이상적인 그림을 만들 수 있는 만큼, 좋은 제공인력과 함께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의무와 역할에 대해서도 한번쯤 곱씹고 성찰해봄이 마땅하다.

진심과 진심이 통하는 세상! 그 안에서 우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름답게 공존하며 많은 감동들과 결실들을 만들어가기를 열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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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 칼럼니스트 집에서는 좌충우돌 쌍둥이들의 엄마! 직장에서는 소규모 사회복지시설의 책임자. 외부활동에서는 장애인인식개선 강사. 동네에서는 수다쟁이 언니. 이 모든 것과 함께하는 나의 장애. 장애인들은 슬프기만 해야 하나요? 우리를 바라만 봐도 안타까우신가요? 장애인의 삶을 쉽게 예단하지 마세요. 우여곡절 속에서도 위풍당당 긍정적 에너지를 품고 매일을 살아가는 모든 장애인동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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