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유물로 변해가는 어린이대공원 안의 국립교육헌장비 ⓒ이원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1968년 12월 5일 국민교육헌장 전문)

위의 글은 53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국민교육헌장 전문이다. 당시 구체적 교육이념의 전개 없이 개혁을 추구한 나머지 대한민국의 교육을 변화를 이끄는 주인이 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를 반영해 53년 전 12월 5일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당시 이 헌장을 세울 때는 대한민국이 가난한 나라였기에, 경제발전을 위한 인재를 기르려는 교육 일변도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을 지니며, 학문과 기술을 배우는 인재를 육성해 이를 경제발전 인력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실시하게 된다, 그 결과 고도의 경제성장이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이 헌장을 암기시키고 이걸 하지 못하면 체벌이 가해졌다고 한다. 더군다나 국가주의 우선으로 획일적, 일괄적 교육을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고, 이후엔 이 헌장이 일제가 황국신민교육 추구를 목적으로 만든 ‘교육칙서’와 비슷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결국 문민정부 들어서 1994년부터 헌장 기념행사 폐지되고 교과서에도 국민교육헌장은 사라졌다.

여러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배제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사진 ⓒPixabay

하지만 이 헌장을 장애인 시각에서 보면, 조금은 불쾌한 감을 지울 수 없다. 당시엔 경제발전을 위한 인력을 양성해야 했기에,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을 가져야 했다.

그런데 기득권층과 비장애인 눈에 봤을 땐 자폐인을 포함한 장애인은 성실하거나 튼튼하지 않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해 경제발전을 위한 일군으로 적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제발전을 추구했던 당시의 공동체 사회의 교육에서 장애인은 분리·배제당했을 것이란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공익과 능률을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향상하고’란 부분에서도 비장애인이 보기에 장애인은 능률과 실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게다가 비장애인이 말하는 능률과 속도는 장애인이 따라가기엔 상당히 버거웠다. 그러다 보니, 비장애인과 같이 어울리며 배우기란 만무하고 이로 인해 장애인은 교육에서 분리·배제당하기 일쑤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애인의 권리의식이 많이 발전하고, 장애인에게 필요한 정당한 편의란 개념도 생기며 여기에 대한 조치도 취해지고 있지만, 아직도 비장애인의 능률과 속도를 따라가기에 버거운 건 여전한 것 같다. 비장애인이 말하는 공익과 능률은 장애인에게 있어선 상당한 폭력으로 다가온다.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는 부분에서도 조금은 거슬린다. 특히 자폐성 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의 경우엔 비장애인이 봤을 땐 소위 말하는 문제행동(없애야 하는 말)으로 사람들이 협동·협력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리며 배우는 교육에서 배제된다.

또한,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란 문구를 보면 결국, 국가가 발전하기에 개인이 발전한다는 거다,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는 장애인을 포함한 개인의 인권을 존중함에서부터 국가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한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그래서 개인 인권보다 국가가 우선한단 지적에 동의한다.

국민교육헌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로 인한 후유증은 아직도 여전한 것 같다, 장애가 있거나 혹은 느리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 현장에 폭력과 혐오가 만연하고 장애 학생을 주류교육에서 배제하고, 비장애학생과 분리하는 건 여전하다, 창의성보다는 점수 따기에 급급한 나머지, 수능 입시 위주 일변도의 획일화된 교육으로 나가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부하는 통합교육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그림(좌측), 16년 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통합교육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한 교복 퍼포먼스 모습(우측) ⓒPixabay, 에이블뉴스 DB

아직도 우리나라는 분리 교육이 대세를 이룬다. 하지만 장애계에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는 통합교육 시행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통합교육을 통해 장애 등의 다양성을 존중받음은 물론 장애인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교육헌장은 개인의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은 채 오로지 국가 발전만을 강요한 측면이 상당히 많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국민교육헌장, 이로 인한 분리 교육 대신, 이제는 장애 등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패러다임을 통해 함께 배우고 어울리는 교육으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국민교육헌장을 다시 고친다면, 그러한 패러다임이 담겨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분리 교육이 대세인 일본에서 오사카시를 포함한 몇몇 지자체에서 통합교육을 40여 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통합교육 진행하는 지역사회에서 학생들은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서로에 대해 관용적이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에도 장애 학생을 위한 칸막이를 설치해 비장애학생과 함께 공부할 수 있게 했단다. 여기에, 비장애 학생이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장애 학생의 건강을 생각하며, 자신들이 마스크 쓰기에 철저해야겠단 이야기를 들었을 땐 진정한 통합교육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우리나라도 분리 교육이 대세지만, 일본 오사카시처럼 통합교육을 위해 시도하는 지자체가 나온다면, 통합교육도 분명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래서 통합교육을 주장하는 장애계의 요구에 경청하며, 통합교육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제시하는 지자체가 나오길.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장애, 성적 지향 등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진정한 통합교육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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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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