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와 두자녀. ⓒ한지혜

이전 기고들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듯 필자는 아들딸 쌍둥이를 둔 직장맘이다. 직장에서 필자를 부를 때에도 이용인들은 직함이나 이름 대신 “쌍둥이엄마”라는 애칭을 자주 사용해주신다.

필자가 출산한 그해부터 지금까지 타이틀을 만들어준 그 대상의 주인공들이 벌써 내년이면 초등학교 최고학년이 된다. 매일 울면서 부족한 나를 탓하며 어설픈 엄마놀이를 시작했던 필자도 교육정보와 아이 성적에 관심 많은 이 시대의 전형적인 학부모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세월의 빠름을 느낄 수 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두 아이가 동시에 말한다.

“엄마! 친구들이 나 보고 전교 회장에 나가보라고 해요. 열심히 밀어주겠다고. 저 전교회장 후보에 나가보면 안 될까요!”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아이들의 청유에 필자는 다음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뭐.... 뭐라고?”

사실은 요즘 전교회장은 예전과 달리 특별한 지원자격이 없다. 초등학교에서는 석차를 따로 나누지 않기 때문에 성적우수자만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별도의 재력을 요하는 부분도 없다.

학우들과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가 다득표를 하면 그 친구가 전교회장으로 임명된다고 이해해도 좋을 법하다. 하루종일 곰곰이 생각한 필자는 아쉽게도 쌍둥이들의 청유를 허락해주지 못하였다. 안 되는 이유의 근원은 아이들이 아니라 엄마인 나 자신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초등학교는 일반적으로 전교회장으로 당선된 자녀의 엄마가 학부모 회장을 맡게 되는 사례가 많다. 물론 의무적인 건 아니지만 개인생활의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하는 학부모회장 직분에 다른 부모가 선뜻 나서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통적인 관례처럼 학생회장의 엄마에게 소임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이를 고사한다면 그 따가운 눈초리는 부모뿐만 아니라 당선된 자녀에게까지 전가될 수밖에 없다.

사실 필자라고 아이들의 도전기를 왜 꺾고 싶겠는가? 단순한 시간적 희생이라면 1년 치 모든 연차를 다 써서라도 내어줄 수 있고 물리적, 체력적 부분이라면 쓰러지지 않는 한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나에게 장벽은 그러한 내어줌의 불편이 아니라 다름 아닌 장애다.

교장선생님께 먼저 인사 한번 제대로 건네기 힘든 내가, 단체 연수가 있을 때 낯선 곳에 독립보행조차 자유롭지 못할 필자에게 학교를 대표하는 부모의 역할은 무리가 됨은 분명했다.

늘 당당하자고 피력하는 필자가 도전조차 시도하지 않는 모습이 참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또한 결과가 좋아 최초로 장애를 가진 부모가 일반학교 학부모회장으로 임명된다면 칼럼 내용도 더욱 고무적인 표현들로 꾸며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혹한 부담을 갖고 Barrier Free라는 이름 아래 맞서보기에는 이 사회의 환경도, 필자도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더불어 아이들 인생에서 절대적인 방향점을 만들어내는 핵심적 찬스라면 또 상황은 다르겠지만 최고보다 경험치에 가치를 우선하는 필자의 교육관에서는 그리 중요한 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생각 끝에 그런 이유로 아이들에게 용기를 내어 필자의 입장을 솔직하게 전했다. 아이들도 장애를 가진 엄마의 입장을 조금은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순순히 수긍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일은 참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실 필자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신체적 불편으로 육아에 무능한 것 같은 자신 때문에 매일 자책하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장애가 있다는 것이 가장 원망스럽게 생각된 경험을 찾으라면 필자는 두말 않고 그때를 떠올린다. 분명 생물학적 부모는 필자가 맞는데 주변의 도움 없이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스스로가 참으로 작아 보이고 무능하게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전긍긍하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성큼성큼 자랐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만큼 나의 사고도 조금씩 유연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사실 “장애인 엄마”라는 생각 전에 필자를 그저 한 인격을 가진 엄마로 대하고 있음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필자는 아이들의 생각을 미리 판단하고 불필요한 아집에 쌓여 스스로를 괴롭혔는지도 모르겠다.

4살 때부터 가파른 계단을, 잠투정을 하면서도 스스로 안내해야 되었던 아이들. 병원진료를 가도 보호자인 엄마 대신 아픈 와중에도 문진표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작성해야 되었던 상황. 그리고 전교회장 후보를 위와 같은 이유로 도전하지 못하게 된 상황까지. 일화들을 떠올리면 정말 가슴이 시리고 여전히 미안한 마음부터 든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낙담하거나 자책하지 않는다. 많은 주변 부모들과 교류해본 결과 어느 부모인들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수도 없으며, 부족한 부분들은 유형을 달리할 뿐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필자는 필자대로 못해 주는 부분이 있는 반면 또 반대로 내 아이들의 엄마로서 존귀하며 특별할 수 있는 특장점에 표적을 맞추어 역할을 해보려 한다.

“어릴 때부터 장애가 있는 엄마를 배려하며 자발적으로 나서는 습관이 들다 보니 교우관계도 좋고 적극성을 가지게 되어 학교회장 선거까지 꿈꿀 수 있었구나”라며 생각의 전환을 해보았다. 이러한 긍정적 생각들이 결국 아이들이 성장함에 있어 가장 큰 모퉁이 돌이며 지지대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이제 우리 둥이들은 엄마를 닮아 미련도 빨리 버리고 또 다른 도전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아들은 학교방송부 PD에 원서를 냈고 딸은 티볼(야구를 변형한 구기 경기) 전국대회 출전권을 따기 위해 열심히 운동 중이다.

이제 정말 필자의 역할이 필요한 차례다. 장애를 가진 엄마이기 전에 그저 두 아이의 엄마로서 긍정적 에너지를 마음껏 뿌려주며 묵묵히 곁을 응원해주는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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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 칼럼니스트 집에서는 좌충우돌 쌍둥이들의 엄마! 직장에서는 소규모 사회복지시설의 책임자. 외부활동에서는 장애인인식개선 강사. 동네에서는 수다쟁이 언니. 이 모든 것과 함께하는 나의 장애. 장애인들은 슬프기만 해야 하나요? 우리를 바라만 봐도 안타까우신가요? 장애인의 삶을 쉽게 예단하지 마세요. 우여곡절 속에서도 위풍당당 긍정적 에너지를 품고 매일을 살아가는 모든 장애인동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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