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에 강릉에 가족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딸에게 강릉에 여행을 갔던 기억을 물어보았더니 먹었던 음식과 방문한 곳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방문한 곳 중의 한 곳이 당시 참소리박물관이었는데, 딸은 지금의 이름이 에디슨박물관이라고 답했다.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듣고 알고 있었을 수도 있고, 연애시절 혹시 다시 가봐서 알 수도 있다. 딸을 데리고 여행을 한 것이 세상을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추억만들기 의미도 있었는데, 성인이 되어 기억을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지금은 그 추억을 내가 제대로 기억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다.

에디슨박물관은 한 건축 회사 사장이 세계 여행을 다니며 수집한 많은 발명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에디슨을 기념한다면 에디슨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았다. 에디슨이 매우 높은 지능지수를 가졌을 것 같은데,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한 엉뚱함이 상상력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축음기를 발명한 것이 에디슨이 아니라고 했다. 소리를 저장하는 축음기는 프랑스인 에두아르 레옹 스콧(1890년, 인간의 귀를 본따서 만든 포노토그라프)이며, 에디슨이 발명한 것은 재생기능이 있는 유성기라고 했다. 유성기 즉, 토킹 머신은 노래를 듣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시각장애인들은 녹음테이프가 개발되고 나서도 오랜 기간 책을 읽어주는 음성도서로 사용되었다.

에디슨박물관 여기저기에는 강아지 인형이나 사진이 많다. 이 강아지를 HMV(His Master’s Voice)라고 하는데, ‘주인의 목소리’로 번역된다. 영국 그라모폰(현 워너 클래식)사가 1899년 구매하여 사용한 상표이다.

그라모폰사 창립자 에밀 베를리너가 1900년대에 와서 각국의 그라모폰사를 여러 회사로 분사, 매각되면서 빅터사나 소니뮤직 등도 이 상표를 사용하게 되었다. 강아지의 이름은 니퍼(Nipper)이다. 기분이 좋으면 주인 뒤를 따라다니며 발뒤꿈치를 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국의 화가 프란시스 바로드가 니퍼가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그림을 그려서 에디슨에게 판매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그라모폰사에서 구입을 하여 스토리텔링을 하여 상표로 사용하였는데, 여성들의 감성을 울리면서 매출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프란시스가 에디슨에게 거절을 당하자 바로 경쟁사에 판 것이 아니라 그라모폰사의 한 인사가 그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 그림을 보고 애디슨의 제품 대신 자신들이 판매하는 스피커를 넣어 다시 그려 달라고 주문을 했다고 한다.

35년 전 내가 에디슨박물관을 방문했을 당시 에디슨박물관 해설사 직원의 스토리텔링은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로부터 시각장애인들은 음악을 좋아하여 가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시각장애인이 혼자 살아가는 외로움을 달래고자 강아지를 키웠다. 그런데 지방 공연을 갈 때에는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아지를 홀로 남겨 두고 지방공연을 갔었는데, 주인을 찾아 거리를 방황하던 니퍼가 어느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주인의 노랫소리를 듣고 주인의 목소리에 ‘우리 주인이 여기 있구나!’ 하며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시각장애인이라서 그런 말을 지어냈을까?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나는 당시 이 이야기가 그라몬폰 사에서 스토리텔링한 내용인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최근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런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 해설사가 왜 지어낸 이야기를 했을까? 참으로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에디슨이 광고 효과에 대한 감각은 매우 둔한 사람이었을까? 개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주인 목소리를 들으며 주인을 그리워하는 이야기는 그 회사 제품의 우수성을 이야기하기에도 충분한 것 같다. 시각장애인의 삶과 이 이야기를 통한 시민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 딸과의 여행추억처럼 그 이야기를 들은 추억을 절대 버릴 수가 없었다.

프란시스가 강아지를 그린 사연은 다음과 같다. 프란시스의 동생 마크 바로드가 유기견을 데려와 키웠는데, 동생이 죽자 프란시스가 데려와 키웠다. 니퍼는 무도회의 권유를 즐겨듣던 프란시스가 음악을 들으면 니퍼도 스피커 옆에서 꼼짝하지 않고 음악을 들었다. 그림 작업을 할 때에는 음악을 듣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제수씨의 외로움을 생각하여 강아지를 제수씨에게 보내주었고, 니피가 죽자 가족묘에다가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그 무덤은 지금도 남아있다.

그라몬폰사의 스토리텔링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음악을 좋아하던 주인이 니퍼를 키웠다. 음악이 끝나면 니퍼를 불러주곤 했다. 주인이 죽게 되었는데, 어디선가 무도회의 권유가 들려오자 니퍼가 그곳으로 달려가 꼼짝 않고 음악을 들었고, 음악이 끝났음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주인이 자신을 불러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쉽게 신의를 저버리는 인간사에서 이러한 니퍼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여성들에게는 아련한 슬픔과 함께 음악에 대한 치유를 이야기만으로도 느끼게 한다. 니퍼는 잭 러셀테리어 잡종이라고 한다. 니퍼는 영국 숙어로 꼬마라는 의미도 있고, 공구처럼 물다라는 의미도 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나 종사자, 정치인, 정책시행자 등은 모두 장애인에게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니퍼처럼 끈끈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동행의 의미를 초월하여 감수성과 감정이입이 일어나야 한다.

장애인을 관리한다거나,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장애인 인식 역시 다양성을 강조하거나 평등을 강조하는 것도 효과가 크지만, 함께 해야 한다는 전제가 가장 중요하며 왜 함께 해야 하는지를 느끼게 하고, 그러면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해설사가 지어서 들려준 그 이야기가 니퍼의 원래의 이야기가 아님이 너무나 아쉽다. 그때의 감동이 일어났던 추억이 실제의 스토리텔링이 아니었음이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그 추억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다시 기억나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전설 같은 니퍼의 이야기를 이렇게라도 남겨두고자 한다.

벨이 청각장애인을 위해 보청기를 연구하다가 전화기를 발명했다고 하는데, 엘리사 그레이보다 불과 몇 시간 특허출원이 빨라서 최초의 발명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새로운 시대의 전환기에 장애에 대한 관심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차 산업 시대에도 문명의 이기를 가장 불편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출발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완전한 통합을 위한 니퍼가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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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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