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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게 싫다고!

직관이 아닌 경험을 통해 배우는 자폐인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7-28 10:48:50
“I can remember the frustration of not being able to talk. I knew what I wanted to say, but I could not get the words out, so I would just scream.(내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의 좌절을 기억한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지는 알고 있었으나, 적절한 말들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단지 소리를 질렀을 뿐이다.)-Dr. Temple Grandin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처음 호주에 와서 대형 슈퍼마켓에 가면 당황스러웠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스캔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는 점원과 한참 동안 사는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떤 손님은 지갑을 탈탈 뒤지며 지폐와 동전을 꺼내 값을 맞추고 있는 장면.

이런 모습을 보면 한국에서 갓 넘어온 나는 자동으로 초조했다. 뒤에 줄 선 사람들이 헛기침을 하며 빨리하라는 압박을 보내거나, 오만상을 찌푸리며 짜증을 내거나, 이런 말들을 쏟아낼 까봐 저절로 새가슴이 되곤 했다.

“드럽게 말이 많네!”, “진짜, 어지간히 굼뜨네!”

‘빨리 빨리’는 아들에게 금기어다. 벤은 마음이 급해지고 불안이 가속화되면 순식간에 잘 작동하던 기능들이 곤두박질을 친다. 아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비자폐인’이란 사실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혜택(advantages)’과 ‘특권(privileges)’을 갖고 태어난 것인지를 실감한다.

비자폐인이 당연하게 직관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기능들, 그래서 한번도 애써 고민할 필요도 배울 필요도 없던 것들을 벤은 수많은 관찰과 노력과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 가끔은 경외감이 든다.

“직관이 아닌 경험을 통해 배우는 자폐인”

가령, 내가 자연스럽게 상대와 눈맞춤을 하며 대화를 한다면, 벤은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내가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스몰 토크(small talk, 자잘한 일상적인 이야기들)를 이어갈 수 있다면 벤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이해를 해야 한다.

내가 자연스럽게 은유와 비유와 풍자를 이해한다면 벤은 수많은 혼란과 혼돈 속에서 ‘언어가 문자 그대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님을 배워나가야 한다. 내가 공공 장소에서 한번에 몇가지 멀티 태스킹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면, 벤은 한가지씩 순서대로 처리해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릴 수 밖에 없다.

자폐인들은 낯선 타인과의 관계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본인들의 의견과 취향을 피력하는 일도 서툴고, 비자폐인처럼 빨리 결정하고 해결하는 일도 버거운 경우가 많다.

해나 개스비(Hannah Gadsby, 호주의 스탠딩 코미디언이자 자폐 당사자)의 말처럼 카페 점원의 “어떤 커피 드실래요?”라는 간단한 질문에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당황스럽다는 말처럼 말이다.

그런데 만약 뒤에 선 손님들이 빨리 하라고 재촉하고 압박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군다나 벤처럼 겉으로는 너무 멀쩡해 보이는 수많은 자폐인들은 장애가 쉽게 드러나지도 않아 배려를 받기도 힘든 상황이 비일비재하니, 일상이 전투가 되고 녹초가 된다.

안타깝게도 기능이 상대적으로 좋은 자폐인들이 ‘자폐 소진(autistic burnout, 자폐인들이 감정적/정서적으로 소진되는 현상)’에 시달리는 경우가 흔한 이유다.

인간의 삶은 매 순간이 선택이고 결정이다 보니, 엄마인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비자폐인 벤의 친구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러울 때가 있다. 혼자서 편의점에 들어가 이것 저것 비교하며 원하는 물건을 고르고 점원의 질문에 대답도 하고 계산도 척척하고 나오는 모습, 이 당연한 일들이 내 아들에게는 마치 미션 임파서블한 일처럼 보인다.

돈 계산도 할 줄 알고 영어도 잘 하지만, 아직도 혼자서 편의점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사라고 하면 취약해지고 안절부절 한다. 그러니 ‘자기 결정권(self- determination)’, 내 아들이 본인이 원하는 바를 당황하여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깊은 불안이 수시로 닥치곤 한다. 내 아이를 닦달하여 열심히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던 나에게 한날 벤은 흥분하여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자폐는 아주 짜증이 나. 집중을 할 수가 없어. 나도 친구들처럼 잘하고 싶단 말이야.”
“어떻게 집중이 안 되는데?”
“교실 벽에 붙은 모든 포스터랑 그림들이 내 머릿속을 방해 해. 그리고 수업 중에 친구들이 내는 모든 소리들이 내 귀에 들어 온단 말이야. 선생님 말도 내 과제에도 집중을 할 수 없어.”
“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선생님께 질문하면 다시 설명해 주실 거야.”
“난 그게 싫다고!”

귀가 번쩍 뚫리고,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는 순간이었다. ‘자기 결정권’, 어쩌면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자폐인들에게 공감 능력이 결여됐다고 말해 왔다. 그렇지 않다. 그건 비자폐인들이 자폐인들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된 것이다.”

‘강렬한 세계 이론(The Intense World Theory)’을 주장한 자폐 아들을 키우는 뇌 과학자 헨리 마크람(Dr. Henry Markram) 박사의 말이다. ‘자폐인들은 공감 능력이 없다.’ 또는 ‘자폐인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는 달리 벤을 키우면서 가장 난감한 사항 중 하나는 공감 능력과 감정이 비자폐인에 비해 너무나 강렬하다는 것이다.

주변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온몸으로 스폰지처럼 흡수하고, 너무나 강렬한 감정들이 순식간에 쓰나미처럼 밀려와서 이를 처리하는 뇌가 과부하에 쉽게 걸리고, 결과적으로 원만히 작동하지 않아 언어로 감정들을 다시 구체화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내가 자폐를 지금처럼 이해하지 못했을 때, 벤과 ‘코코’ 영화(픽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를 보러 가서 채 십분도 안 되어 영화관을 나와야만 했던 적이 있다. 영화관의 컴컴함과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웅장한 소리들 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슬픔과 공포를 온몸으로 흡수하는 벤이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채 십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 말이 자폐인은 평생 영화관을 갈 수 없다는 뜻은 아니나, 적응하고 익숙해지는데 오랜 시간과 경험이 걸리고 제약 조건이 더 많다는 뜻이다.

“자폐는 공부할 수록 무지가 드러나는 일…”

이런 아이에게 매번 선생님한테 질문하라고 가르치는 일(본인이 다르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하는 일), 옆 자리에 앉은 친구가 수시로 본인을 도와주는 일(친구와의 관계에서 위계가 발생하고 당연히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일)이 벤의 자존심을 뭉개고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할 수가 없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법”과 더불어 “도움을 거절하는 법”도 가르쳤어야 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의 “지원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부재했다. 벤이 아주 쐐기를 박았다.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게 싫다고!”

깨달음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자주 가는 단골 카페에는 활동 지원사(support worker)를 동반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자주 방문한다. 턱이 없는 넓은 출입구 덕분에 휠체어가 드나들기 편리한 구조다. 어느 날 유심히 관찰해 보니 활동 지원사가 각종 케이크와 샌드위치 진열대 앞에서 장애 당사자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며 선택을 돕고, 원하면 점원이 해당 품목을 꺼내서 당사자에게 직접 보여주기도 하고 있었다.

당사자가 음식을 고르자, 활동 지원사가 다시 커피 주문대로 휠체어를 옮겨서 다양한 커피의 종류를 설명해 주며 당사자의 선택을 지원하고 결정을 기다렸다. 그 뿐만이 아니다. 뒤에서 주문을 기다리는 다른 고객들은 멀찍이 서서 장애 당사자와 활동 보조사, 그리고 점원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상대적으로 긴 주문 시간들을 당연하다는 듯 방해하지 않고 있었다.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은 스스로 쟁취하는 게 아니라, 외부로부터 당연하게 보장되는 권리”

‘아하. 이게 바로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self-determination)을 의미하는 거구나.’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은 스스로 확보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게 외부의 환경이 보장 되어야만 실천 가능한 권리란 사실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었다.

종종 벤이 ‘장애인’이란 사실을 잊는다. 벤이 ‘할 수 없는 일’과 ‘하기 싫은 일’을 혼동하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비자폐 아동들과 비슷한 기준과 기대를 들이밀며 재촉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말이 아들을 무시하고 잠재력과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뜻이 아니라, 내 아이에게 적합한 지원과 서비스가 보장될 때 본인의 강점과 장점을 맘껏 발휘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가령, 휠체어가 필요한 아동에게 휠체어, 경사로, 엘레베이터 등의 제반 환경을 제공한 후 학습을 기대하듯이, 자폐 아동들에게도 최적화된 교육 환경을 제공받을 권리가 보장 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제는 등교를 하는 자체만으로도 버거운 벤에게 더 요구하지 말고, 학교 측의 환경과 지원을 내 아이에 맞게 조정해야 하는 일이 급선무다. 맘이 급선회를 탔다. 바로 교감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에게 면담 요청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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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루나 (bom02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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