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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 있습니다, 자폐인 의사소통 능력에 결함 있다는 말

자폐인에게는 자폐인의 소통 방법이 있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5-31 15:29:07
“I listen more effectively when I am focusing on your voice. Facial expressions and body movements are distracting or sending me confusing messages.(나(자폐인)는 상대의 목소리에 집중할 때 훨씬 효율적으로 대화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비자폐인) 사람들의 얼굴 표정과 몸동작은 나의 주의집중을 산만하게 하거나 나에게 혼란한 메세지를 보낸다.)”-Summer Farrelly

2012년, 영국이란 나라에 사는 한 박사가 이론 하나를 들고 나왔다. 누군가에게는 ‘도발’적이고 누군가에게는 ‘발칙’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통쾌’한 주장이었다. 소위 “더블 엠퍼시 프라블럼(Double Empathy Problem)’ 이론인데,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세상이 오랫동안 자폐인에게 부여한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의 결함을 지닌 사람들’이란 낙인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폐인들의 의사소통 방법에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폐인과 비자폐인간에 의사소통의 방법이 너무 달라서 생기는 오해들일지도 모른다. 비자폐인이 비자폐인끼리 소통이 수월 하듯이, 자폐인은 자폐인 간에 소통이 수월하다.”

이런 황당한 주장을 들고나와 자폐 분야를 연구 중인 수많은 비자폐인 연구자들을 당황하게 만든 사람은 데미안 밀턴(Dr. Damian Milton) 박사인데, 그는 스스로가 성인이 되어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자폐인 연구자이이기도 하다.

그 후 The University of Edinburgh 대학의 캐서린 크롬프톤(Catherine Crompton) 박사는 “디퓨전 체인(Diffusion Chain)”이란 실험으로 밀턴 박사의 주장이 옳음을 증명했다.

“디퓨전 체인”이란, 차이니즈 위스퍼(Chinese whisper) 또는 텔레폰(telephone) 게임 비슷한 건데 여러 명의 사람을 일렬로 앉혀 놓고 앞 사람이 뒤 사람에게 귓속말로 아무 연관 없는 두 문장을 차례로 전달하여 마지막 사람이 얼마나 정확하게 첫 사람이 건넨 말을 이해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이다.

크롬프톤 박사의 ‘디퓨전 체인’ 실험은 1번 자폐인 그룹(Autistic people), 2번 비자폐인 그룹 (Neuro Typicial), 3번 비자폐인과 자폐인 혼합 그룹, 세 실험군으로 나눠 이뤄졌는데 결과는 어땠을까?

1번 그룹과 2번 그룹의 결과에는 특별한 차이가 없었고 3번 그룹의 경우에만 의사전달 결과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즉, 밀턴 박사가 주장한 ‘더블 엠퍼시 프라블럼’의 이론처럼 자폐인은 자폐인끼리 비자폐인은 비자폐인끼리 의사소통이 원활한 반면에 두 그룹 사이엔 상대적으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결과였다.

그러니까 비자폐인 입장에서 ‘자폐인이 사회적 의사소통에 결함이 있다’고 믿는다면, 역으로 자폐인 입장에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폐인들이 의사소통에 결함이 있는 게 아니라, 비자폐인이 우리 자폐인과의 의사소통에 결함이 있다.”

장담하건데 많은 사람들에게 이 말은 오래전 내가 그랬듯, ‘정신 나간 소리’쯤으로 들릴 것이고 도전적이고 불쾌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평생을 ‘자폐인들은 의사소통 능력에 현저한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살아왔으니 이 얼마나 뒤통수를 때리는 주장이란 말인가.

“같은 부족끼리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아이들.”

나와 호주 로컬 친구 엘리는 우리의 자폐인 아이들을 보며 말한다. 정말 의아했다. 벤이 학교에 가서 어울리는 친구들은 대부분이 본인과 비슷한 성향의 뉴로 다이버전트들(Neuro divergent, 뇌신경이 다양한 사람)이었다. 내가 시킨 것도 담임 교사가 붙여준 것도 아닌데 벤 주위엔 언제나 (부모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진단받은) 자폐 아동, ADHD아동, 난독증 아동들 즉 뉴로 다이버전트 아동들이 있었다. 이 아이들을 우리 집에 초대해서 벤과 함께 노는 모습을 보면 신통방통하게 그들의 방식대로 잘도 논다.

“엄마, 모리는 ADHD 인 거 같아. 수업 시간에 거의 집중을 못해.”
“엄마, 리암은 나같은 자폐인 같아. 친구들하고 놀 때 갑자기 화를 내거나 울면서 가버려. 엄마가 자폐인은 감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고 했잖아. 나처럼 상담사한테 가서 감정 공부를 하면 좋을 텐데.”

예전이라면 놀라 자빠질 정도였겠지만 이제는 전혀 놀랍지 않게 벤의 추측은 맞다. 비자폐인인 나의 눈에도 자폐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고유한 눈빛, 손짓, 몸짓 등 자폐인들의 비언어적 소통과 감정이 읽히는데 자폐인이란 정체성을 아는 벤이 인지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생각을 살짝만 돌려도 너무 당연한 것이 자폐인이 오랜 시간을 걸쳐 비자폐인의 문화와 소통 방식을 공부해서 알아내듯, 비자폐인인 나 또한 그들의 문화와 소통 방식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공부했으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세계가 읽힐 뿐이다.

몇 달 전에 본인이 자폐인이란 사실을 안 아들은 나날이 ‘뉴로 부족’(Neuro Tribes, Steve Silverman의 책 Neuro Tribes에서 뉴로 다이버전트들을 일컫는 말에서 인용)을 알아보는 안목이 쑥쑥 자란다. 이제 벤은 본인의 뿌리가 어디인지, 본인의 부족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본인이 태어난 모습 그대로 환대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어디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안심이다.

‘아들, 너 이제 덜 외롭게 살겠구나.’

나는 더이상 밀턴 박사와 크롬프톤 박사의 주장들에 일말의 의심도 갖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호주 이민 생활만 빗대어봐도 너무나 당연해서 의문이고 뭐고 두 번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가령 호주에 사는 많은 1세대 한국 이민자들은 본인들의 재능과 능력에 무관하게 호주 사회에서 다수가 사용하는 영어 장벽과 상이한 문화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장애”를 경험하거나 “무능”한 사람의 처지에 자주 놓인다.

한국에서라면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낼 수 있는 사람들이 호주 로컬들과 모였을 때 영어로 하고 싶은 말, 해야할 말을 자유자재로 다하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연스럽게 소수자의 삶이란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로 전락하기 쉬운 조건을 담보한 삶임을 알기에 나는 마음속에 이런 비장의 무기 하나를 꼭 품고 산다.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한국어를 못하는 것이다.’

한편 호주에 사는 한국 이민자로서 내가 좋아하는 호주 로컬 친구는 어떤 사람들일까? 한국인의 언어와 문화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acknowledge)하는 사람, 한국어와 문화가 단지 다를 뿐이지 열등함의 근거가 아님을 인식(awareness)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벗으로 두고 싶은 사람은 나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해(understanding)하고 존중(respect)하는 사람들이다.

“눈을 응시하며 비언어적 표현들이 가득한 의사소통을 하는 비자폐인의 소통 방식에 문제가 없다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비언어적 표현들을 사용하지 않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자폐인의 방식이 왜 문제죠?”

나는 자폐를 슈퍼파워라고 생각한다, 당당히 말하는 한 자폐 당사자 성인이 던진 뼈를 강타하는 반문을 듣고 너무 부끄러웠다. 13살의 자폐 당사자인 호주의 십대 청소년 서머(Summer)의 말처럼 벤이 엄마의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 이유가 나의 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엄마와 더 잘 소통하기 위한 방편임을 알았을 때 나는 결심했다, 내 평생 다시는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벤, 엄마 얼굴을 보며 말해줘!”

세상은 두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언어 천재’, ‘능력자’라고 잔뜩 부러워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자폐/비자폐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며 넘나드는 사람들 또한 놀라운 능력자임이 분명하다. 너무나 생경한 두 부족의 문화를 잇는 일, 세상의 평화와 번영을 유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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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루나 (bom02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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