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배제·분리·거부를 통해 장애인이 차별 당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그림.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3일 전 은행에 갔던 적이 있었다. 1년짜리 정기적금을 들려고 갔는데, 적금 드는 과정에서는 신분증을 내놓게 되어 있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나는 복지카드 대신 운전면허증을 내놓았다.

성년후견제 도입 이후 후견인이 없는 장애인 금융거래 등을 거절하며 후견인 동행 요구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다. 그런지라 자폐성 장애가 있으면, 금융거래를 혹시나 거절하지는 않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서였다.

그런 다음 적금 시 발생하는 이자에 관해 혹시 장애인의 경우 더 받을 수 있냐고 질문했다. 조금 더 받을 수 있지만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제서야, 복지카드를 내놓아 나의 장애를 드러낼 수 있겠다는 안도감은 들었지만, 이자가 얼마 차이 나지 않아 신분증은 그냥 운전면허증으로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장애를 드러내는 것이 무슨 죄냐?’ 하는 생각도 들어오게 된다. 장애라는 것이 특성이고 다양성인데, 왜 이래야 하는지? 물론 어떤 장애가 있냐고 물어본 것이 아니라서, 대답할 필요는 없다. 설령 물어본다고 해도 나의 장애에 대해 당당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좋은 사회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지독하고, 특히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이 상당하다. 지적장애인에겐 영원한 어린아이, 자폐성 장애인과 정신장애인에겐 위험하다, 폐쇄적이다, 범죄를 저지른다 등의 편견이 아직도 팽배하다.

‘장애인은 무조건 위험하다는 뿌리 깊은 편견’이란 피켓을 들고 있는 중증장애인 모습. ⓒ에이블뉴스 DB

3일 전, 자폐성 장애인의 장애인 콜택시 보조석 착석금지에 대해 장애인 단체가 항의 진정을 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천교통공사에서 뒷자리에 탑승한 자폐성 장애인이 발로 차 운전원이 위험했다는 CCTV가 있는 등 발달장애인이 보조석에 탑승 시 외부상황에 집중할 수 없어 거부하는 거는 당연하다고 인권위에선 의견을 냈는데, 이 의견이 아직도 발생하지 않은 위험을 이유로 거부하는 거라 장애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기에 항의 진정을 했다는 거다.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정신장애인이 조수석에 앉고 싶은 것은 자신의 선택이니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만약 운전수가 위험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장애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면서도, 차분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분위기, 밝은색 피하기 등 정신적 장애인 개개인에게 맞는 합리적 편의를 고민하며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고민하지 않고 거부하는 건 명백한 차별인 것이다.

그러기에 장애인 단체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인권위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서 자폐성 장애인이 위험하니 보조석 착석 거부를 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모순된 결정이다. 인권위가 장애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고 아직도 법리 중심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더구나 정신적 장애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겪어보지 않고선 사람들이 잘 모르고, 이 장애에 대해 위험하다는 등의 편견은 아까 말했듯이 지독하다. 인권위의 이번 판단을 통해 정신적 장애인은 위험하단 편견이 더 심해질 것 같은 우려가 생긴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정신적 장애인이 많을 수밖에.

실제로 정신적 장애인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통계에도 잘 나와 있지 않은가? 대검찰청이 발표한 2011년 범죄분석 보고서에는 정신장애인 범죄율이 비장애인에 비해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이런 경향은 지금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 경찰청 통계에서도 비장애인의 공격행위로 운전상 안전이 위협받는 사례는 매년 약 3000건인 반면, 지적‧자폐성 장애인 사례는 한 건도 없다니 말 다하지 않았나?

‘Danger slow down’표지. ⓒWikimedia Commons

이런 상황이니 장추련, 피플퍼스트 등의 단체들이 명백한 차별상황에 항의하는 건 두말할 필요 없으며, 계속돼야 한다. 무엇보다 장애에 대한 의료적 사고관을 철폐하고, ‘장애인은 동등한 사람이다’라는 인권적 관점의 사고 전환이 국가‧지자체 차원에서 있지 않고선, 차별은 계속될 것이며, 자신의 장애를 죄인 것마냥, 숨기기에 바쁜 정신적 장애인들은 많아질 것이다.

얼마 전, 카스 맥주 광고에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 윤여정 씨가 이런 말을 했다.

“나부터 숨기지 않으면 상대방도 마음을 열더라고. 내가 감추는데, 상대방이 뭘 믿고 나랑 친해져? 누군가랑 서먹해? 그러면 속마음을 싹 드러내. 나부터 투명하게. 그러면 서로에게 진심이 된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 사회를 사는 정신적 장애인에게는 좀 불편한 구석이 있다.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정신장애인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은데,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는 순간 장애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당했다. 또 어울리고 싶은데, 지독한 편견을 드러낼 게 예상되니 자신을 감출 수밖에.

물론 정신적 장애인들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정말로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려는 노력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다면, 정신적 장애인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전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지금보다 사회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한‧배제‧분리‧거부를 통해 차별을 당하는 정신적 장애인을 더 이상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질문만 하고 글을 마친다.

“정신적 장애인의 장애 드러내기, 언제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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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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