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장애인 승용차 홍보 이미지. 왼쪽 하단의 ‘Menschen mit Behinderung’은 ‘장애인’을 뜻한다. ⓒwww.volkswagen-nutzfahrzeuge.de

길을 가다가 아들이 갑자기 “와, 멋지다!“하고 소리친다. 포르쉐 최신 모델을 발견한 것이다. 때마침 중년의 남성이 승차하려던 순간이다. 그런데 아들이 넋을 잃고 차에 눈을 떼지 못하자, 차주인은 아들에게 “자동차 안에도 한번 구경해 볼래?“하며 심지어 아이가 운전석에 타보도록 친절을 베푼다. 아이가 워낙 자동차를 좋아하다 보니, 새로 보는 자동차는 결코 지나칠 수 없다.

다음 날, 길을 가다가 아들이 또 “와, 멋지다!“하고 소리친다. 이번에는 또 무슨 신기한 자동차를 발견했나 싶어 아이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니, 젊은 남성이 자신의 휠체어를 자동차 뒷좌석에 싣는 중이다. 남성이 운전석에 앉은 채 버튼을 하나 누르자 뒷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동시에 레일 형태의 보조장치가 길게 펼쳐지면서 이미 접힌 휠체어를 들어올리고는 뒷좌석에 싣는다. 마치 뒷좌석에서 로봇팔이 한번 나왔다가 들어간 듯한 장면이다.

이 광경을 아이가 뚫어지게 보고 있자, 나는 혹시나 남성이 우리 시선 때문에 불편해 하진 않을까 염려 되었다. 그래서 아이의 손을 잡고 가던 길을 재촉하려던 순간, ‘포르쉐 운전자한테는 전혀 미안하지 않았는데, 왜 지체장애 운전자한테는 미안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잡고 있던 손을 풀고, 아이가 자동차 구경을 실컷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젊은 남성이 우리에게 미소로 인사를 건네고 출발할 때까지.

자동차의 나라 독일에서 장애인이 이용하는 승용차 및 승합차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본 칼럼에서는 장애인이 직접 운전하는 승용차 형태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해보겠다.

독일에서 장애인은 새 자동차를 구입할 때 자신에게 필요한 보조장치를 주문하거나, 기존의 차량을 장애에 맞게 변경한다. 또는 이미 개조된 중고차를 구입하거나, 장애인용 자동차를 렌트할 수도 있다.

독일의 대표적 자동차 브랜드인 벤츠나 폭스바겐의 경우, 장애인이 차량 주문 과정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보조장치를 세부적으로 선택하도록 한다. 벤츠의 경우 페달 및 시트의 위치를 운전자의 신체적 조건에 맞게 배치할 수 있고, 액셀과 브레이크 페달 기능을 대신하는 핸드 컨트롤을 설치할 수 있으며, 그 외 다양한 승하차 보조장치를 차량 주문 과정에서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중도장애인증(Schwerbehindertenausweis)을 소지한 장애인이 신차를 구입하는 경우, 독일 자동차 브랜드를 기준으로 차 값의 최대 15%까지 할인 받을 수 있다.

벤츠의 장애인 자동차 홍보 이미지. ⓒmercedes-benz.de

장애인은 신차 또는 중고차를 자신의 신체적 조건에 맞추어 개조할 수도 있다. 독일에는 장애인 자동차 개조 전문업체가 공식적으로 약 50군데 존재한다. 거의 모든 차종이 개조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장애인이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개조할 때 국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을 한다. 실제로는 장애인이 처한 개별 상황에 따라 지원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장애인 운전자는 원칙적으로 다음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1) 중도장애인증을 소유한 사람(주로 중도지체장애가 있는 사람)

2)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

3)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직장에 출퇴근하거나 집과 직업훈련소를 왕복하는 데 제약이 큰 경우. 즉, 지속적인 직업생활(취업준비기간 포함)을 위해 장애인 소유의 자동차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위의 세가지 조건이 만족되면, 장애인은 차를 구입하거나 개조를 할 때 국가로부터 자동차보조금(Kraftfahrzeughilfe)을 수령할 수 있다.

1) 신차 구입 시: 장애인의 월 소득 수준에 따라 자동차보조금은 최대 9천5백 유로(약 천3백만원) 지급된다. 장애의 유형과 정도에 따라 이보다 더 높은 금액도 지급된다.

2) 중고차 구입 시: 중고차 값이 신차의 50퍼센트 이상에 해당할 경우 마찬가지로 장애인의 월 소득 수준에 따라 자동차보조금이 지급된다.

3) 자동차 개조 시: 자동차 개조 비용은 월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사고보험기구나 연금보험기구를 통해 전액 지원된다.

자동차보조금을 담당하는 기구는 재활복지기구로, 대체로 사고보험기구나 연금보험기구가 담당한다. 이외에도 노동청, 통합청, 사회청이 관여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독일에서는 근로생활과 사회생활을 위해 자동차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재정적 상황이 어려운 중도장애인을 위해 자동차 구입 비용과 개조비용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지원한다.

독일에서 장애인이 가장 선호하는 자동차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개인 선호도와 재정적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한 명에게 명쾌한 답을 얻었다.

작년에 우리 가족은 벤츠 박물관과 포르쉐 박물관이 있는 슈투트가르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박물관 관람 후, 슈투트가르트에 거주하는 지인과 오랜만에 만나 저녁식사를 했다. 안드레아스는 수년 전 교통사고로 오른발을 절단하고 현재는 의족을 착용한다. 박물관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 주제가 자연스럽게 자동차로 넘어가자 내가 물었다.

“안드레아스는 지금 무슨 차 타고 다녀요?“

그러자 그는 “기아차“라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평소 독일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그가 아닌가!

“그 전엔 벤츠를 몰았는데 승하차가 많이 불편하더라구. 그래서 얼마 전에 기아차로 바꿨어. 승하차 높이도 최적이고, 무엇보다도 서비스가 훌륭해. 무상 보증기간이 무려 8년이래! 벤츠는 2년 밖에 안되는데. 한국차 최고!“

한국은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높은 수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국가이다. 장애인을 위한 국가의 체계적인 지원과 장애인을 향한 현대차, 기아차의 보다 높은 관심을 통해, 한국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더욱 확장되기를, 삶의 질이 한층 높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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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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