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에는 코로나19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일상생활을 빼앗아갔다. 2020년 연초를 맞아 희망과 꿈을 담은 계획을 세우기도 무섭게 우리의 일상은 코로나에 잡혀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은 2월 중순, 발 빠르게 복지관을 폐쇄했다. 나를 포함한 장애인들은 2~3주 혹은 한 달 안에 복지관의 문이 열릴 거라 생각했지만 해가 바뀐 지금도 복지관과 자립센터의 문은 굳게 잠겨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재앙 앞에 복지관과 자립센터는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복지관과 자립센터에 장애인 방문을 막는 것뿐이었다.

암울했던 2020년을 보내고 난 지금,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화이자와 모더나 그리고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이 코로나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희망적인 일인가. 새해에는 코로나를 극복하고 다시 일상을 찾는 때가 오기를 모든 이들이 바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하루에 천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는데 복지관과 자립센터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손을 놓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장애인복지관의 관장과 각 자립센터의 대표는 야전 사령관이다. 장애인의 안전을 가장 먼저 지켜야 한다. 물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대책이 없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제 더이상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복지관의 관장들과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표들은 한자리에 모여 장애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대책을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

매뉴얼이 없다고 한탄만 하고 복지관과 자립센터의 방역에만 치우친다면 그들은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다. 장애인 회원들에게 안부 전화를 통해 심리 상태를 상담하며 도움을 줄 수 있고, 생필품 및 안전 용품을 제공하며 도울 수도 있다.

또한, 만약 장애인이 코로나에 감염됐다면 안전하게 입원해 치료할 방안을 보건복지부와 정부에 전달하고 현실화할 수 있도록 솔선수범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작년과 같이 손 놓고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면 장애인 복지관과 자립센터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장애인들이 직접 던질 것이다.

유대인 소녀 안나의 일기에는 하루에도 수만 명이 죽어가는 상황을 목격하면서도 가장 절망적일 때 희망을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도 코로나는 생명을 빼앗아가는 절망 중의 절망이다. 그렇지만 낙담하지 말자. 가장 절망적이고 비관적일 때 우리에겐 항상 희망이 있었다.

구로에 있는 어느 장애인 자립센터에서 배리어프리 영화를 관람한 적이 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치매에 걸린 장애인이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내용이었다.

함께 영화를 관람한 사람 중에는 나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고, 자립센터의 대표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홀로 사는 여성 장애인 한 분이 나는 혼자인데 만일 치매가 걸리면 누가 돌봐주냐며 한탄과 걱정을 내뱉었다.

그때였다. 자립센터의 대표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지금 많은 장애인들은 복지관 관장과 자립센터 대표의 굵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말 한마디를 바라고 있다. 나와 복지관, 나와 자립센터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그 한마디가 지나친 욕심일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장애인들을 앞장서서 도와주어야 할 두 기관의 수장들이 계속해서 장애인의 안전을 외면한다면, 이제는 장애인들의 지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코로나로 인해 생계의 어려움과 심리적 불안 그리고 싫든 좋든 활동지원사와 접촉하며 느끼는 감염에 대한 불안 등을 늘 겪고 있다.

2021년 새해에는 장애인의 안전이 보장되고 코로나를 극복하여 다시 일상을 찾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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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대 칼럼니스트 ‘너희가 장애인을 알아’, ‘기억의 저편’, ‘안개 속의 꿈’,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출간하고 우리 사회에서 시각장애인이 소외되고 있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의 어려움을 사실적으로 다루고 불편함이 불편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결방안을 제시하여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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