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시간(이하 세바시)'에서 강연하고 있는 장애인식개선교육 이현학 강사. ⓒ한국장애인개발원

페이스북을 하고 있다가 어느 한 동영상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장애는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하 세바시)’ 강연이었다. 그게 무슨 내용인가 봤는데, 15분 짜리 동영상을 들으며 내 마음에 클릭된 것이 있어 내용을 얘기해보려 한다. 조금은 길어질 수 있으니 양해를 바라겠다.

강연자는 가수 출신의 장애인식개선교육 이현학 강사다. ‘히든 싱어’라는 프로그램 왕중왕전 출신으로 모창을 여러 명 하는 뛰어난 자질을 가졌다. 그런데 그는 시각장애를 겪고 있었기에 가수인 그를 설명할 때 시각장애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가 공연이나 노래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그런데 악보는 어떻게 보세요?’나 ‘스마트폰 어떻게 보세요?’라는 등의 질문으로 왔단다. 그러면 그는 악보를 사용하지 않고 귀로 듣고 노래를 외워서 공연한다던지, 스크린 정보를 음성으로 피드백하는 기능이 탑재되어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다는 등으로 대답하며 당당하게 사람들을 대했다.

한 번은 노래를 마치고 진행자가 시각장애인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단다. 1000명 이상이 혀 차는 소리를 그는 들었고, 이런 게 1~2년 계속되다 보니 그에게는 ‘나의 노래보다 사람들은 왜 내가 겪는 시각장애를 바라보는 걸까?’란 질문이 생겼단다. 이후 장애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불편함도 생겼단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가수의 무대를 보았는데, 그 가수가 혼혈이란 정체성을 갖고 살아오면서 겪은 사람들의 편견과 자신의 아픔을 음악이라는 힘으로 이겨낼 수 있게 되고, 음악에 대한 애정을 담담히 노래하는 것이 가수 이현학에겐 큰 감동으로 다가왔단다.

이에 그는 시각장애인인 걸 알고 자신의 음악을 들으면 감동과 위로를 받겠다는 생각에 이야기꾼 이현학이라는 부캐릭터를 하나 만들겠다고 결심했단다. 지금은 장애에 대해 자문하고 장애 감수성 관련 콘텐츠를 제작‧교육하는 회사를 차려서 운영하고 있다는 자신의 근황도 소개하며, 장애를 소개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음악 제작과 영상편집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에 대해 순수한 호기심을 갖게 될 분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인데 영상편집을 어떻게 해요?’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면 그는 컴퓨터 스크린 정보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이 있어 영상작업을 무리 없이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단다.

장애인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일 때 장애인에게 들 수 있는 감정 나열한 그림. ⓒPixabay

일상생활도 잘 영위하고 있다고 하면서, 요리, 집안일 등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그거 불인데, 뜨거운데 다루다가 화상 입으면 어떡해요?’라고 이야기하한단다. 자신의 인품과 포용력보다는 자신이 겪는 시각장애를 사람들이 보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뉘앙스가 필자로선 느꼈다. 바로 그다음 그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장애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이 질문을 던지며 다음의 말을 이어간다. 그는 어떤 사람이 이탈리아의 한 시골 마을로 여행을 갔는데, 방향을 물어보려 이탈리아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지만 이탈리아어를 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언어장애인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임산부는 장애인이냐는 질문도 추가로 던진다.

임산부가 장애인이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외국에서는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대답한다. 주차 시 옆차와의 간격이 좁아 차에서 타고 내릴 시 불편을 느껴 일상에서 장애가 발생해서란 이유란다. 또한, 이탈리아와 같은 예에선. 성능 좋은 통역어플만 있다면 이탈리아에서 의사소통 시 장애는 없을 것이라 했다. 이걸 보며 그는 장애를 신체적 장애로만 좁게 보려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아쉬워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재미교포인 한 여성과 결혼했다고 자랑했다. 그가 미국에 갔다가 그녀를 만났는데 이상형이라는 느낌에 이상형이라고 고백했단다. 그런데 차였단다. 그는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 차였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대답한 것은 다른 이유였단다. 한국과 미국 간 장거리 연애는 자신 없다고 말이다.

이에 거절의 이유가 신선하다며 그는 자신의 매력을 뿜어내기로 했단다. 그 매력에 반해 재미교포 여성은 역으로 고백했고, 그는 사귀자면서 연애를 시작했다. 10년간 연애하며, 많은 벽에 부딪혔는데 주위 사람들은 여자 친구한테만 착하다고 말했단다. 이유는 뻔하다고 그는 말한다.

편견을 겪으며, 연애하고 결혼하다 보니 여자 친구에게 ‘내가 시각장애인인데 나랑 사귀겠다고 마음먹은 데 있어, 두렵거나 힘들지 않았냐? 왜 나랑 결혼한 거냐?’고 물어봤단다. 그 때 여자 친구는 ‘그냥 사람이니까’라는 대답을 남겼단다. 이 말을 끝으로 이현학 강사의 강연은 끝났다.

장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국장애인개발원

이 강연을 들으며, 사회적 장벽으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에 상당히 공감 갔다. 올해 4월 국회의원 총선이 있었는데, 필자가 보기에도 선거공보는 너무 어려워 지적장애인이 나라를 위해 일할 국회의원을 뽑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적장애인 참정권 증진을 위한 토론회에서 한 당사자의 증언을 통해 확인도 했다.

선거공보를 지적장애인에게 맞게, 쉬운 정보나 이해가 용이한 그림으로 바꾼다면 지적장애인도 국회의원을 자신의 확고한 생각으로 뽑는 게 쉬워질 것이란 생각이 들고, 그렇기에 지적장애인에게는 어려운 선거공보가 이 사회가 만들어낸 장애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장애를 발생시키는 사회로 시선을 돌리자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가장 나의 마음을 가장 많이 울린 것은 그와 결혼한 여자 친구의 말인 ‘그냥 사람이니까’였다. 이를 풀어서 보면 ‘장애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니까’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그를 볼 때 ‘시각장애인인데 영상편집을 어떻게 해요?’, ‘악보는 어떻게 보세요?’라는 질문이 그들에겐 자연스레 나올 수 있지만, 그게 그에겐 자신의 능력보단 장애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며 살짝 사람들에게 아쉬운 뉘앙스를 내비쳤다. 그의 말에서, 사람들은 ‘장애인이기 이전에 사람입니다’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나사렛대학교 전경. ⓒ나사렛대학교 홍보동영상 캡처

올해 나사렛 대학교에서 장애 학생 비하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나 경악에 빠뜨린 적이 있었다. 사건 신고는 학부장이 했고, 작년 12월 브리지학부 교수 2명이 장애 학생 비하에 성희롱까지 했다는 신고였다. 이 학부는 발달장애학생으로 전부 구성된 학부다.

고발장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한 교수가 학생들을 ‘걸어 다니는 복지카드’로 지칭하고, 또 다른 교수는 학생 각각에게 ‘ADHD’ 또는 ‘자폐증’ 등의 병명으로 호명되었다고 한다. 지적장애 여학생에 대한 성희롱 정황까지 있었다고 하며, 심지어는 ‘자폐증 손들고 있어!’ 라는 얘기까지 가해자 교수가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오히려 사건 신고자인 학부장을 면직하고, 조사책임장인 교무처장을 학부장에 임명한 것으로 확인돼 장애계는 장애 학생 비하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인권위도 이번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했다.

진상규명은 아직까지 되지 않아 장애 학생의 삶은 만신창이가 되어 가는 상황이다. 부디 이 사건이 조만간에 제대로 밝혀져 가해자와 공범자들이 제대로 처벌되고 장애 학생은 피해에 따른 물리적, 심리적 지원 등을 잘 받았으면 한다.

그런데 필자가 주의 깊게 본 것은 장애 학생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두 교수의 태도였다. 복지카드에는 장애를 의료적 관점, 시혜와 동정의 관점에서 보는 구 장애등급이 적혀 있다. 장애를 치료하지 않으면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겠다는 관점과도 관련 있기에 ‘장애인이기 이전에 사람입니다’라는 관점과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그런 사회 분위기이니 장애 학생들은 속으로는 얼마나 심한 모멸감이 들었겠는가?

또한 ‘자폐증’, ‘ADHD’로 학생들을 호명한 한 교수도 학생을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장애를 먼저 보며, 장애 학생을 멸시하는 듯한 어투가 느껴졌다. ‘장애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라는 것을 그 교수가 깊이 인식했다면 ‘자폐증’, ‘ADHD’라고 하며 장애를 먼저 보는 식으로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애를 다양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치료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이다 보니 그런 말이 자연스레 나올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되묻고 싶다.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장면 중 일부.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사이트 캡처

4~5년 전부터 한국피플퍼스트라는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는 실질적으로 지적장애인의 권익옹호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이며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당사자들이 바라고 있다. 현재는 모든 이들의 접근 가능한 선거권을 위한 활동 등을 하고 있다.

그런데 피플퍼스트라는 단어의 의미를 보면. 미국 지적장애인 자기주장대회에서 자신을 정신지체로 부르는 것에 불만을 제기하며 ‘나는 장애 이전에 먼저 사람으로 알려지길 원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장애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라는 가치를 갖고 이 사회에서 인간다운 대접을 원하는 지적장애인 당사자들의 요구였고, 실제로 미국에서는 사람이 먼저인 People first Language로 쓰도록 말이 바뀌게 되었다

정말로 그렇다. 아무리 장애인 학대에 사회에서 관심을 갖는 척한들, 사회나 정치권에서 ‘장애인이기 이전에 사람입니다’라는 가치가 우리 사회에 뿌리박히지 않는다면 장애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태도는 우리 뇌 속에서 불쑥 튀어나올 거다.

또한, 장애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정책과 제도까지 연결되어 장애 관련 정책 및 예산, 법이 우리 사회에서 비주류화되게 된다.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이 그렇지 아니한가? 심지어 장애인 관련 정책과 제도를 좋게 만들었다고 해도, 그런 태도면 그것마저 무용지물이 될 거다.

사람의 가치관이 쉽게 변하지 않기에 국가와 지자체가 이제는 시혜와 동정에서 권리의 패러다임으로 장애인을 이 사회가 바라보게끔 하는 노력을 장기적으로 하길 주문하고 싶다. 장애계와 장애인 당사자의 노력도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나는 이현학 씨의 여자 친구가 말하는 ‘그저 사람입니다’라는 말, 다시 말하면 장애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가치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장애인이기 이전에 사람입니다’란 가치로 사람들을 매일 바라보고 대하는지 나 자신을 늘상 성찰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이 말만 하고 싶다.

‘나도 자폐성 장애인이기 이전에 사람입니다. 나는 칼럼니스트 이원무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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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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