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함께 은행을 찾았다.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제 2금융 사업장으로 시각장애인과 업무적 대면이 잦아서 그런지 시각장애인의 불편함을 미리 알고 챙겨주는 창구 직원들의 친절함이 인상적인 곳이다. 그런데 거리가 멀어서 자주 이용하지 못하다가 몇 년만에 찾은 날이었다.

나는 창구 데스크에 앉고 활동지원사 선생님은 곁에 서 있는 상태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말했다. 그런데 창구 직원의 반응이 영 시큰둥했다. 지원사의 도움을 받으며 의자에 앉는 모습만으로도 시각장애가 있음을 알았을텐데 대꾸가 없었다. 근무한지 얼마되지 않아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가 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진행 상황에 대해 아무 설명도 없이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들리다가 한참 후 한마디 툭 한다. "시각장애가 있으니까 글 못 쓰시지요?" 순간 '이게 뭐지?'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멍해졌다. 시각장애가 있는 필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 저변에는 장애인에 대한 무시가 베이스에 깔려 있었다. 그래서 은근히 되받아 말했다. "앞을 보지 못할 뿐 글은 쓸 줄 아는데요"

진정 시각장애가 있는 필자를 배려하기 위한 마음이었다면 "자필 서명을 하셔야 하는데 직접 적으실 수 있으세요?" 하고 묻는 게 맞다. 시각장애인 중에서도 글을 모르시거나 적는걸 불편해 하시는 분들도 있으니 한번쯤 확인하는 것은 배려일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이 시각장애인도 아니고 모든 시각장애인과 대면해 본 것도 아니면서 시각장애가 있으면 글을 못 쓸거라고 단정짓고 그걸 확인하는 것은 편견에 의한 무시에 지나지 않는다.

불쾌하기는 했지만 보란듯이 전자서명을 하고 빨리 업무가 처리되기만 기다렸다. 그런데 업무가 서툰지 옆 창구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며 한참동안 키보드만 두드리고 있었다. 일절의 양해도 설명도 없이 말이다. 그 직원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 뿐 아니라 기본적인 고객응대 조차 갖추지 못한 듯 했다.

그렇게 창구 데스크에 앉아 마음에 참을 인자를 새기며 수십분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직원의 한마디 "안되는데요." 내가 원하는 계좌로의 연동이 안된다는 말인 줄은 알겠는데 설명을 해줘도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수십분을 참고 기다린 사람에게 미안해서라도 부연 설명은 해주는 게 기본 아닌가?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다 가타부타 설명없이 안된다고 할 게 아니라 왜 안되는지 설명을 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이유를 들어보니 필자와는 상관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말했더니 마치 '당신이 몰라서 그렇다.'는 듯 계속 자기주장만 한다. 알고 보니 해당 금융권의 전산 시스템은 내가 원하는 계좌로의 연동 서비스가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사과 한마디 없는 직원을 보면서 업무 처리 능력은 물론 기본적인 인성조차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제1, 제2 금융권을 막론하고 은행 거래가 잦은 편이라 창구 직원과의 대면은 물론 금융상품이나 거래 상식에 대해서 꽤 잘 아는 편이다. 그래서 직원에게 요구하고 부당함을 말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노인분들이나 장애인들은 이런 부당하고 불쾌한 태도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러 은행을 다니며 대면했던 은행직원들은 대부분 친절했고 어떤 불편함이나 불쾌감 없이 은행 업무를 보았었다. 금융 거래에 있어서 자필 서명을 할 경우 해당 내용에 대해 간단하게 고지하는 게 은행직원의 기본적인 응대 매뉴얼이다. 그러니 시각장애가 있다고 더 특별하게 서비스를 할 필요는 없다. 창구 직원의 도움을 받는 경우는 해당 통장이나 도장을 찾을 때 그리고 신분증을 제시할 때 찾아주는 게 거의 대부분이다. 그나마도 활동지원사나 누군가와 함께 갔다면 창구 직원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더 특별히 신경써야 할 것은 없다.

앞에 언급한 직원이 업무에 서툴고 응대에 미흡한 점은 어느정도 용인하고 그냥 불친절한 직원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해당 직원의 말과 행동은 단순히 불친절함을 넘어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행태였다.

전문가와 비전문가라는 입장에서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고객에게 이런 태도인지 아니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입장에서 장애가 있는 고객에게만 이런 태도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배움이나 지식이 떨어진다 하여도 신체의 어떤 장애가 있다 하여도 그 사람을 얕잡아 보고 무시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어떤 조건이나 이유로 상대를 재단하여 함부로 대한다면 당신 역시 누군가로부터 재단되어 존중받지 못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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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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