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반 전 장애인권리협약 제1차 국가심의 때의 모습. ⓒUN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

5년 반 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1차 국가심의를 내린 권고 중 하나가 효과적이고 실효적인 탈시설 전략을 수립하라는 것이었다. 탈시설을 염원하는 장애계의 요구를 담아 내린 권고였다.

장애인들에게, 특히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게 시설이란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박탈하고 단체생활을 강요하는 곳이요, 지옥 같은 곳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그렇다. 시설을 나와 자기가 믿을 종교를 스스로 택하고 싶고, 사람들과 어울려 당당하게 가슴 펴고 살며 맛있는 것도 마음껏 먹고 싶다.

그래서 탈시설을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장애계가 주장하고 외치고 있는데, 그런 염원에 정부는 응답하고 있을까? 정부는 효과적이고 실효적인 탈시설 전략의 수립을 잘 이행하고 있을까?

지적장애인 시설 거주인원이 2011년 10,788명에서 2015년 12,369명으로 14.7% 증가하고 중증장애인 시설의 경우엔 2015년에 11,314명으로 2011년에 비해 4.8% 증가하는 등 장애인 거주시설의 전체 시설 수와 거주인원이 증가하고 있다. 공동생활가정 시설도 증가하기는 마찬가지다.

국가심의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에 내놓은 제1차 최종권고에서 ‘장애인시설 및 거주자 수의 증가’를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매우 심각한 이슈로 보고 있다.

더군다나 권리협약 제19조 일반논평에서 대형시설이 아닌 공동생활가정이나 개인주택도 시설 특징이 나타나면 자립생활로 볼 수 없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거주시설 유형 다양화나 거주시설의 소규모화, 자립생활주택 지원만으로 효과적인 탈시설 정책이라 볼 수 없음도 아울러 분명히 했다.

한편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2016년 전국 지자체 예산을 조사한 결과, 장애인시설예산 평균이 32.68%였으며, 2014~2016년 지자체의 예산 증가율은 생활시설에서는 34.96%, 자립생활의 경우엔 18.6%에 불과했다. 지자체에서는 여전히 예산이 지역사회보다는 시설 중심으로 가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같은 기관에서 2017~2019년 중앙정부 및 전국 지자체의 장애인 시설예산 증가율을 조사한 결과 각각 +11.8%와 +2.7%였다.

물론 자립생활 예산도 늘어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진짜 효과적인 탈시설-자립생활 전략이려면 자립생활 예산이 늘어나야 함과 동시에 시설로 가는 예산은 전보다 감소해야 하는 거다. 하지만 감소하기는커녕 늘어나지 않았는가?

탈시설하면 받는 자립정착금과 관련해 2018년 보건복지위원회의 발표를 보면 시‧도 지자체 17곳 중 5곳에서 정착금 지원이 없었다. 2018년 기준 시‧도별 장애인 자립정착금 지급액, 지원인원이 지역별로 천차만별이고 정착금을 지급할 계획인 장애인 수는 시설 퇴소 장애인 737명의 22.8%인 총 168명으로 한정적이다.

정신장애인의 경우 지역정신보건과 자살예방 등에 관련해서만 예산이 배정되었을 뿐 탈원화와 지역사회에서 자립하기 위한 예산은 한푼도 배정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는 자살예방 목적마저도 달성할 수 없다.

더군다나 정신건강복지법의 자립 관련 복지서비스의 제공 부분에서 고용, 직업재활, 평생교육, 문화예술 지원 등에 관련된 제33~38조의 조항이 ‘강구해야 한다’, ‘~할 수 있다’ 등의 조항이다. 탈원화 예산이 없으면 안 해도 그만이라는 뜻이기도 해 정신장애인 권익 침해의 우려를 안고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종합해보면 정신적 장애인의 탈시설‧탈원화 정책은 효과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으며 그렇게 할 의지가 부족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시설과 정신병원을 폐쇄하라는 장애인들의 요구에 경청하고 있지 않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9개 시민단체가 금천구에 위치한 장애인거주시설 '루디아의 집' 폐쇄 및 시설 거주인의 자립지원 촉구를 위해 기자회견 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정부의 탈시설‧탈원화 의지가 부족해 관련 정책도 답보상태가 계속되는 사이, 남원 평화의 집에서는 현직 생활교사가 동전을 던져 지적장애인의 손등과 발등을 맞추고 장애인의 이마를 찍어 상습폭행을 하는 등의 인권유린이 발생했다.

최근에는 장애인거주시설 ‘루디아의 집’에서 여성장애인이 말을 듣지 않고 그녀에게 있는 소위 ‘문제행동’을 고치겠다는 명목으로 일부 종사자들이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일삼기도 해 서울시에서 시설 폐쇄를 명령한 입장이다.

요즘 코로나19 시국에서도 탈시설‧탈원화에 대한 필요성은 계속 제기되었다. 정신장애인들이 평소 지역사회의 개방된 환경에서 좋은 정신적 회복과 치료를 받았다면 청도 대남병원 폐쇄병동에서 103명이 코로나 확진판정을 무더기로 받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또한 칠곡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이 시설에 코호트 조처를 내렸는데 오히려 격리된 폐쇄공간으로 인해 집단감염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었다. 시설격리 대신 탈시설과 지역사회에서의 체계적 건강관리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면 이런 우려가 생길 수 있었을까?

시설보다 지역사회의 거주가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은 해외에서도 증명되었다. 미국에서 12년에 걸친 탈시설 비용 연구에서 탈시설 초기에는 시설보다 지역사회에서 거주하는 비용이 많이 들었으나 5년 후에 차이가 좁혀지더니 12년이 지나고 나서는 같아졌다는 거다. 장기적으로 보면 지역사회의 거주비용이 시설보다 더 적게 든다는 거다.

그러니 여러 가지 면에서 장애인에게 탈시설‧탈원화와 자립생활은 꼭 필요한 지상과제다. 정신적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의 의견을 반영해 시설‧정신병원 예산 감소와 지역사회 자립예산 증대는 물론 기존 장애등급과 소득기준이 아닌 장애인 욕구를 반영하는 서비스 제도와 체계적 권리옹호 체계 등을 수립하는 것 등이 정부가 탈시설‧탈원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일을 구체적으로 수행하며 정부와 지자체는 이제부터라도 효과적인 탈시설‧탈원화에 대한 의지를 계속 보여주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권고를 이행하는 것이기도 하며, 장애인, 특히 정신적 장애인에게는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며 인권을 보장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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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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