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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나19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4-01 09:40:36
코로나19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 일정기간 나가야 하는 곳 외에는 나가지 않게 된 지 두 달 째이다. 봄꽃이 만개하여 길거리에 봄꽃 향기가 가득하다 해도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병이 옮을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껏 나서지 못한다. 뉴스에서는 연일 코로나19로 인해 의료진은 물론 많은 이들이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병원이라면 지긋지긋하다.

어릴 때의 일이다. 학교 가야 하는 날 부모님 손에 이끌려 병원을 가게 되었다. 아마 부모님은 내가 언젠가는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시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고 물리치료를 하면 어느 정도는 걷고 10살이 지나면 목발을 떼고 비틀비틀이라도 걸을 수 있으리라 장담을 하였다. 나는 걷지 않으면 사람의 축에 들지 않는 것인가? 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며 정해놓은 수술 날짜를 기다렸다.

병원 입원 전날 저녁부터 굶었다. 많이 먹는다. 늘 잔소리를 듣던 때인데 밥도 주지 않았다. 서러웠다. 걸으면 밥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을까? 걸어도 그다지 하고 싶은 일들이 많지 않았다.

아니 없었다. 학교에서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으며 아이들에게는 대장질을 할 수 있었다. 앉아서 싸우면 남자아이들을 이겼다. 지지는 않았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업히면 되는 것이었다.

다만 업혀도 가기 싫었던 곳은 대중탕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엄마의 등에 업혀 목욕을 하러 갔어야 했다. 엄마 말에 의하면 걷지도 못하는데 꼬질꼬질하면 부모 없는 앤 줄 안다는 것이 이유였다. 딸의 몸이 일주일에 한 번 얼마나 자랐는지도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나와 동생들을 키우면서 줄곧 일을 놓지 않고 계셔서 밥 챙겨 주실 때 외에는 자주 보기도 어려웠다. 집안일을 도와주던 아주머니가 나를 업거나 걸려서 등하교를 도와주셨다. 걷는 것보다는 업히거나 손을 잡고 걸음마를 하는 일이 좋았다. 왜 수술이 필요했는지에 대해, 그때나 지금이나 별생각이 없다. 수술실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을 뿐이다.

그렇게 깁스를 하고 두 달을 누워있다가 드디어 그것을 푸는 날에도 내가 원하는 것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고기도, 아이스크림도, 과자도 내가 사러 갈 수 없으니 엄마가 정해 주는 것들을 먹었다. 깁스를 풀면 다른 아이들처럼 걸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면 달려가서 가출을 해버려야겠다라 다짐도 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나마 짱짱하게 버텨주던 다리가 힘이 풀려 서 있기조차 어려웠다. 병원에 2주나 있었고, 집에서 꼼짝않고 누워 기다린 결과가 참담하였다. 원래 깁스를 하고 나면 근육을 쓰지 않아 힘이 없다고 했지만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근육을 쓰지 않았던 다리는 움직일 때마다 아팠다. 정말 마음 같아선... 왜 나에게만 이러시는지 원망스러웠다.

다시 고달픈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일을 하셔야 하셨고 아버지와 동생들이 있어 나만을 돌보기 어려웠다. 엄마와 닮은 셋째 이모가 나의 치료에 동원되었다. 나를 돌보며 공부도 하셨다. 엄마를 닮지 않아 마음이 단단하지 않은 나는 울고 불고 했다.

다리가 전처럼 움직여지지 않으니 당황스러웠다. 화장실 가는 것도 앉아서 밥을 먹는 것도 어려웠다. 그때가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병원에는 얼굴이 문들어지고 손가락을 붕대로 감고 다니는 분들이 계셨다. 처음 마주쳤을 때 어린 마음에도 안된 생각도 들어 가끔 먹던 과자를 붕대 감은 손에 드리곤 했다. 과자는 나에게 최후의 보루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먹는 것을 누군가에게 주는 일은 잘 없다. 드리고 나면 그 분은 항상 감사하다라는 표현을 하셨다. 이모는 별로 안 좋아했다. 아마 그 병은 옮는 병이었나 보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릴 적 병원에서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일상이 되었던 병원에서 마주쳤던 사람들, 의사, 간호사, 환자들이 다 떠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무료함이 떠오르고 티비 프로그램이 줬던 위로와 언젠가는 나도 저 사람들처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떠오른다.

결국 지금의 나는 부모님의 기대를 철저히 져버리고 휠체어를 탄다. 어릴 때 먹고 싶어 매일 꿈에서 먹었던 아이스크림, 과자 등을 마음껏 먹는다. 사실 약간 진짜 뚱뚱보 반열에 올랐다. 이래서 못 먹게 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먹을 때만큼은 행복하다.

병원에서 마주쳤던 분은 한센병이었다. 한센병은 한아운이라는 시인이 앓았던 소위 문둥병이다. 한아운의 시에는 서러움이 묻어있다. 서럽지만 삶이 가치있음을 노래한다. 한아운의 시를 사랑한다.

지금도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힘들지 않고 아프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 코로나19로 전세계가 아프다. 돌아가시기도 한다. 그치지 않는 비 없고, 트지 않을 동이 없다고 한다. 언젠가는 지나가겠지만 이 시간들이 아프기만한 시간으로 남지 않길 바란다.

병원에서의 시간들을 내가 그렇게 견뎠듯 많은 이들이 좀 덜 힘들고 지나갈 수 있길 기도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길이 조만간 끝날 거라고 봄꽃들이 이야기 해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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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효주 (fm20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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