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몇 년을 쉰 적이 있습니다. 그 시작은 이렇습니다. 당시 제 생각에 “장애가 심해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까?”였습니다. 남들에 비해 뭘 잘하는 게 있었다면 아마 몇 년을 그렇게 보내지는 않았으리라 하는 생각들을 합니다.

집에서 몇 년을 그렇게 보내던 어느 날 우리 동네에 한 여성장애인단체에서 단체 홍보를 나왔습니다. 아파트 공터에 천막을 치고 휠체어를 탄 여성장애인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단체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보다 몇 주 전에 장애인복지관에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비즈공예 교실을 진행하여 거기에 참여를 하다가 여성장애인단체 회원과 마주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머리가 희끗희끗하셨고 빠글거리는 아줌마 파마를 하고 전동휠체어에 앉아 “어디서 사느냐?”, “무엇을 하느냐?”, “몇 살이냐?” 등 여러 가지 것들을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냥 집에 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속해서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는 단체가 있다고 한번 놀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데리러 오시겠다구요. 당시 저는 장애인들과 어울리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에도 장애인 친구들보다 비장애인 친구들이 익숙했고, 그게 지금 말하기 부끄럽지만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못하는 게 더 많아 보였고 갈 수 없는 곳들이 더 많아 “나는 모자란 사람인 게로구나”하며 시간을 낭비하였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생각을 바꿔 보았습니다. 이렇게 지내나 사람도 만나고 하다 보면 뭔가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그 사람들이 일하는 단체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아주 많은, 그것도 여성장애인으로만 구성된 단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특수학교를 나와 사회복지를 전공하였지만 그렇게 많은 유형의 장애인이 있다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아주 똑똑하고 똑 부러지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장애란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 역시 사회로부터 차가운 눈초리를 늘상 받아 오며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인 자리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나가서는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혼자 앉아 있기도 하였습니다. 처음 저에게 말을 걸어 주셨던 어르신은 따님도 장애인이라고 복지관에서 뭔가를 배운다고 하셨습니다. 오래된 기억으로 자세히 이야기를 해 주셨지만 눈치를 보느라 잘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제가 장애인단체에서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며 혼자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여성장애인단체라 그런지 여성, 그리고 장애인만이 갖고 있는 감성이 있습니다. 한 번은 회원들 전부가 사우나였는지, 목욕탕이었는지, 아! 관광지에서 운영하는 온천이었습니다. 거기를 가서 단체로 목욕을 하는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대중탕에 잘 가지 않습니다. 남에게 벗은 몸을 보여 주는 일이 보통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여성 장애인들에게는 더더욱 힘든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온천에 어떻게 말을 했는지, 다른 손님들은 받지 않고 저희 단체 회원만 보일 뿐 다른 분들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활동보조인도 없이 저는 무슨 용기로 옷을 벗고 탕엘 들어 갔는지... 그런데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욕하고 쳐다보지 않을 것 같다라는 안심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밤에 다 같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장애가 그렇게 심해 보이지 않은 여성장애인 한 분이 목욕탕을 처음 가본다고,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그 일을 겪고 있는 당사자이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분들이 겪는 아픔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나름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기에... 그런데 제가 조금 둔하다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겪는 일들에 대해 자주 잊어버리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가 지나가면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라고 쳐다보지만 그냥 보는가 보다 할 수 있는 장점, 이것이 저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일을 하다 가끔 활동지원사 없이 가게에 들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전에 일하던 곳에서 시설로 프로그램을 하러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가게나 상점이 전동휠체어가 들어가 물건을 고르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물리적 환경이 그렇고 가게 주인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시설 근처 가게들이 더했던 경험이 있어 적어 보려 합니다. 가게 앞 계단 때문에 들어갈 수 없어 주인을 몇 번이고 불렀습니다. 나오지 않아 가게 앞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나와 달라고 장애인이라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간식을 골라야 하는데 2000원씩 4000원을 써야 한다고 골라달라고, 콜라나 사이다 이런 걸 원하는데 가능하냐고 했습니다. 한참 만에 나와서는 원하는 대로 해주기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표정이 웬 거지같은 게 와서 뭘 달라고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생활시설에 사는 장애인분들이 정책적으로 나와 자립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있는 이상 위의 가게 주인 같은 사람들을 마주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자립을 막 시작해서 작은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시설장애인 분들이 상처받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두려움과 용기로 사회에 발을 막 딛기 시작했을 때 나에게 보여준 여성장애인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장애인에게 주는 용기는 그 어떤 전문인력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 식물도 매일 칭찬해주고 노래를 들려주면 잘 자란다고 합니다. 하물며 사람인 우리가 소외된 사람들을 품어 주지 않으면 우리가 동물이나 식물과 다를 게 뭐 있을까요? 물론 각자 처한 상황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방문했던 가게 역시 뭔가 다른 사정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근처 사시는 장애인 분들에게 상처가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이나 행동이 아닌 눈빛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음을 일련의 일들을 통해 알게 되어 적어 봅니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게 될 장애인들이 상처받지 않길 바라지만 상처에 굳건히 일어날 수 있길 바라기도 합니다. 그 옆에 제가 함께 하길 바라기도 합니다. 제가 다른 분들에게 받았던 것들을 되돌려 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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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주 칼럼니스트 현재 삼육대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 장애 전반, 발달장애 지원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 장애인 당사자로 당사자 지원에서, 일상생활에서 장애로 인해 느꼈던 것들을 전반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체장애인으로 보여지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어 일상생활 자체가 글감이 될 수 있어 나는 좋은 칼럼니스트의 조건을 갖고 있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 거의 매일 쓰고 있다. 전동휠체어를 매개로 생각하고 지나다니다 본 것들에 대해, 들은 것, 경험한 것들에 대해 쓴다. 전동휠체어 위에서의 일상, 지체장애인으로의 삶에 대해 꿈틀꿈틀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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