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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1-28 10:03:17
생에 처음으로 본 해돋이. ⓒ오지영
에이블포토로 보기 생에 처음으로 본 해돋이. ⓒ오지영
자주 외출을 한다. 집에 그냥 앉아 뭘 하다가도 집을 나선다. 집에서 나설 때 화장실에서 일을 보지 않고 나서야 할 때도 있다. 답답하여서도 있고 성격상 갇혀 있는 것을 참지 못해 어떤 때에는 새집 지은 머리를 질끈 묶고 노트북 가방만 휠체어 뒤에 맨 채 나서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나서면 그다지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요즈음에는 너무 자주 간 나머지 극장에 걸린 영화를 다 봐 버려서 영화관도 그저 그렇다. 친구들을 만나자니, 결혼을 해서 아이를 업고 나와야 하는 친구이거나, 남편이 시각장애가 있어 주말에는 돌보아야 하거나, 손절해서 연락을 받지 않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손절의 이유는 나의 속 좁음이다.

연말이라고 집에만 있기가 뭐해서 어딘가로 뜨기로 했다. 그 어딘가는 제주도이고 제주도에는 몇 년 전에 같이 일하던 친구가 식구들과 장사를 하는 곳이다. 친구에게 어디가 조용하냐고, 조용해서 누가 잡아가도 모를 곳이면 좋겠다고 숙소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친구는 장애인 단체에서 일한 몇 년의 경력이 있고, 나의 장애를 알고 있어 잘 알아봐 줄 것이라 믿었다.

연말이라 숙소가 대부분 예약이 되어 있다고 했다. 조금 비싸서 부담스러울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여행을 꽤 많이 해 보았으나 우리나라에서 중증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숙소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라 ‘잘 알아서 했으려니...’ 하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잘못이었다. 숙소는 내가 원하던 조용한 곳이긴 했다. 하지만 밥을 해먹을 수 없었다. 아침에 조식을 준다고 했다. 그러면 주변에 점심과 저녁을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있어야 했지만 밭과 도로뿐 식당을 찾기는 어려웠다.

숙소 내에서는 취사가 일절 금지라고 했다. 이럴 경우 비장애인이라면 버스든, 택시든, 렌터카든 방법을 알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나로서는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편의시설 역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이 숙박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전동휠체어 하나가 겨우 들어갔고 복도는 뒤돌아 나가기도 어렵고 숙소 문을 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 숙소에서 며칠 있다가는 몸도 마음도 힘들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카운터에 취소 요청을 했으나 그 역시 ‘불가능하다’ 라 말씀하셔서 어쩔 수 없이 그 날은 거기서 자고 3박에 대한 비용을 다 지불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새벽에 짐을 꾸려 나왔다. 친구가 연락을 하였으나 받지 않았다. 미안해서도 아니고, 기분이 상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상황이 견디기 어려워서였다. 새벽에 나와 그래도 제주도까지 왔는데 바다나 한 번 더 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바닷가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전동휠체어를 처음 타던 순간이 떠올랐다. 길에 나설 때 얼마나 두렵고 설레던지, ‘그래 이제는 혼자 다닐 수 있단 말이지...‘ 전동휠체어를 타며 사고도 두어번 있었다. 팔도 부러지고, 휠체어에서 튕겨져 나가 머리에 혹이 주먹만하게 나서, ’나 이제 죽나?‘ 했었다. 하지만 전동휠체어가 생겨 일도 하게 되고 역마살 들린 사람처럼 돌아다니기도 할 수 있었다.

바닷가 쪽으로 가는데 사람들이 엄청 몰려 있었다. 그 때가 아마 아침 7시가 겨우 넘은 시간이었다. 햇살이 어슴푸레 올라오는 터라 하늘이 회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회색이었는지, 푸르스름했는지, 빨겠는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1월 1일이었다. 춥고 속상해서 뭔가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이 밀려 있어 뭔가 했는데, 해돋이 인파였다. 하... 생에 처음으로 해돋이를 볼 수 있겠다 싶었다.

해돋이를 보기 위한 장소는 예상 외로 해돋이 명당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전동휠체어로도 충분히 다닐 수 있었다. 무슨 ‘오름’이라고 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해돋이는 올해에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과 간절함을 선물해 주었다.

‘좋은 일에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쁜 일에 나쁜 일들만 가득한 것은 아니라, 살만한 것 같다.’ 그 날 일기에 썼다. 사실이 그렇다. 그 날 다른 곳, 다른 숙소를 구할 수 있었고 더 값진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친구는 자신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방법을 알려 주었으나 나의 입장 즉, ‘전동휠체어 이용자’의 입장을 잘 알 수는 없었다. 서운함보다는 물리적 환경이 중증장애인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함에 마음이 내내 불편했고 다른 장애인 여행자가 이러한 일들을 겪지 않게 장애인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조금 촘촘해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 많은 장애인들이 역마살이 든 나보다 더 많이 돌아다니고 더 많이 비장애인들과 마주치고 어려움들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준다면 그 바람은 조금씩 이루어 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소망을 새해 해돋이에 빌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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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효주 (fm20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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