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토크빌이 했다고 알려진 명언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이 말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투표 참여와 정치적 효능의 상관관계를 언급하기 위한 단골 인용구로 자리 잡았죠.

우리에게도 결국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최근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막장 드라마 시리즈도 아닌데 듣다보면 화가 나는 장애비하 발언 사건에서 말입니다. 대놓고 말하면 최근 정치권에서 장애비하 발언 사건을 겪지 않은 원내 주요 정당은 정의당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서 벌어진 사건은 다들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너무나도 ‘화려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심지어 바른미래당에서도 예전에 동료 장애인 시의원의 정당한 편의보장과 그에 따른 법적 규정 이행을 ‘갑질’ 등으로 폄하한 정치인이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등 다른 곳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정치권의 장애비하 발언이 주요정당에서 하나씩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은 다른 곳에 원인이 있지 않나 하는 문제가 들 정도입니다. 정치인들의 습성을 좀 알고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정치인들이 말을 왜 조심할까요? 사실은 표 때문입니다. 특정 정당 정치인들이 상식 외의 행동을 하는 것도 ‘자기들 지지층 규합’을 위해서입니다. 게다가 최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실제 득표율이 더 중요해진 이상 ‘콘크리트 지지층’이 이제 적어도 자신들의 정치적 역량을 측정하는 지표로 변화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니면 특정 정당처럼 ‘위성정당’ 같은 꼼수를 부려가면서 잇속을 차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미 정치인들의 발언 하나 때문에 선거 결과가 완전히 뒤바뀐 사건은 엄청 많았습니다. 직전에 있었던 전국단위 선거였던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인천/부천 지역을 ‘이혼하면 부천, 망하면 인천으로 가서 산다’고 폄하하는 발언, 제가 그 발언 피해 지역 주민으로서 일명 ‘이부망천’이라는 희대의 망언으로 기억하는 그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결국 인천지역에서 그 정당은 시 단위 선거에서 시장선거 참패에 시의원은 5석도 안 되는, 구청장 선거마저 사실상 참패인 결과를 냈을 정도입니다.

그 정치인은 인천/부천지역 바깥 대중들이 인천과 부천의 수준을 낮게 평가한 나머지 그런 말을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인천지역과 부천지역은 이에 대한 발언을 강력한 표로 심판하면서 결과적으로 ‘다시는 인천과 부천을 우습게보지 말라!’는 교훈만 남겼습니다.

장애에 대한 발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 수준이 낮다면 정치인들의 발언 문제도 당연히 비하발언이 먼저 앞설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대중의 거울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에 인식개선교육 등을 요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일반 대중들부터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데 정치인만 바뀐다고 다 될까요? 대중적 인식이 결국 사회의 수준이나 다름없습니다.

정치인들만 바뀌면 정치권에서 장애비하발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 정치인들의 권력 기반인 ‘표’를 생산하는 대중들의 인식을 먹고 자라는데, 그들이 바뀐다고 그런 일이 근절될 리는 없습니다. 먼저 대중의 인식 개선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장애계도 노력해야 합니다. 대중을 향한 장애인식개선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대중들의 장애에 대한 부정적 사고와 의학적 모델이 바탕이 된 인식을 장애에 대한 긍정적, 인권적, 권리적 사고와 사회적 모델로 전환하는 것에 노력해야 합니다.

최근에 장애인식개선교육이 많은 곳에서 법제화된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1년에 1시간은 장애인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은 좋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제 사이버교육 대신 대면교육 의무화 등 장애인식개선교육의 효과를 올릴 대책도 필요합니다. 특히 학생들에 대한 인식개선교육은 4월 한 달이 아니라 1년 내내 진행되어야 합니다.

결국 정치인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대중들이 정치인을 선택했고, 정치인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치를 하는 것일 뿐입니다. 예전처럼 정치인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선지자처럼 하는 정치는 이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도 민주주의입니다. 대중의 지배라는 그 민주주의가, 그 대중의 수준 때문에 민주주의 정치를 올바르게 작동시키지 않았다면, 그것은 대중들의 문제입니다. 정치인들을 탓할 시간도 필요하지만, 결국 이러한 싹을 잘라내려면 대중적인 장애인식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어차피 정치인들은 그 대중의 수준에 맞는 정치만 할 뿐입니다.

아까 앞에서 했던 말을 다시 장애인 인식 문제에 맞춰서 다시 읽어봅니다.

“모든 장애인식에서 대중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치인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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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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