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이야기 나누는 민우. ⓒ최선영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 누구가 나는 아니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민우도 그랬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어. 장애인을 만나면 편견을 버리고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이해를 하기를 바란다."

학생들에게 늘 했던 민우의 말이다.

"만약 선생님이 장애인이 된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민우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장애인이 된다면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며 살았던 생각이 멈칫거렸다.

"글쎄... 그런 현실을 만나지 못해서 어떨지는 사실 선생님도 짐작은 되지 않아..."

"선생님, 그럼 선생님은 장애인과 결혼할 수 있어요?"

"장애인이든 아니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겠지... 사랑하면 할 수 있지.“

대답은 당연하다는 듯 건넸지만 사실 민우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하윤이가 던진 질문에 마음 한편이 덜커덩거렸다.

아이들이 던진 말들이 민우의 마음에 가시처럼 따갑게 박혔다.

"내가 저들에게 했던 말들이 진심이었을까? 편견은 나쁘다고 말하면서 나는 다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대학 때 동아리를 통해 봉사활동으로 몇 번 만난 장애학생들과의 기억 때문에 남들보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은 아닌지... 민우는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았다.

어쩌면 그 봉사활동이 선을 실천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에 그치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한다.

"내가 만약 장애인이 된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교단에 계속설 수 있을까? 장애인을 만나면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게 될까? 아이들 앞에서 그동안 내가 위선을 떨었던 걸까?"

민우는 복잡해진 마음 때문에 잠을 설치다 새벽에야 겨우 잠들었다.

"얘들아, 선생님이 어제 너희들이 했던 질문을 좀 생각해 봤거든~ 그동안 선생님도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고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편견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 사실 어제 좀 부끄럽더라."

민우와 반 학생들은 장애인에 대해 편견을 버리고 다름을 이해하며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수업을 시작했다.

며칠 후, 민우는 마트에서 하윤이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도 만났다.



미소가 아름다운 서린. ⓒ최선영

"선생님~"

하윤이는 반갑게 민우에게 인사를 했다.

하윤이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서린이가 중도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햄버거를 주문한 이후였다.

늦둥이 하윤이와 13살 터울인 큰언니 서린이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졸업할 무렵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어 꿈을 접어야 했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네 저도 반가웠어요.“

하윤과 서린의 뒷모습을 보며 민우는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다.

"저렇게 예쁜 사람이... 이런 생각도 편견인데... 휴..."

다음날 수업을 마치고 하윤이를 불렀다.

"하윤아~"

"선생님, 우리 언니 너무 예뻐서 더 안타까우셨죠? 선생님 표정이 그랬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게 언니를 더 힘들게 했어요. 얼굴도 예쁜데 어쩌다 이렇게...라는 말."

"......"

"실명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언니는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러니까 동정 같은 건 하지 마세요. 물론 안타까운 마음에 그러시겠지만 그런 생각과 말들은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응... 사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부끄럽고 미안하구나.."

"그런데 선생님이 무슨 마음인지는 알아요. 언니가 예쁜 건 사실이니까요. 헤헤."

"응.. 그런데 언니는 집에만 계셔?"

"언니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딱히 할만한 게 없어요. 그래서 요즘 안마를 배우고 있어요. 안마사가 되려고요."

"아... 그렇구나..."

안마를 배운다는 말이 민우의 마음을 찔렀다. 안마사가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적성과 상관없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안마사가 되려고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서린을 생각하다 대학 때 함께 봉사활동을 하던 친구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동아리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장애인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기도 했다.

두 달 전 만났을 때, 인턴십에서 만난 분이 장애인을 채용해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 서비스를 한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민우는 급하게 친구에게 전화해서 자세한 것을 물어보았다.

(주)코리안앳유어도어

김현진 대표가 창업한 '코리안앳유어도어'였다.

김현진 대표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깼다.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니다 대학은 한국에 와서 한동대에 진학했다.

틈나는 대로 유네스코와 월드비전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에서 인턴십을 했다. 특히 장애인과 함께 커피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며 일자리 하나로 장애인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얻는 것에 감사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이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코리안앳유어도어'를 창업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화 교육을 해주는 한국어 전화 과외 서비스다. 강사는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10주의 강사 교육을 거친 이들은 선생님으로 불리며 해외에 있는 수백 명의 학생에게 전화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여러 유형 중에 시각장애인에게 관심을 쏟게 된 것은 대부분 중도실명을 경험했다는 점 때문이다.

신체 건강한 사회인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실명하고 난 이후에는 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 크게 좌절할 수밖에 없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안마를 배워 안마사를 직업으로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75%가 안마업에 종사하고 있고 그중 98.5%는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김현진 대표는 장애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들과 즐겁게 일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일자리가 부족하다 청년실업문제로 힘든 상황에서 장애인 일자리는 더 부족한데,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도 얼마든지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김현진 대표의 바람을 듣고 민우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내가 아는 분 중에 중도 실명한 분이 계신데... 혹시 일할 수 있을까? 국문과 나왔고 교사가 꿈이었어."

"잘됐네~ 여기 계신 강사분들 중에도 교사하다가 중도 실명하신 분도 계시거든."

서린은 접었던 꿈을 다시 펼 수 있게 되었다.



민우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서린 ⓒ최선영

"고마워요. 이렇게 마음 써주셔서..."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저희 언니, 이제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어요. 선생님 정말 멋져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이런 말 들으니... 하하, 서린 씨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한국을 사랑하고 또 다른 꿈을 이루면 좋겠어요."

민우는 학생들에게 서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김현진 대표와 '코리안앳유어도어'에 대한 것도.

"너희들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어떤 꿈을 위해 공부하고 있니? 우리 모두가 장애인을 위한 기업가가 될 수는 없어. 하지만 너희가 지금 시간을 투자하고 열정을 쏟으며 하고 있는 공부가 내 꿈을 이루기 위한 거름이 되고, 그 꿈은 나 한 사람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어떤 환경을 만나든, 만약 우리가 장애인이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민우는 아이들과 헤어지고 서린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생각한다.

만약 서린이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상관없었다. 장애인이어도 괜찮았다.

그녀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첫눈에 그녀를 향하는 민우의 심장이 뛰었던 걸 보면.

서린을 손을 잡은 민우 ⓒ최선영

박사학위가 있어도 취업하는 것이 힘든 상황에서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관심은 뒤로 밀려나는 것이 어쩌면 이 사회구조 안에서는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청년실업 문제뿐만 아니라 장애인 일자리도 김현진 대표처럼 관심과 마음을 기울이면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생각을 민우는 한다.

시각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안마사로 제한적이지 않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장애인 역시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준비되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민우는 더 밝은 내일을 기대하며 미소 짓는 서린의 손을 꼭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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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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