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첫눈에 난 내 사람인 걸 알았죠."라는 노래를 듣기 좋은 목소리로 피아노를 띵띵거리다 "어이, 핑크!"라는 대사를 날리며 사랑을 노래하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우린 핑크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임산부에게는 핑크 배지가 주어진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가 엄마가 아닌 아빠여서가 아니다. 내가 아니 아내가 임신과 출산을 할 시기에는 이런 배지는 없었다. 그래서 몰랐다면 너무 무관심했던 걸까.

임산부 배지. ⓒ정민권

회사에 임산부 직원이 있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 있기도 했다. 한 직원은 이미 출산 휴가를 내고 육아 중이다. 그리고 지금 임신 중인, 출산 휴가를 몇 달 앞둔 직원이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아침 출근길은 고되다. 이렇게 힘겨운 출근길이 좀 더 고행길이라는 건 하루가 다르게 푸석해지는 그녀의 피부와 불러오는 배가 정비례한다. 힘들어하는 표정은 덤이고.

심지어 얼마 전에 회사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까지 가서 그녀의 힘듦은 몇 배로 커졌으리라는 건 안 봐도 비디오다. 어쨌거나 지하철에 버스까지 번갈아 타면서 출근해야 하는 그녀의 출근길을 조금이나마 도와줄 표시가 생겼다.

"임산부 배지"

그런데 그녀는 이 임산부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다. 배지를 달고 있어도 누구 하나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을뿐더러 임신한 게 유세 떨 일도 아니고 해서 서로 불편해지는 배지를 아예 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구절벽인 시대, 임산부는 유세 좀 떨어도 되는데. 어쩌면 이 배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나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출근 시간, 부족한 잠을 이동하는 차량에서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눈을 감고 졸거나 아예 주변 상황에 무관심하거나 고개 숙이고 오직 핸드폰 세상에만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여보세요. 나 임산분데요. 이 배지 안 보이세요?"라며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길 채근할 수 있는 임산부가 있을까?

아이는 우리의 미래라고 떠드는 정부나, 자신들의 아이는 끔찍해하고 어떻게든 좋은 인성의 소유자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정작 나 아닌 다른 사람, 임산부는 모른 체하는 현실이 참 씁쓸하다.

혹여 본인들도 임신했을 때 배려받지 못했으니 그러는 걸까? 이제부터라도 임산부들이 당당하게 임산부 배지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면 좋겠다. 배지가 보이면 벌떡 일어나라고!

그리고 나아가 임산부고 장애인이고 노인, 아이들처럼 사회적 약자가 편안한 세상이면 누구나 편안한 세상이 된다는 걸 공감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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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복지사. 책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종종 장애인권이나 인식개선을 위한 강연도 한다. 미디어에 비친 장애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장애당사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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