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이 벌써 강산을 한번 넘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누가 뭐래도 숨겨지고 감추려 했던 부끄러움에서 벗어나 당당한 사회인으로, 권리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였다고 본다.

2000년도부터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문을 열게 되고 그 안에서 중증 장애인 당사자들이 주체가 되어 일하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중증장애인들이 일 할 수 있는 곳이 지극히 적다.

그나마 자립생활센터가 중증장애인들이 주최가 되어 시작하였기 때문에 중증장애인 직원의 절반 수준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문제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권리와 의무를 다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것에 있다고 본다.

아침에 차로 출근하며 백미러로 바라보면 전력 질주해서 달려오는 차들의 모습이 적군들이 밀려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두려울 때가 있다. 사회생활, 그것도 직장생활이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견디고, 내가 이겨내며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뒤처지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대문 밖을 나오는 순간부터 전쟁터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 험난한 세상 속에서 우리 중증 장애인들이 살아가려니 얼마나 어렵겠는가?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어려서부터 장애인이란 이유 때문에 어른으로부터 도덕 교육도 받지 못했다. 형제들과 구슬치기를 해서 상대방이 잃었는데도 ‘나 안주면 너랑 안 논다’하면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워 모두 줘버리기 일수였다.

그렇게 자랐으니 벽을 만나면 뛰어넘을 생각보다 도망칠 생각부터 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필자 역시 중증장애인이며 그렇게 자랐다. 그래서 누구와 싸울 줄도 이기는 법도 모른다.

필자는 2000년, 나이 40에 홀로서기 즉,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자립해서 혼자서 살아가는 일은 참 어려웠다. 그렇지만 악착같이 살아내야 했다. 살아내지 못한다면 집으로 끌려들어 갈까봐…….

다시는 집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였고 걱정을 하는 형제들에게 나가서 살아내겠다고 선전포고를 하면서 나왔던 내 행동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친구의 소개로 처음 했던 일이 공공근로 워드작업이었다.

친구의 이야기가, “일주일 분량의 일인데 삼일이면 끝내고 쉴 수 있어.”라고 했다. 그런데 필자가 일을 받아오면 일의 양이 많아서 일주일 내내 해야 했다.

아침 9시쯤 컴퓨터 앞에 앉으면 점심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만 제외할 뿐인데도 새벽 2시나 3시까지 해야 일주일의 분량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자판기를 두들기자니 열 손가락에 허물이 벗어졌고 두 다리가 퉁퉁 부었다. 너무 아파서 일주일 세 번 정도는 진통제를 먹어야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해도 임금은 야박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정말로 굴뚝같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일감을 받아오는 회사는 장애인은 필자 혼자뿐이었다.

“내가 그만둔다면 장애인들이 일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에게 일을 맡겼더니 못하더라. 다시는 장애인에게 일을 맡기지 말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비록 나는 못하지만 다른 장애인은 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나의 행동이 선입견이 되어 잘 할 수 있는 장애인들에 피해가 돌아가면 안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약을 먹어가면서도 내게 주어진 일은 모두 예정된 날짜 안에 마치고 말았었다.

그때의 일은 시작일 뿐, 그 외 모든 일들이 쉽고 순탄한 일들은 정말로 단 하나도 없었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높은 산을 만나게 되었다. 그 산들을 하나하나 뛰어 넘다보니 여러명의 직원들을 두고 단체를 운영하는 단체장이 되어 있었다.

이제 세상이 변했다. 필자가 고생하던 그런 세상이 아니라 장애인들도 일을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장애인들이 벽을 만나면 그 벽을 뛰어 넘지 못하고 그냥 주저앉고 만다는 것에 있다. 이제 장애인들이 내 것과 내 자리를 찾는 것이 권리이며 의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외출이 불가능했던 시절,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할 일 없이 눈만 멀뚱멀뚱 뜨고 가족들의 눈치 속에서 천덕꾸러기로 살아가던 그 시절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그 시절이 정녕 그리운 것인가?

장애인들이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포기하고 돌아갈 곳이 어디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런 생활 속에서 벗어 난지 이제 겨우 10여년이 넘었을 뿐이다.

우리 스스로 벽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우리가 싸워서 일궈낸 현재가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미래가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가? 무시당하고 천대받던 옛날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필자가 칼럼을 쓰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우리 장애인들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겨운 몸짓을 하고서도 열심히, 성실하게 정말로 인간답게 살아가는 이들이 참 많다. 그네들의 삶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세상에 알려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이유는 나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장애인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이름을 숨기고, 삶의 모습을 숨기고, 더욱이 아직도 가족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내 자녀, 내 형제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에게 진정한 삶의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이 먼저지 사회가 먼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가족이 나를 부끄러워하는데 내가 어떻게 세상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겠는가?

진정 부끄러운 것은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지 장애인의 몸으로 열심히 사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 않은가?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장애인단체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꿈이 없는 새는 아무리 튼튼한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지만 꿈이 있는 새는 깃털 하나만 가지고도 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장애인들은 몸이 안 된다면 머리와 의지로 벽을 깨고 세상을 향해 힘찬 날개짓을 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를 다하며 희망의 낙원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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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서 칼럼리스트
장애인당사자의 권익옹호와 정책발전을 위한 정책개발 수립과 실행, 선택에 있어서 장애인참여를 보장하며 지역사회 장애인정책 현안에 대한 제언 및 학술활동 전개를 위하여 다양한 전문가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대전지역 장애인복지 증진과 인권보장에 기여하는데 목적을 둔 대전장애인인권포럼 대표로서 장애인들의 삶의 가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따뜻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전해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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