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와 미영. ⓒ최선영

"엄마 괜찮아요?"

미영이 무심코 아침밥을 먹다 말고 엄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엄마가 부쩍 야위어 보였습니다. 얼굴 여기저기에 삶의 흔적이 깊게 팬 엄마의 모습이 미영은 참 마음이 아픕니다. 엄마와 여행을 가야겠다는 스치는 생각을 붙들고 폰을 들고 엄마와 여행할만한 장소를 손가락 끝으로 미리 가봅니다.

경주, 미영에게 낯선 그곳은 엄마의 고향이자 미영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그곳을 떠나 서울로 이사 온 탓에 제대로 담아보지도 못한 체 고향이라는 타이틀만 달고 있는 곳입니다.

"엄마, 다음 주에 경주 가요."

"경주?"

엄마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엄마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있었습니다.

"경주에서 너희 아빠를 만나고 너도 낳고..."

말끝이 흐려지는 엄마의 눈에서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3년 연애, 1년 7개월의 결혼생활.

엄마에게 경주의 마지막은 이별과 눈물로 얼룩진 곳이기도 합니다. 다시 갈 용기가 나지 않아 가슴에만 안고 사는 그리움이 가득한 추억이 머무는 도시입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학교장 추천으로 작은 회사에 경리로 취업한 엄마는 그곳에서 다섯 살 많은 아빠를 만났습니다. 막냇동생처럼 엄마를 귀여워해 주며 엄마의 대학 진학을 도와주었습니다.

2년 만에 대학에 합격했지만 엄마는 이번에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외할아버지 병세가 깊어져 대학병원으로 옮기면서 형편이 더 안 좋아진 탓도 있지만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자리를 엄마가 대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할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던 중에 "나 때문에 네가 더 고생이 많았다. 미안하고 고맙다."라는 말을 엄마에게 남기고 할아버지는 힘든 삶의 무게를 내려놓았습니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엄마는 많이 힘들었지만 그렇게라도 옆에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바랐습니다.

힘든 지난 세월의 무게보다 이별의 아픔이 더 컸습니다.

흔들리는 엄마의 어깨를 안아준 아빠는 그때 엄마와 결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평생 함께 하며 지켜주고 싶어서... 하지만 결혼 1년 7개월 만에 아빠는 엄마 곁을 예고도 없이 떠나버렸습니다. 음주운전의 피해자였던 아빠는 마지막 인사 한마디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어린 미영에게 젖을 물려야 하는 엄마는 아빠와의 이별을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했습니다.

아빠와 함께 했던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낼 자신도 용기도 없었던 엄마는 아빠가 남긴 1억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홀로서기를 했습니다.

미영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이제 일 그만하라는 미영의 말에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닐 때까지는 엄마가 벌어야 한다고 고집을 했습니다.

그날따라 미영은 엄마의 뒷모습이 걱정스러웠습니다. 출근한다고 나간 엄마는 중앙선을 넘어오는 차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엄마는 그 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아프고 힘든 일만 생의 길목마다 기다리냐며 힘들어하던 엄마는 미영이 취업을 하고 당당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보며 다시 미소를 되찾았습니다.

"엄마랑 가면 힘들지 않겠니? 그냥 친구들하고 갔다 와"

"뭐가 힘들어요. 요즘 휠체어 타고 여행 다니는 분들도 얼마나 많은데."

"잘 몰라서 그래, 동네만 나가봐도 아직은 힘들어. 곳곳에 계단도 많고."

"차 렌트해서 가면 돼요."

미영의 고집을 잘 아는 엄마는 더 이상 여행에 대한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장소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한 듯해 보였습니다.

"엄마... 아빠를 많이 사랑했고 지금도 많이 그리워하는 거 알아요. 그리움, 아픔, 이별이 남긴 가슴 저림을 외면하지 마세요. 그 모든 것들과 마주하고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면 좋겠어요. 그걸 아빠도 바라실 거예요."

엄마 없이 자란 미영의 엄마는 아빠 없이 자란 미영의 허전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럼에도 의젓하게 잘 자라준 미염이 엄마는 대견하고 고맙기만 합니다.

미영이 없었다면 아빠와의 이별도 어느 날 받아든 장애인이라는 또 다른 이름까지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씩씩한 미영이는 힘든 고비마다 엄마를 곧게 세워주는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누구보다 경주를 그리워했지만 그곳에서의 아픈 기억을 마주할 수 없어 애써 외면하고 살았던 그곳으로 엄마는 미영과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이제 엄마는 그 슬픈 기억도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그리워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을 것처럼 아파도 난 엄마만 있으면 다 참고 이겨낼 수 있어요. 엄마가 제 엄마여서 정말 고마워요. 그러니까 절대 아프지 말고... 아니, 아파도 괜찮으니까 오래오래 함께 해요."

미영의 말에 엄마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는 말만 하고 또 합니다.

"엄마 괜찮아요?"

엄마를 걱정하는 미영은 여행 내내 엄마에게 괜찮다는 답을 듣기 위해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활짝 웃고 있는 엄마와 미영. ⓒ최선영

"엄마 정말 괜찮아. 혹시 괜찮지 않더라도 우리 행복하게 지내자.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내가 가르쳐준 거잖아."

미영은 활짝 웃으며 엄마 손을 꼭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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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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