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앞에 턱이 있는 약국 사진. ⓒ정민권

복지관에서 이웃해 있는 박카스로 유명한 기업의 문을 두드려 관내에 있는 약국에 경사로를 설치해 주는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관내 약사회에 협조를 얻어 진행하기도 하지만 진행이 더뎌 직접 약국을 섭외하기도 한다. 오늘도 복지관 인근 아파트 단지에 있는 약국에 전화를 걸어 경사로 설치에 대한 설명과 실측을 위해 방문해도 되겠는가를 물었다.

약사의 뜨끈 미지근한 반응이 돌아오길래 '비용'과 'AS'에 대한 부분을 무료로 복지관에서 지원한다는 점을 알리고 휠체어 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약국은 별로 필요 없는데… 이용하는 장애인도 2명 밖에 안되고… 정 들어와야 하면 들어 옮겨도 되고… 아니면 내가 갖다 줘도 되고…"

약사는 이렇게 말하며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약사의 이런 말은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보면 약국에 온 휠체어 장애인은 '약만' 지어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생각이 틀리지는 않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춥고 덥고 눈 오고 비가 온다면?

휠체어 장애인은 기다리는 동안 밖에서 추우면 오롯이 떨고 더우면 숨을 헐떡여야 하고 눈이 오면 머리가 하얗게 황장군이 되거나 비가 오면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어야 한다.

어쨌거나 비장애인이 발만 들어 올리면 지날 수 있는 얕은 턱으로 생기는 이런 불편함을 늘상 겪어야 하는 휠체어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그 얕은 턱은 넘지 못할 산이다.

경사로를 설치해 놓으면 휠체어 장애인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끌고 오는 아파트 주민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으니 좋다는 설명에 약사는 그 생각까지는 못 했다며 반색하며 설치해 달라고 태도를 바꿨다.

하지만 턱의 높이를 실측하는 동안 약사는 다니는 사람들이 불편하면 안 되니까 인도까지 하지 말고 건물 경계석까지만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되면 경사가 높아진다고 설명했지만 난색을 표하는 약사가 야속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설치를 허용해준 게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다.

살짝 발을 들기만 하면 피할 수 있는 비장애인의 작은 불편함은 크고 아예 진입도 못하는 얕은 턱이 장애인에게 주는 큰 불편함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이런 사회적 인식의 차이가 오늘따라 너무 크게 느껴져 답답하다.

언제쯤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의 관점이 같음으로 당연하게 될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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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복지사. 책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종종 장애인권이나 인식개선을 위한 강연도 한다. 미디어에 비친 장애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장애당사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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