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하고 두렵겠지만 언젠가 밝은 날도 오겠지 ⓒ Unsplash

며칠 전, 여느 때와 같이 키보드를 두들기며 일하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흘끗 화면을 보았더니 반가운 분의 소식이어서 냉큼 확인했다.

그분은 내가 이전 직장에서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화교육 강사로 일할 때 알게 된 분이다. 장애 자녀의 대학 진학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셨다.

이후 통화로 들은 그분의 고민은, 딸의 대학 진학에 있어 아무런 정보가 없음으로 인해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며, 딸의 대학 진학을 생각하면 걱정이 너무 많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세상에, 10년도 더 전에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하셨던 말과 너무도 똑같아 진지한 고민이었음에도 혼자 웃음이 났다. 그리고 정말 단 하나도 바뀌지 않은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경쟁 구도 속에서 일반 학교, 일반 학급에서 도우미 없이 학교생활을 영위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기로 마음 먹었고 집에서 검정고시와 수능을 준비했다.

하지만 혼자 하는 공부가 더 어려웠고, 마음의 상처 또한 치유되지 않았다. 그래서 성적은 바닥이었다.

그런 와중에 대학 진학을 꿈꾼다는 것은 정말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이 있기는 한 건지, 대학에서 장애학생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인 특별전형의 경쟁률은 어느 정도인지를 아예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안개가 자욱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두렵고 무서웠다.

당시 부모님은 나에게 가까운 국립대 사회복지학과에 가길 원하셨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까워야 부모님의 케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 중, 고등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당연히 부모님이 통학을 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그 이외에는 아무 방법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국립대는 저렴하기 때문이다. 사립대의 반값, 혹은 그보다 더 저렴한 곳도 있다. 대학 등록금 부담이 줄어들면 어쨌든 가계에 위협이 덜 가기 때문에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셋째, 장애 자녀가 복지 쪽으로 진학하면 해당 분야에서 ‘장애’를 좀 더 이해받기 쉽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자녀가 본인의 장애로 인해 다른 장애인을 더 잘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장애인을 돕는 장애인!”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환상도 살짝 가미된 것 같았다.

놀랍게도, 서울에 올라와 또래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모님들의 생각이 하나 같이 똑같거나 비슷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다들 생각치도 못한 부분에서 공감해서 놀랐다.

만약 30대의 내가 10대의 나와 내 가족에게 진로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아마도 나는 이런 조언을 해줄 것이다.

첫째, 무조건 가까운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과한 보호다. 여러 대학에서 학내 장애학생지원센터를 통해 학습 또는 생활을 돕는 도우미 학생들을 붙여주고 있다.

비장애인 친구들에겐 아르바이트의 개념으로, 장애학생의 입장에선 합리적이고 떳떳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활동보조를 받으며 충분히 독립적인 대학생활이 가능하다. 기숙사 또한 편의시설을 마련해주는 곳도 많고, 수업을 포함한 여러 방면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부분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대학생활에 부모님이 개입했을 경우 자녀가 여러 활동에 제약을 받게된다는 점이다. 교우관계, 연애, 교내외 활동 등 모든 점에서 그러하다.

스무 살이 넘으면 모두가 성인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내가 돌봐야 할 내 새끼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걱정, 근심으로 마음이 찢어지겠지만, 자녀의 인생을 멀리 내다 보았으면 좋겠다. 내 자식이 평범한 대학생활을 누리길 바란다면 말이다.

둘째, 학비 또한 답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각종 장학제도와 학자금 대출을 통해 충분히 학교를 다닐 수 있다. 학교마다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주는 장학 혜택도 있고, 외부 장학금도 많다. 요즘은 국가 장학금도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편이니까. 그래도 정 안되면 학자금 대출을 했다가 차후 취업하여 갚는 방법도 있다. 여러 방법을 활용하면 불가능하기만 한 일이 아니다.

셋째, 장애인이라고 사회복지만 가능한 게 아니다. 최근엔 다양한 분야에서 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다른 분야에선 장애인을 뽑지 않는다고? 객관적으로 요즘 취업이 힘든 건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모든 청년들이 떠안은 숙명이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서 장애인 일자리가 생기고 확산되고 있다. 때문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즉, 처음이 오히려 처음이기 때문에 더 유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복지 분야가 장애인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분야도 아니다. 장애인이라 오히려 더 힘든 부분도 존재하고, 사람들의 이해도도 다른 분야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딜 가도 비슷하다면, 본인이 원하는 분야를 선택해 조금이라도 더 흥미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이 또한 멀리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주신 그분에게, 30대의 내가 10대의 나에게 이야기 하듯 여러 이야기를 해드렸다. 나의 경험과 나의 이야기가 정답은 아니겠지만, 하나의 또 다른 길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앞으로 장애 청소년의 진학을 위한 정보가 정리, 제공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장애 학생의 경우에는 진학을 위한 박람회나 입시설명회 등이 적극적으로 제공되고 있는데 반해 장애학생은 여전히 정보가 없는 것에 많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전국 대학에 어떤 장애학생 서비스가 있으며, 어떤 사례가 있는지를 잘 정리해 장애 청소년에게 제공하게 된다면, 장애 청소년의 부모님들이 조금은 안심하고 자녀를 사회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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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혜 칼럼리스트
서울시립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다.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아 월급의 대부분을 문화생활에 쏟고 있으며, 주말에 집에 있으면 몸이 쑤시는 몹쓸 병 때문에 어디론가 자꾸만 나들이를 떠나곤 한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칼럼 지면을 통해 여성, 청년, 장애인으로서 겪은 고유의 경험과 생각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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