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모습 ⓒ Unsplash

업무와 관련해 교육갈 일이 생겼다. 교육지는 서초역 근처. 3일 간 동료와 함께였다. 강남 일대의 교통 상황을 고려해 7시로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해 집을 나섰다. 그렇게 출발하면 늦어도 8시 30분 전에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교육은 9시 20분경에 시작하므로 최소 한 시간 가량 대기를 하다가 교육장에 들어갔다.

문제는 점심시간이었다. 교육지 바로 뒤편에 식당이 많은 동네가 있다. 함께 간 동료는 나온 김에 맛있는 것을 먹자며 그곳에 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길을 나섰다가 계단만 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며 돌아 나왔다.

그리고 정 반대편에 있는 정문으로 갔다가 바깥으로 빙 둘러 식당에 겨우 갈 수 있었다. 솔직히 전동휠체어를 타는 나야 손가락만 까딱하면 갈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동료는 그 먼 길을 함께 걸어야만 했다. 힘들다고 “나는 계단으로 갈 테니 돌아와!”라고 하기엔 동료의 입장에서 너무 의리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마음이 쓰이는 것이니 동행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막상 그 마을에 갔음에도 휠체어가 들어가는 집을 찾기가 힘들었다. 메뉴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았고, 굳이 점심을 먹으러 거기까지 고생해서 간 보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평범한 찌개를 사 먹었다. 좀 더 맛있는 점심을 기대했지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식단도 그저 그랬으므로 아쉬운 마음이 컸다.

첫날 그 동네에 가기 위해 무리한 우리는, 다음 날엔 점심시간이 두 시간이라 차라리 좀 더 편한 곳에 가서 먹자며 고속버스터미널 주변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은 평지이고 갈 수 있는 식당이 많으니 선택의 폭이 넓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여정 또한 고생의 연속이었다. 비장애인이라면 눈에 보이는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로 곧장 가면 그뿐일 길을, 사람이 많은 사이 사이를 비집고 엘리베이터를 몇번이나 타며 식당을 찾아나서야 했다.

겨우 도착한 식당에서도 다른 자리가 났지만, 휠체어로 앉을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는 자리가 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일상적인 일이라 익숙하다 치더라도, 같이 동행한 사람까지 나의 고충을 경험해야 하는 상황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두 시간의 점심시간 동안 밥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복귀하자는 우리의 계획은, 급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빨리 달려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마지막 날, 오전에 일이 생겨 교육에 조금 늦게 가게 되어 지하철로 가게 되었다. 우리는 종로 3가역에서 만나 3호선을 타고 고속버스터미널 역까지 가기로 했다. 안 그래도 사람 많고 길도 복잡한 와중에, 엘리베이터를 몇번이나 갈아타고 식당을 찾다가 벌써 지쳐버렸다. 그래서 또 눈앞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3일간의 여정에 체력은 바닥나고 감기 몸살까지 걸려버린 동료에게 괜스레 미안했다.

항상 이 모양이다. 취약한 편의시설 때문에 겪는 나의 고충은 항상 내 주변 지인들에게까지 전파된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겠지만, 나의 힘듦이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는 것은 전혀 유쾌한 일이 아니다.

환경적 요인이 아니라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그 중간 정도에 마음이 머무른다. 그렇다고 어찌 답도 없는 일이고 답답하기만 하다.

최근엔 나의 절친한 친구가 나를 보호하려다 어르신들과 싸우기도 했다. 어찌 그렇게 휠체어 손잡이를 무례하게 잡는지! 내 휠체어가 공공재인듯 아무나 잡고 밀고 당겨대는 통해 내 친구는 벌써부터 화가 나 있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화를 내진 않는다. 처음엔 좋게 타이른다.

“어르신, 죄송한데 이거 잡으시면 위험하세요...”

실제로 위험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애초에 남의 물건을 함부로 잡는 것은 아주 무례한 일이다. 그럼에도 기분 나쁨을 꾹꾹 눌러 담고 “위험하다”는 말로 겨우 포장해서 웃으며 좋게 말하면 보통 좋게 돌아오는 반응이 없다.

“아니 그것 좀 잡았다고 되게 뭐라 그러네.”

일반적인 반응이다. 이번에도 어떤 할머니가 이런 류의 반응을 했고, 내 친구는 “위험하다”고 재차 타일렀는데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친구를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다.

“아니! 젊은 사람이! 좀 그럴 수도 있지! 버릇없게 거참!”

삿대질과 함께 돌아오는 이런 반응들. 서울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엔 황당하고 어이없어서 그냥 말을 말았는데, 이제는 나도 내 친구도 참지 못한다.

무례를 범했으면 미안한 줄 알아야 하는데 나이로 짓누르는 사람들의 뻔뻔함에 치가 떨리니까. 그래서 같이 언성을 높이고 싸우게 된다.

상황이 종결되면 내 친구는 화가 나서 표정이 좋지 않고, 나도 역시 화가 났지만 나 때문에 괜히 이런 상황이 생긴 것 같아(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지만) 눈치를 보게 된다.

놀러 가는 길에 괜히 이런 일이 생겨 기분을 망친 것 같아 미안하고, 또 나를 보호하려는 친구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나의 비장애 지인들에겐 그야말로 극한 동행이다.

세상에 이런 동행은 없었다. 이것은 우정인가, 고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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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혜 칼럼리스트
서울시립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다.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아 월급의 대부분을 문화생활에 쏟고 있으며, 주말에 집에 있으면 몸이 쑤시는 몹쓸 병 때문에 어디론가 자꾸만 나들이를 떠나곤 한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칼럼 지면을 통해 여성, 청년, 장애인으로서 겪은 고유의 경험과 생각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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