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영화 같은 삶을 꿈꾼다. 현재 상영작은 길 한복판에 갈 곳 잃고 버려진 엄마와 아들이라는 프레임에 맞춘 작품이다. 영화 속 주연은 엄마와 아들, 조연은 가족, 선생님, 지나가는 사람들.

한때는 푸른 야자수 아래 하얀 파라솔 그늘에 누워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며 꽃처럼 환하게 웃는 로맨스 코미디의 주인공인 줄 착각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흙먼지 날리는 붉은 사막위의 도로에서 아들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끝도 모르는 길을 걷게 또 걷게 되는 하드코어 고난과 역경의 장르다.

종종 조연들이 자동차를 타고 등장해 물과 먹을 것을 주고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물론 가끔씩 스쳐는 길 위를 헤매고 있는 다른 엄마와 동질감으로 얽혀진 동료애를 느끼기도 하지만 각자 다른 시선으로 지나칠 뿐이다.

지나가는 색색의 자동차 위의 타인들은 때로는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주연배우들은 구경거리로 여긴다.

아예 길가에 차를 세우고 대놓고 쳐다본다.

한술 더 떠서 전화로 지인들을 부른다.

여기 구경났다고.

본인들이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줄 모르고 마치 영화를 감상하듯 두 주인공을 바라본다.아들은 주위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

엄마는 이런 상황이 한없이 부끄럽다.

이제는 얼굴에 더께가 앉아서 뻔뻔해지기도 하련만 오늘도 엄마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쯤 되면 목숨 건 고난도 액션 영화라도 단독 주연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들의 손을 놓을 수 없다.

아들이 이 영화의 첫 번째 미션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들을 위해 황량한 사막에서 무엇이든 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아들과 엄마의 인생에 관한 모든 결정권을 행사해야 한다.

두 인생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가족이나 선생님들께 혹은 동료 엄마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엄마, 올마이티[Almighty]

아들이 엄마를 부르기만 하면 없던 초능력까지 발휘하여 그것이 무엇이든 아들 앞으로 대령한다. 이제 영화는 액션 히어로물이 된다.

그러나 [전지전능]이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 항상 아들의 상태를 살피고 그에 맞추어 수시로 진로수정을 해야 한다.

이렇게 장르를 넘나드는 버라이어티한 영화의 주연으로 발탁되고 나서 기뻐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랬다.

선물 같은 작고 해사한 생명을 처음 마주한 순간 가슴 벅찬 감동으로 기꺼이 이 영화의 주인공 캐스팅을 허락했더랬다.

그 해맑은 모습으로 나에게 와준 것만으로 아들의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했었다.

이 중요한 걸 자꾸 까먹는 건 나이를 먹어서일까,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조급함일까.

이 영화의 갈증 수준이 어떠했더라도 엔딩만큼은 오프닝과 같이 아름답기를 바라며 오늘도 한 걸음 더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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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칼럼리스트
우리아이발달지원센터를 운영하며 장애인들의 교육과 사회적 융합에 힘쓰고 있다. 컬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고자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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