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으로 힘들어하는 지수 ⓒ최선영

"엄마, 머리가 너무 아파요."

"병원을 다니는데 왜 계속 이러지?..."

지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알 수 없는 두통과 구토의 원인을 찾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처음 두통이 시작되었을 때 동네병원을 갔다. 일주일 감기약을 먹고 다음 일주일은 독감이라고 주사도 맞았다. 기침도 열도 없이 머리가 아프다는데 감기와 독감이라는 병명으로 병원은 지수를 붙들었다.

그러다 신경외과를 찾았다. 신경외과에서는 편두통이라고 했다. 검사를 해도 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으니 가장 흔한 원인불명의 편두통 진단을 내렸다.

지수는 다시 엄마 손에 이끌려 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원에서는 기가 약해서 그렇다고 했다. 죽어도 먹기 싫은 한약을 지수는 제 손으로 먹었다. 지수는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죽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통과 어지럼 거기에 울렁거리는 속을 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종합병원을 찾았다. 종합병원에서 단 5분 만에 메니에르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내과 신경외과 한방이 아닌 이비인후과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약물로 치료되지만 방치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다소 과장된 듯한 의사의 말에 지수는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공감을 했다. 정확한 진단과 처방으로 지수를 힘들게 하던 증상들은 3일 만에 사라졌다.

“어서 와.”

“너 아픈 거 맞아? 이제 다 나은 것 같은데.”

“아냐, 나 아직 아파.”

“아픈 애가 이렇게 잘 먹어? 이제 다 나았어. 꾀병 부리지 말고 그만 퇴원해.”

“티 나?”

“호호, 티 나지. 이렇게나 잘 먹는데.”

“호호”

지수는 어느덧 친구들의 병문안을 즐기고 있었다. 그 시간을 즐기며 퇴원을 생각할 즈음 갑자기 찾아온 가위눌림. 가끔 잠자리를 무섭게 했던 그 가위눌림이 지수는 대수롭지 않았다.

“누가 흔들어주면 곧 괜찮아지는데...”

그 생각으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애써 바둥거려보았다. 그러다 깨어났다. 조금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몸을 뉘었다. 또 가위가 눌렸다.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런데 몸은 어떤 힘에 의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을 조여오는 그 힘은 옆에서 나를 흔들며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의 말 따위로는 소용이 없었다. 할머니의 기도가 생각났다.

“우리 지수 다리 꼭 낫게 해주세요 하나님...”

누워있는 지수 ⓒ최선영

할머니가 찾던 하나님...

“하나님이 계시면 살려주세요. 열심히 살게요.”

지수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간절히 외쳤다. 그리고 정신을 잠시 잃었다. 깨어난 지수는 엉엉 울었다. 너무 무서웠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철없던 시간을 후회했다. 얼마나 살고 싶어 하는지를 지수는 깨달았다.

퇴원하던 날,

“이게 마지막 주사입니다.”

간호사의 말을 듣고 맞은 주사는 지수의 온몸을 꼬이게 만들었다. 한의사는 아니지만 그쪽에서 일하던 지인이 달려와 꼬이고 있는 근육들을 풀어주었다. 결국 지수는 그날 퇴원하지 못했다.

“늘 같은 약을 썼는데 그동안 이상 없더니 왜 이런지... 이상하네요.”

의사도 간호사도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만 가로저었다.

“일단 밥이라도 먹자. 일시적으로 이럴 수 있다니 기다려보자.”

엄마 민선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을 하며 지수의 입에 밥숟가락을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그 와중에 배가 고픈 지수는 그 밥을 받아먹으려 했다. 순간 밥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입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제대로 씹을 수 없었고 입술도 곧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떡해. 흑흑.”

침착하게 마비 증상이 풀리기를 기다리던 지수도 그때는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 그동안 마음 깊은 곳에 붙들고 있던 생각을 함께 내보냈다. 나는 장애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쏟아냈다.

“같이 가.”

“빨리 와.”

아무리 달려도 지수는 앞질러 가는 친구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로 행복했던 꿈에서 깨어났다. 땀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꿈이었네... 그래 또 꿈이었어.”

지수는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언젠가는 달릴 수 있을 거야. 세상에는 기적이란 게 있잖아. 내가 처음부터 장애인도 아니었고.”

지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인어공주처럼 다리가 순식간에 건강해지는 상상을 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누가 장애인 취급하는 것도 싫었고 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수의 꿈은 이루어질 가망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 졸업반이 되었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지수를 부르는 그분의 손길이었을까...

알 수 없는 두통 그리고 입원 퇴원을 앞둔 경험들은 지수 안에 있던 수많은 편견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뇌 병변 장애 친구를 보면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흘리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제대로 말을 알아듣지 못해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때는 답답해하며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했다. 그런 모든 생각의 밑바탕에는 “나는 장애인이 아니야. 지금 잠시 불편해진 것뿐이야. 언젠가는 예전으로 난 돌아갈 거야.”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밥을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는 자신의 몸을 보며 지수는 자신보다 더 장애 정도가 심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했던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을 붙들고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장애를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사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열심히 살자.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자.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살자.”

퇴원 후, 통원치료를 받던 중 열심히 살겠다는 결심에 대한 실천을 하기로 했다.

한 달 학원 다니다 강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두었던 일어 공부를 다시 하기로 했다.

늦은 시간 무언가에 끌 리 듯 택시를 타고 00대학 앞 서점을 갔다. 그 밤 지수가 들고 온 교재는 불량이었다. 다시 서점을 가서 교환하고 택시를 타기 위해 터벅거리며 걷는 걸음을 세운 것은 교회에서 특별집회를 한다고 홍보하고 있는 교회 사람들의 미소였다.

그곳에서 지수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수는 그곳에서 장애인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한 사람을 보았다.

목사님 말씀을 듣는 지수 ⓒ최선영

망막색소 변성증으로 시각장애인이 된 목사님을 만났다.

“내가 시각장애인이 되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이 되고서야 장애인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장애인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장애인이 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게 해주셨습니다. 내가 만난 장애를 절망이 아니라 희망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저는 시각장애인들의 목사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소명입니다. 혹시 이 자리에 어떤 이유로 장애가 있는 분이 계시다면 장애인이 된 것을 받아들이고 나와 같은 장애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기도해보세요.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멋진 장애인으로 사십시오.”

지수는 30년을 오직 자신의 성공을 위해 살았던 시간을 부끄러워하며 차라리 장애인이 되어 값있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이 감사하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는 내가 만난 장애를 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그 밤 내가 겪었던 그 시간을 통해서야 겨우 내 안에 있던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내 장애를 내 인생으로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살아봐야겠다는 늦은 결심을 했다. 이제 목사님 말씀을 통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더 분명해졌다. 난 멋진 장애인이 될 거야. 나 같은 장애인을 위해 그리고 비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멋진 장애인.”

지수는 하늘을 보며 환한 미소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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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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