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인간동물원 ⓒ 네이버

이 사진 속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울타리 밖에 있는 어린 흑인 소녀가 귀여워 백인 어른이 과자를 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그게 상식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우리 안에 갇힌 흑인 소녀에게 밖에서 구경하던 한 백인 관람객이 마치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주듯 먹을 것을 건네고 있는 장면이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나면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1958년 벨기에에서는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이 존재했다. 183가구의 아프리카 콩고인들을 데려다가 미개인이란 이름으로 전시한 세계박람회였다.

말 그대로 인간동물원이었던 셈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야만시하고 경멸하며 우리 안에 가둔 역사는 이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여러 사례가 있었다.

오타 벵가(Ota Benga)라는 콩고 사람은 1906년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동물원에서 원숭이처럼 갇혀 지내며 사람들이 요구하면 강제로 춤까지 춰야 하는 치욕적이고 비인간적 대우를 받다가 결국 모멸감으로 자살한 비극적인 사례도 기록되어 있다.

이런 인종차별의 야만적인 역사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이후로 흑인들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무려 1800년대, 1865년의 노예해방은 우리에게 얼마나 멀고 먼 과거처럼 여겨지는가.

그러니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역사는 당연히 흑인도 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발걸음이 더디다.

흑백이 분리된 세면대와 버스 모습 ⓒ 네이버

노예해방 이후 거의 백 여년의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이후에도 사람들의 느린 인식은 여전히 인종차별의식에 단단히 매여있었다.

흑인의 것과 백인의 것이 명백히 분리된 시설들과, 버스조차도 백인의 자리와 흑인의 자리가 분리돼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백인이 우선 탑승하고 남은 뒷자리에 겨우 흑인이 탈 수 있었다.

그 유명한 로사 파크스의 ‘버스보이콧’ 사건(1955)이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노예해방 이후로도 오랫동안 가해진 흑인에 대한 차별을 우린 그저 몇 장의 사진들과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로만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이해하는 것과 공감하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다.

영화 ‘그린북’ ⓒ 네이버

그런 의미에서 영화 ‘그린북(Green Book, 2019)’은 1960년대에 가해졌던 미국 사회의 흑인에 대한 차별을 이 시대의 우리가 매우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게 한 영화였다.

천재적인 흑인 피아니스트였던 돈 셜리와 그의 운전기사 토니 발레롱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흑인과 백인,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로 만난 두 주인공이 8주 동안의 크리스마스 연주 투어를 떠나며 벌어지는 길 위의 이야기, 두 사람의 성장과 우정을 다룬 버디무비이며 로드무비다.

그들이 미국의 남부 깊숙한 지방들을 투어해야 하는 탓에 꼭 필요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린북’이다. ‘그린북’은 1936년부터 약 30년간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들을 위한 안내 지침서 역할을 했던 초록색 작은 책자였다.

뉴욕의 흑인 우체부였던 ‘빅토르 휴고 그린’이 만들었다는 이 책자는 1964년 미국인권법(Civil Right Act)이 제정되어 법적으로 차별이 없어질 때까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의 흑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호텔, 식당, 주유소 등등 흑인들은 얼씬도 못 하게 막는 곳들이 많았기 때문에 흑인을 받는, 흑인이 갈 수 있는 여행지 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돈 셜리 박사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흑인 숙소에서 잠을 자고 운전기사인 토니는 그보다 더 시설이 좋은 백인 숙소에서 따로 묵어야 하는 장면을 보며 그 당시 존재했던 흑백 차별을 실감할수 있었다.

게다가 연주자로 초빙해 놓고도 대놓고 무시하고 차별하는 백인들의 비열한 태도와 연주하기로 한 호텔의 식당에서조차 백인 전용이라는 이유로 돈 셜리의 입장을 저지하는 백인들의 모습은 겉으론 우아했지만 실은 무례하고 저질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 안에 그린북은 없는가?...

영화를 보면서 내내 내 안에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내 스마트폰 안에는 소위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편의시설 정보가 담긴 여러 개의 앱이 깔려있다.

지하철 환승역에 엘리베이터는 있는지, 장애인 화장실은 갖추어져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지하철 관련 앱만도 서너 개이고 장애인이 여행할 때 필요한 숙박 정보를 알려주는 숙박앱, 목적지 근처에 장애인들이 갈 수 있을 만한 식당이며 편의시설을 갖춘 건물들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들을 담은 일명 ‘배리어프리’ 관련한 앱들 말이다.

이런 앱들은 ‘장애인도 갈 수 있다’고 허용하는 자유의 증거인 듯도 하지만, 사실 어찌 보면 ‘어디든 갈 수 없는’ 장애인 현실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그린북이 어디든 갈 수 없는 흑인의 현실을 극명히 보여 줬듯이 말이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 ⓒ네이버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일상을 누리게 된 건 사실 최근의 일이다.

수많은 계단들을 산악등반하듯 오르내리며 지하철을 타야 했던 지옥 같은 일상이 어제 일처럼 떠오를 만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은 장애인들에게 철옹성 같은 요새였다.

위험한 리프트에서 장애인들이 사고로 다치거나 비참히 죽어가고 나서야, 많은 장애인들이 이동의 자유를 외치며 힘겨운 몸으로 바닥을 기고 철도를 점거하고... 세상의 모진 욕들을 다 얻어먹고 나서야 겨우 쟁취한 성과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지만 역시 우리 사회 인식은 더디기만 해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형식적으로는 엘리베이터와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진 곳이 많아졌지만 형식만 갖췄을 뿐 실제로 장애인이 사용하기 불가능한 곳도 아직 많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는 여전히 장애인은 '집에 있지 왜 나왔냐'는 볼멘소리를 들어야 하고 장애인들을 자신들의 세금을 축내는 세금 먹는 하마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차가운 비아냥이 깨진 유리조각처럼 곳곳에서 날카롭게 밟힌다.

그린북이 존재하던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인 것이다.

그린북이 필요했던 세상에서 그린북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갔듯이 이제는 장애인들에게도 우리 안의 그린북, ‘배리어프리’ 지도나 앱이 따로 필요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차미경 칼럼리스트 ㅅ.ㅅ.ㄱ. 한 광고는 이것을 쓱~ 이라 읽었다. 재밌는 말이다. 소유욕과 구매욕의 강렬함이 이 단어 하나로 선명하게 읽힌다. 나는 내 ‘들여다보기’ 욕구를 담는데 이 단어를 활용하겠다. 고개를 쓰윽 내밀고 뭔가 호기심어리게 들여다보긴 하지만, 깊이 파고들진 않는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동작, 쓱... TV, 영화, 연극, 책 등 다양한 매체가 나의 ‘쓱’ 대상이 될 것이다. 그동안 쭈욱 방송원고를 써오며 가져 왔던 그 호기심과 경험들을 가지고... (ㅅ.ㅅ.ㄱ. 낱말 퍼즐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