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의 ‘꿈꾸는 느림보’(회장 문순덕)는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과 자립을 위해 부모들이 모여 만든 자조 모임입니다.

자조 모임(Self-help group)이란, 공통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자발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집단 구성된 개인이 도움을 얻는 모임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의 지적장애인들의 부모 자조 모임인 레벤스힐페가 60여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첫 번째 출발 모임이라고 합니다.

자조 모임의 중요한 줄기는 ‘정보 보급’, ‘지지’, ‘옹호’라고 볼 수 있지요. 여기서 말하는 ‘정보 보급’이란 전문가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의 각자 경험적 정보를 통해 바람직한 서비스를 얻기 위한 자료를 다른 구성원들과 공유,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지’는 개인적 친밀감 속에서 동료애, 격려, 긍정적 견해 등 상호 지지의 뜻이며, ‘옹호’는 개별적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과 도움과 의견을 나누는 지지대 역할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안산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꿈꾸는 느림보’는 현재 500여명의 회원이 서로의 긴밀한 정보 공유를 통해 지지와 옹호라는 자조 모임의 정의가 모범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지역사회내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꿈꾸는 느림보’는 소통, 이해, 나눔, 협동을 모토로 유년기, 아동기를 거쳐 성인기에 이르는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따뜻하고 행복한 양질의 삶터를 가꿀 수 있도록 상생과 공생을 위한 조력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발달장애 관련 부모교육이나 장애인식개선 모임을 비롯, 당사자들의 다양한 또래 모임으로 구성된 동아리 활동이 특화된 안산의 대표적인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 중, 지역자원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꿈꾸는 느림보 동아리는 댄스, 미술, 배드민턴, 풍물, 탁구, 수영, 천연비누 만들기 등 다채롭게 구성되어, 발달장애인의 동기부여가 되고 나아가서는 재능과 소질을 찾아 특기로 발전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성장의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꿈꾸는 느림보 축제 '우리는 꽂이다' 전시. ⓒ김은정

지난 12월 1일, 안산시평생학습관 대강당에서 꿈꾸는 느림보의 축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꽃이다’라는 축제 테마가 성환희 시인의 시처럼 뭉클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 너무 늦게 피었다고 너는 꽃이 아니라고 아무도...생각하지 않는다.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나 너 기다리고 너 나 기다리고..... 우리는 서로 꽃피는 날이 다를 뿐.......”

느리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는, 부지런한 느림보들의 축제와 찰떡같은 어울리는 제목을 선택한 안산 부모님들의 내공이 스멀스멀 마음속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꿈꾸는 느림보 '그려봐'동아리 전시작품들. ⓒ김은정

이번 축제에 참여한 여러 동아리 중에 미술동아리(담당 조비아)의 작품 전시가 유난히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아마 제 아들 규재처럼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우리 발달장애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인가 봅니다.

미술 동아리, 이름하여 ‘그려봐’

우하하... 꿈꾸는 느림보 부모님들은 작명 센스가 탁월합니다. 축제 테마는 ‘우리는 꽃이다’, 미술동아리는 ‘그려봐’... 이런 미적 관능 넘치는 부모들의 결속력이 꿈꾸는 느림보가 약진되는 원천이 되는 것일까요?

벽에 걸린 그림들을 하나하나 보자니 놀람과 감동이 몰려왔습니다. 감동이 몰려온다는 식상한 표현조차 희망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와! 이런 표현을... 이런 색으로... 이렇게 과감한 선으로...

꿈꾸는 느림보 '그려봐' 동아리 전시작품들. ⓒ김은정

규재 뒤를 쫓아다니며 주워들은 그림 공부로 안목이 조금 높아진 저는 요즘 제법 서당 개 풍월을 읊어댑니다. 화실에서 갈고 닦은 화려한 기술의 그림과 그저 본능으로 끄적거리는 용감한 터치가 매력인 우리 발달장애인의 그림과의 다른 점, 흥미로운 표현들을 이젠 조금, 아주 조금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지요. 여전히 아들 규재 작품을 잘 못 해석해서 화백선생님들께 안타까움의 꾸지람을 듣기는 합니다만...

이번 꿈꾸는 느림보의 ‘우리는 꽃이다’ 축제에서 ‘그려봐’ 전시에 출품한 꿈나무 작가들을 소개합니다.

가로세로 선으로 좋아하는 색을 고집스럽게 표현하며 특히 ‘쵸코쵸코’ 작품이 인상 깊었던 김규민 작가,

머뭇거리며 자신 없어하던 그림의 사물들이 점점 자신있게 크게 표현되고 사물관찰 관심이 많아진, 축구를 좋아하는 김동욱 작가.

마커를 주재료로 쓰며 사물을 선으로 분할하며 채색을 이어가는 김민재 작가.

타요의 폴리 캐릭터를 좋아하며 꿈나무 화가답게 그림과 글자로 소통하는 김정후 작가.

선과 선을 이으며 자유로운 터치가 돋보이는 김진형 작가.

보라, 빨강, 분홍을 유난히 좋아하는 뚝딱맨의 팬, 김하은 작가.

명작을 재해석해서 그리는 것을 즐기며, 보노보노 캐릭터를 재미있게 표현하는 민윤재 작가.

만화캐릭터와 주니어네이버 동요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유수인 작가.

색연필을 재료로 물고기를 다양하고 독특하게 그리는 유채린 작가.

밝고 예쁜 색으로 가족을 그리고 꽃과 집 그림으로 따뜻함을 표현하는 윤수경 작가.

맛있는 음식을 다양한 색과 선으로 표현하는 이지선 작가.

인물 표현에 관심이 많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그림으로 잘 표현하는 최원영 작가.

꿈꾸는 느림보 '그려봐' 동아리 전시작품들. ⓒ김은정

발달장애가 있는 초등학생, 중학생들의 거칠지만 자유로움이 있는 이 그림들!

서로 꽃피는 날이 다른, 느림보 ‘꽃봉오리’들의 이 그림들!

잘 그리려는 욕심에 우물쭈물 겁내는 선이 아닌 찰나의 성실함으로 쭉쭉 대담한 선으로 이어지는 이 그림들!

세상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낙서 같은 그림이라도 그대로 마음에 꽂히는 작품이 있다고. 그것은 기술적인 노련함이나 잘 그리려는 욕심을 초월한 ‘생명의 위대함’일 것이라고. 창작이라는 행위는 세상과 타인을 향해 생명이 외치는 질서로서 존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완벽한 기교로 구도와 색채에 자부심의 흔적이 보이지만 그 토대에 있어야 할 심지가 보이지 않는 겉보기에 화려한 눈의 즐거움은, 생명이 마음에 호소하는 고요한 파동에는 이길 수 없다고.

이것이 발달장애인들의 그림 창작에 잠재되어 있는 연금술이라고...

세상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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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칼럼니스트 발달장애화가 이규재의 어머니이고, 교육학자로 국제교육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본능적인 감각의 자유로움으로부터 표현되는 발달장애예술인의 미술이나 음악이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적 가치로 빛나고 있음을 여러 매체에 글로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며 장애인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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