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이슈가 장애계의 화제가 된지 오래이다. 서울시는 2009년 탈시설 장애인을 위한 시범사업 이후 2010년부터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를 운영하여 탈시설 장애인들의 지역사회복귀를 위한 자립홈(체험홈)과 자립생활주택을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의 목적은 지역사회 자립을 희망하는 거주시설 이용 장애인에게 맞춤형 전환서비스(자립생활주택)를 제공하여 지역사회 적응을 지원하고 삶의 질 향상과 통합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에 다른 지자체에서도 유사한 사업을 하고 있다.

정부도 ‘포용적 복지국가’라는 틀 안에서 '지역사회 통합 돌봄 기본계획'(커뮤니티 케어)을 수립하고 이 가운데에서 장애인의 탈시설 이후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을 위한 다양한 준비로 분주하다.

이렇듯 온 나라가 탈시설의 계획에 빠져 있는 이때 오히려 시설로 갈 수 밖에 없는 척수장애인이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시도협회장을 통해 연락을 받은 내용은 이러하다.

강원도 산촌에 사는 척수장애인 A씨는 오래전에 경수 5~6번을 다쳤다. 경수 5~6번이면 일상의 대부분을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최중증의 사지마비 척수장애인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그는 그동안 노모께서 수발을 해 주었다.

밥 먹여주고 신변처리해주고 이런 저런 잔심부름을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던 노모께서 암 판정을 받으시고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을 해야만 하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당장 식사수발 및 신변처리를 해 줄 사람이 없어서 긴급히 지역의 관계기관에 활동지원요청 등 긴급복지지원을 신청하였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긴급하게 도움을 줄 인력이 배정되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인근 장애인단체나 자립생활센터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뾰족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장은 인근에 있는 친척들이 와서 밥은 먹여주지만 신변처리까지는 못해준다고 한다. 차상위의 어려운 살림이라 사람을 쓸 수도 없고 부부는 별거 중이라 서로 도움을 주기는 어려운 사항이다. 이런 상황에 수소문을 하여 척수협회 상담실로 도움 요청을 하게 되어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A씨는 더 이상 어머님이 본인의 수발을 들어줄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고, 산골이라 활동지원사의 도움도 어려워서 고민을 하다가 어렵게 우리에게 시설로 들어갈 수 있게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고 한다.

강원도 내에 시설들도 대기를 해야 된다고 하고, 당장은 집에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안 되어 요양병원에 잠시 입원을 하였다가 받아주는 시설이 있다면 그곳에서 지내고 싶다고 한다. 전국 어디라도 갈 수 있다고 했다. 제주도에 자리가 있다면 갈 수 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척수장애인에게 숙명과 같은 삶이라는 생각에 많이 우울하다. 활동지원제도의 사각지대로 외면을 받는 최중증의 척수장애인들의 우울한 미래이다.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부모가 돌보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극단적으로 시설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시설로 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지역 간 간극이 큰 활동지원제도의 전국적 통일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전국 어디에 있던 균일한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데 지자체의 재정자립도에 따라 시간이 달라지고 산골에 있다고 활동지원이 거부된다면 포용적 복지국가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다.

A씨는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이 분이 노후에도 삶의 질이 하락되지 않고 살 수 있었으면 한다. 탈시설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제도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증의 장애인에게도 같은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물리적으로 시설이나 와상의 장애인이 머무는 집안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오히려 도움 없이 갇혀 있는 집안이 더 시설일지도 모른다. 규정으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상황적으로 판단하여 신속히 과감한 지원을 하는 선진적인 복지제도가 필요한 때이다.

긴급복지도 골든타임이 있다. 그 시간을 보내면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상처가 생기고 그 상처는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꺾는 악순환이 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것이 나라다운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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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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