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 ⓒ최선영

당신이 없는 시간 - 아내 이야기

“문자 보내. 들어가는 길에 마트 들렀다 갈게.”

남편의 말에 아내는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문자를 보냅니다.

“문 활짝 열어 놔.”

남편은 비좁은 상자에서 혹시라도 떨어질까 봐 고기를 누르는 채소들 위로 대롱대롱 있는 힘을 다해 매달린 과자봉지들의 아우성을 한가득 안고 집안으로 들어섭니다. 문을 열고 들어올 손이 없었던 이유를 알겠다는 듯 아내는 남편을 보며 웃어 보입니다.

“한 달은 먹어도 되겠다.”

“당신이 사 오라는 것 다 사고 혹시 몰라서 내가 다른 것도 좀 샀어.”

“딸랑 2박 3일 갔다 오면서...”

“그래도...”

남편은 어제부터 바빴습니다. 재활용을 모아서 분리수거해 놓고 음식물 쓰레기도 깨끗하게 비워놓고 해놓은 빨래도 예쁘게 개켜서 옷장과 서랍에 넣어놓았습니다. 청소하고 마지막은 장보기. 남편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 듯 자리에 앉습니다.

장애인 아내와 함께 사는 비장애인 남편의 집 비우기 전 바쁜 일상입니다.

“괜히 어울리지 않게 절약한다고 추운데 달달 거리지 말고 따뜻하게 하고 있어. 입맛 없다고 식사 건너뛰지 말고 뭐라도 찾아 먹고, 맛있는 거 많이 사놨으니까. 그래도 못 먹겠으면 당신 좋아하는 파스타 시켜 먹어. 빨래 나오면 빨래통에 그냥 넣어둬. 갔다 와서 내가 하면 되니까. 세탁기 제대로 작동할 줄도 모르면서 괜히 고장 내지 말고. 청소도 그냥 둬. 문단속 잘하고. 중간중간 전화할게.”

“응 운전 조심하고 잘 갔다 와. 빨리 와.”

“하하, 일 끝나야 오지. 일 끝나면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올게.”

그들은 이렇게 2박 3일 볼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을 커피 향을 나누며 달랩니다.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는 아내와 남편. ⓒ최선영

그리고

“우왕~ 혼자다. 난 자유부인이다”

아내는 남편의 부재가 처음에는 이렇게 홀가분합니다.

빨리 퇴근하라고 안방에서 재촉하는 남편의 잔소리 없이 마음껏 일을 할 수도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쓴소리하는 남편이 없으면 아내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도 됩니다.

늦은 아침을 만나고 싶지만 애 학교는 보내야 하니까 일찍 일어나기는 합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별빛이 내려오는 깊은 시간이 되어야 뭘 하든 잘 되는 심야형 인간을 이해 못 하는 아침형 남편이 없으면 엄청 많은 일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홀가분한 마음은 잠시, 평소 남편이 올 시간이 되면 아내는 남편을 기다립니다. 안 오는 줄 알면서 시계를 힐긋거리며 기다리게 됩니다.

그렇게 당부에 다짐까지 받고 간 남편의 말을 아내는 듣지 않습니다.

입맛이 없어서 아침을 건너뛰고 점심은 평소처럼 대충 먹고 저녁은 쓸쓸함이 더해져 뭘 먹을지 막막해집니다. 입맛 없다고 투덜거릴 때면 잠시만 하고 폭풍 검색해서 브런치 카페에서 본 듯한 메뉴를 짜잔 하고 만들어주는 남편이 간절해집니다.

함께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 마음이 더 애틋해집니다.

그 애틋함에는 불편함도 커다랗게 자리합니다.

저녁상을 함께 차려주는 손이 없으니 아내의 손이 두 배로 바빠지고 화장실 불 끄기 문단속도 모두 아내의 몫이 됩니다. 싱크대에 올려놓기만 하면 분리수거해주는 손의 부재로 아내의 손이 그걸 해야 합니다.

별로 해주는 것도 없는 것 같았는데 아내는 이럴 때 알게 됩니다. 밥하고 설거지 말고는 남편이 다 해줬다는걸.

청소 빨래는 쉬운 줄 알았습니다. 청소는 청소기가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 줄 생각했습니다.

청소기가 못하는 청소가 더 많았고 세탁기가 하지 않는 세탁물도 있었습니다.

왔다 갔다 하면서 롤러로 바닥에 널브러진 머리카락과 먼지를 거둬내는 걸 왜 그렇게 중간중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하는지 남편이 없으면 알게 됩니다.

남편이 집을 비운 지 24시간도 안되었는데 벌써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이걸 내가 해야 하다니...”

아내는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남편이 없는 사이 아내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야심 차게 세워놓았던 야무진 심야 계획은 실천 없는 허무가 돼버렸고 빨리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빈둥 멀뚱거리며 반가운 남편의 전화만 기다립니다.

그리고 남편이 오는 시간을 앞당기려고 일찍 침대에 누워버립니다. 잠도 오지 않는데 불 끄고 애써 잠을 청합니다. 내일을 앞당겨 남편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 ⓒ최선영

당신이 없는 시간 - 남편 이야기

까탈스러운데 입까지 짧은 아내. 남편은 아내를 위해 마트를 들립니다.

“문자 보내 들어가는 길에 장보고 갈 테니.”

“응”

아내가 보낸 문자는 역시나입니다. 밥반찬을 할 생각이 없는 건지 온통 군것질거리밖에 없습니다.

이번에도 남편은 그냥 알아서 장을 봅니다.

그래도 물어보는 건, 맘대로 사들고 가면 왜 이걸 샀냐고 어설픈 주부 행색을 하는 아내의 볼멘소리를 들을까 봐입니다. 어울리지 않게 고기를 매끼 먹고 싶어하는 아내는 등심을 보더니 해맑은 미소를 보입니다.

그 미소에 하나라도 땅에 떨어뜨릴까 봐 낑낑거리며 들고 들어간 잠깐의 수고에 큰 대가를 받아든 것처럼 남편의 마음이 편편하게 펴집니다.

이렇게 가끔 집을 비우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일을 만나면 처리해야 할 내일의 일보다 집 걱정이 더 커집니다. 깔끔떠는 아내는 남편이 없는 동안 어질러진 집을 치우겠다고 어설픈 청소를 할 테고 남편이 돌아왔을 때 몸살 났다고 소질도 없는 안마를 시킬 것이기에 남편은 반질반질하게 만들어놓고 2박 3일 정도는 눈 감고 있으라는 당부를 하고 또 합니다.

아내는 분명 남편을 생각한다는 마음에 작동도 못하는 세탁기를 만지작거릴 것이고 어쩌다 작동이 되어도 건조대에 생각 없이 올려놓았다 누구 것인지 분간을 못해 수건을 아무 자리에 나 접어 넣어둘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럼 또다시 정리해야 하는데 어차피 또 할 일을 수고스럽게 아내가 하는 건 시간 낭비란 생각이 들어서 그것도 절대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밥하고 설거지하는 걸 세상에서 제일 잘 하는 아내는 집안일은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늘 주부는 극한 직업이라고 생색을 내곤 합니다.

이 부부는 천생연분인 것 같습니다. 남편은 설거지는 정말 하기 싫어합니다. 아내가 아파서 일어나지 못하는 날, 명절 후 말고는 절대 설거지를 하지 않는답니다.

다행히 명절은 일 년에 두 번이고 죽을 만큼 아픈 날이 아니고는 아내는 일어나서 밥과 설거지는 꼭 자기 손으로 합니다. 설거지를 남편이 하면 또다시 정리해야 한다고.

그들이 서로 잘하는 집안일이 다르다는 게 다행입니다.

처음부터 남편이 청소를 잘 한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할 줄 몰랐습니다. 아내도 그랬습니다. 남편만큼 할 줄 아는 게 없었습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불편한 아내가 어떤 것을 힘들어하는지 이야기하며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지금은 각자 맡은 부분은 서로가 만족할 만큼 잘 해내고 있습니다.

집을 비우는 시간이 남편에게는 제일 힘든 일입니다. 집 밖에서 자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범한 듯하지만 엄청 겁이 많고 차분한 듯하지만 한없이 덜렁거리는 아내의 긴긴밤이 걱정스럽기 때문입니다.

서운한 듯 아쉬운 표정으로 ‘잘 갔다 와-’하고는 돌아서서 자유를 외치며 좋아할 아내 얼굴이 그려집니다. 그러다 저녁을 먹을 즈음 아내는 남편을 간절히 그리워할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리고 그런 아내가 남편은 또 얼마나 보고 싶을지.

남편은 얼른 잠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얼른 내일이 되고 또 내일이 되어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갈 수 있도록.

얼른 잠들고 싶은데 쉽게 잠이 들지 않습니다. 자꾸만 아내 얼굴이 아른거려서.

딸보다 아내가 더 보고싶은 밤.

“오늘 밤은 꿈에서나 보자.”

남편은 혼잣말을 하며 눈을 지그시 감고 아내 얼굴을 떠올립니다.

다정하게 웃고 있는 아내와 남편. ⓒ최선영

그리고 그들은 함께 하는 행복한 꿈을 꾸었습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결혼생활은 평범하지 않고 많이 힘들거나 특별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의 삶은 많이 힘들거나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며 행복을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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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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