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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의 ‘생애포트폴리오’ 꼭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과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11-08 13:45:33
규재엄마로서 늘 고민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형제 없이 외동이로 성장하는 규재에게 타인과 다양한 감정 교류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어야 할 텐데... 규재가 지닌 개인적 특성상 유난히 타인과의 교류나 의사소통 의지가 약한 성향인데다가 가정환경마저 외동이로 크는 것이 엄마로서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어떻게 하면 규재가 즐겁게 여러 사람들과 접촉하며 타인의 감정을 읽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에이블아트에 관한 간담회에 초대 받아 발달장애인의 그림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떤 주간보호센터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토요일, 센터를 이용하는 소그룹의 이용자들에게 그림 활동을 놀이 형식으로 자유롭게 접해 주고 싶다는 센터 관계자의 의견에 치료나 교육이라면 전문가가 해야 하지만, 가볍게 체험 활동 같은 놀이 미술이라면 규재와 함께 그림으로 서로를 의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미술의 자유로움 속에서 타인 인식 방법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규재가 좋아하는 그림그리기로 관계 맺기를 유도한다면 규재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타인과의 교류를 큰 피로감 없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 되면 색종이와 크레파스, 풀, 도화지 등을 들고 규재를 앞세워 센터로 형과 누나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토요일 주말프로그램으로 이용자 분들이 전부 모이지는 않았지만 오붓하게 대여섯이 모여 그림위에 색칠을 주거니 받거니, 색종이를 찢어 풀만 바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주워다 붙이기만 하는 사람도 있고, 규재가 나뭇잎을 그리면 똑같이 따라 그리다가 상동행동으로 박수 두세 번 치고,,, 옆에 있던 규재도 같이 박수 한 번 따라 치고...

언뜻 부산스럽고 산만한 듯 보였지만 분명 규재와 형과 누나들은 색칠하고 붙이는 과정에서 손길을 스치며 서로의 존재를 외워가는 듯, 두 달이 되어갈 무렵엔 각자 자기가 선호하는 위치를 골라 셀프 지정석이 정해졌고 간혹 옆자리의 친구가 다른 쪽에서 배회하고 있으면 서로를 챙기는 모습도 보이는 감동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규재와 형과 누나들이 즐겁게, 산만하게, 시끌벅적 소란스럽게, 따로 또 같이 놀며 1년3개월을 보내고, 센터의 토요일 모임이 없어지면서 아쉽게도 그림 놀이는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우리와는 다른, 저들만의 공식과 방법으로 세상과 관계맺음을 습득해 가는 모습을 보니, 부모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난 후 당사자들이 사회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성장기록이 꼭 필요한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규재의'생애포트폴리오'표지.  ⓒ이규재 에이블포토로 보기 이규재의'생애포트폴리오'표지. ⓒ이규재
그림 놀이를 하는 동안 규재와 색칠을 주고받던 센터 형, 누나들과 만나는 횟수가 늘 때마다 그 분들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 형, 누나들의 ‘과거’가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졌습니다.

‘저 분은 어느 학교를 다녔을까?’
‘이 분은 다리 상처가 심한데, 언제 다친거지?’
‘이 분은 왜 풀에 저렇게 집착을 하지? 계기가 있었나?’
‘저 분은 글자를 아는 것 같은데 본인 이름도 쓸 수 있겠는데?’
‘이 분은 한동안 손톱을 물었나봐, 엄지손톱이 너무 짧은데 아프지 않을까? 근데 손톱 무는 거 못 봤는데 습관을 고쳤나? 어떻게 고쳤지?’
‘저 분은 동생이 있나? 규재를 동생처럼 익숙하게 곁에 두네’

센터 관계자에게 이 사람 저 사람에 대해 물어보니, 성인이 되어 센터에 오는 분들은 가족관계나 보호자, 사는 동네, 약 복용 여부 같은 현재 사항만 파악하고 있을 뿐, 과거 학교 이야기나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일, 입원을 한 적이 있거나 병을 앓은 적이 있거나.... 등등 지나온 일들은 알 수가 없다. 자폐인은 당사자의 설명을 듣기 어려운 특성도 있고, 부모님들이 지난 일들을 일일이 설명해 줄 수도 없을 뿐더러, 당장 센터 이용에 필요한 사항도 아니라서...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관계자는 ‘이용자’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 날 따라 유독 ‘이용자’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외롭게 다가오던지, 마음에 돌 하나 얹은 느낌이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부모가 세상을 뜨고 혼자 남은 규재는 ‘이용자’라고 칭해지며, 여러 번 다른 사람으로 바뀔 ‘직업인’인 조력자와 과거가 지워진 채, 아무도 지난 시절을 기억해 주지 않는 ‘이용인’이 되어 살아가겠구나...

아! 그렇구나...
이건 너무 삭막하고 쓸쓸하지 않은가!
과거가 사라진 자폐인의 성인기와 노년기라니...

지금 사회에서는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남겨진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들이 그룹 홈이든 공동체이든 단독세대자립이든, 지역사회 속에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많은 운동가와 활동가와 가족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뛰고 있습니다.

당사자와 당사자, 당사자와 조력자 그리고 지지자들과의 관계에서 그 당사자가 어떤 부모와 형제와 어떤 시절을 보냈고, 무슨 즐거운 추억이 있었는지, 무슨 일을 즐겨했는지, 어떤 상황과 사물을 무서워하는지, 화가 날 땐 어떻게 표현을 하고 해소를 했었는지... 그 당사자의 과거 시간들을 모르고 진정한 인간 대 인간으로의 조력과 지지가 가능할까요?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만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그저 의식주만을 ‘돌봄’으로 그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생애포트폴리오!!! 과거가 지워지지 않도록 기록을 남기면 어떨까요?
약물이나 건강상태는 개인별 의료기록이 존재하듯이, 발달장애인으로 성장해 온 자녀의 성장기록들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대로 사진이나 간단한 설명을 함께 기록으로 남겨나간다면, 이 담에 우리 자녀들이 사회인이 되어 많은 조력자들과 삶을 이어갈 때 양질의 삶이 되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사견이나마 내놓겠습니다.

현재 이 ‘생애포트폴리오’에 대한 부모 교육을 하는 선생님도 계시고, 직접 자신의 논문을 바탕으로 실질적 구상을 시작한 교육학자도 있고, 오래 전부터 중요성을 홍보 교육해 온 기관이나 단체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의 ‘생애포트폴리오’의 필요성을 자각한다면 주변에서 가이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많습니다.

우리 같이 생각해 봅시다.
우리 아이들의 과거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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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은정 (boktt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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