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뒹구는 거리 ⓒ최선영

‘바스락바스락’

가을이 흩어지는 소리가 그의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녀의 손을 꼭 잡은 그는 가을이 전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가을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인 것 같아.”

“가을은 이별을 말하기에도 충분한 계절이지.”

그가 사랑을 말할 때마다 그녀는 이별을 예고합니다.

“우리 이제 이러지 말자. 그냥 사랑하기에도 아까운 시간들이잖아.”

그는 빠져나가려 하는 그녀의 작은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잡아채며 말합니다.

“힘들잖아.. 앞으로도 힘들 거고."

“우리 행복했잖아. 함께라서. 앞으로도 그럴 거야. 조금만 힘내자. 조금만.”

“언제까지? 너도 곧 지칠 거야.”

“난 지치지 않아. 날 믿고 조금만 더 그 자리에 있어줘.”

“그래... 네가 지칠 때까지 있어줄게. 힘들고 지치면 말해.”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곧 허락하실 거야.”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아. 알잖아. 너도.”

“변하게 만들어야지. 우선 우리 부모님부터.”

그녀는 그의 말에 체념한 듯 고개를 살짝 내 젖고는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담으며 2년 전 그들이 처음 만난 그 시간으로 기억을 되돌립니다.

카페 주인과 이야기하는 그녀 ⓒ최선영

“여기서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죄송한데 개는 들어올 수 없어요.”

“안내견은 어디나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저희 가게는 개는 안됩니다.”

카페 앞에서 안내견과 함께 있는 그녀는 가게 문을 막고 서있는 주인의 말에 난감한 표정을 합니다."

“안내견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법으로도 금지되어있습니다.”

그들을 지나던 그가 주인에게 말을 건넵니다.

“어쨌든 저희 가게에 개는 못 들어옵니다.”

“안내견 동반 출입을 막으면 어떡하라는 겁니까? 안내견은 이분에게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막무가내로 출입을 막는 가게 주인에게 화가 났습니다. 어쩌면 변하지 않는 이 사회에 대해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녀의 친구가 왔습니다.

“은성아, 무슨 일이야?”

“응... 지노 때문에 못 들어가고 있었어.”

“아니, 여기도?”

그녀의 친구 희정은 긴 한숨을 내쉽니다.

“가자, 다른데 가면 되지 뭐.”

“저 잠깐만요. 이렇게 피하면 절대 이 사회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가 그녀와 희정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합니다.

“아니... 됐어요. 이런 곳을 만날 때마다 신고도 해보고 했지만 사람들이 변하기는커녕 오히려 장애인을 싫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앞이 안 보이면 그냥 집에 있지 뭐 하러 나와서 다른 사람들 불편하게 하느냐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요. 신고를 당하고 벌금을 내게 되면 장애인을 더 싫어하게 되는 결과만 낳을 뿐이에요. 인식은 변하지 않는데 법으로 해결해보려는 것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고맙습니다. 큰 힘이 됩니다. 세상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 ⓒ최선영

힘든 마음을 숨기며 덤덤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그의 마음이 찌릿하고 아팠습니다. 그날 이후 문득문득 그녀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지나갔습니다. 스치는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덜컥거리며 마음 어딘가에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거리를 지날 때마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그녀의 그림자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거리에 없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은행을 찾은 그는 그곳에서 뜻밖에도 그녀와 함께 있던 희정을 만났습니다. 희정이 근무하는 은행과 가까운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던 그날, 그녀는 가게 문 앞에서 거절을 당하고 다시는 그 거리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는 희정을 만나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그녀에게 찾아온 어둠의 그림자는 그녀의 많은 것들을 달라지게 했습니다. 대학을 휴학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준비를 하며 자신에게 찾아온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참을 수없이 슬픈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안내견 지노. 지노는 그녀의 눈이자 가장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런 지노가 거절당할 때는 씩씩한 그녀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퇴근 후,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는 희정의 말에 그가 같이 가겠다고 말을 합니다.

“왜요?”

“모르겠어요. 그냥... 자꾸만 생각이 났어요.”

“호기심이면 그만두세요. 은성이 외모에 끌려서 그러는 사람 전에도 있었어요.”

“호기심은 아닙니다... 그냥 꼭 한 번 다시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호기심이잖아요.”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솔직히. 하지만 호기심은 아니에요. 그냥 한 번 더 만나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날 그는 그녀와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습니다. 호기심이 아닌 감정이라는 걸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그게 무엇인지를 알아가며 그녀에 대한 마음이 깊어졌습니다.

“내가 너의 눈이 되어 네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여줄게.”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대신해주는 건 지노로도 충분해. 그냥 이대로 편하게 지내자. 감정을 키우려고도 말고 다른 색으로 물들이려고도 말고.”

“난 이미 깊어졌고 커졌고 충분히 그 색이 달라졌어. 아니 처음부터 내가 가진 색은 그랬어.”

“지노와 난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아. 세상은 우리를 받아주지 않을 때가 많아. 네 부모님은 어느 편일까? 대부분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쪽에 서 있어.”

그녀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은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2년간 이어지는 그의 설득에도 여전히 그 마음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여전히 그녀와의 사랑을 지켜내려 합니다.

그들이 함께 할 때는 늘 지노도 함께 합니다. 안내견 지노를 거절하는 식당을 만나고 카페를 만날 때마다 그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왜 지노가 필요한지 지노는 다른 개와 다르다는 것을 알리려고 합니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빨리 달라져서 시각 장애인들이 안내견을 데리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사람들 마음에 있는 쉽게 변하지 않는 편견, 그 보이지 않는 장벽과 그는 여전히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위해. 더 나은 우리 사회의 내일을 위해.

그의 부모님도 그녀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다름을 받아들일 것이라 그는 생각합니다.

바스락거리는 거리 끝에 맛있는 냄새가 솔솔 거립니다.

다정하게 가게를 들어서는 그들 ⓒ최선영

“배고프지? 밥 먹자.”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가게로 들어갑니다. 그들 곁에 나란히 걷던 지노도 함께.

“어서 오세요.”

“셋이요.”

“호호, 네 이쪽으로 앉으세요. 안내견 이름이 뭐예요?"

“지노에요.”

“잘생겼네요. 이름도 멋있고.”

가게 주인의 따스한 말에 그들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퍼집니다.

“봤지? 세상은 달라지고 있어.”

“......”

“우리 부모님도 분명 허락해주실거야. 조금만 참자. 포기하지 않으면 달라질 거야. 우리만 변하지 않으면 돼. 난... 너 없이는 안 돼. 알지? 그리고 나... 지노 없이도 못 살아.”

“고마워...”

“절대 흔들리지 마. 너 씩씩하잖아.”

“응...”

안내견과 나란히 걷고 있는 그와 그녀 ⓒ최선영

그와 그녀의 사랑이 그의 부모님도 세상도 변화시킬 것이기에 그들은 두 손을 잡고 내일을 기대합니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함께 하는 세상이기를 바라며 그들은 오늘도 지노와 함께 걸으며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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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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