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성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태어나서부터 자라는 동안에 두 가지 중요한 자기인식을 가져야 한다. 하나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현재 있는 곳에서 환영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숙함도 성 정체성을 지니는데 있어 중요한 개념이다. 정숙함을 지니는 것은 내 몸은 내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내 몸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정숙함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보거나 만지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안다.

즉, 이는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가 타인에게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인식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 몸은 내 것이다”라는 인식이다.

어린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학습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숙함은 성적인 관심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개념이다. 이런 정숙함을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낸 사람은 없지만 아이들은 이것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예를 들어, 엄마를 따라가서 여탕을 이용했던 어린 아들이 어느날 갑자기 여탕에 안 간다고 떼를 쓰면서 아빠 따라 남탕에 간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안다.

어릴 때는 벌거벗고 사방을 뛰어 다니며 즐거워했던 아이가 6-7세쯤 되면 자신의 벗은 몸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어하며 문을 닫고 옷을 갈아입는 일이 발생한다.

아이들의 이러한 인식은 놀라운 것이다. 이런 일이 갑자기 일어나면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경계가 지어지는데, 이것은 아이 측에서 만드는 것이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건강한 경계짓기는 어린 자녀가 자기 몸에 대한 통제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단계 중의 하나이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올바른 정숙함을 배우고 발전시키는 것에 도전을 받는다.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자신을 보호해 주는 건강한 경계짓기를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지적능력이 낮아서이기보다는 경계짓기가 이루어지는 기회들을 다른 비장애 또래들만큼 갖지 못하는데 있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자조활동(씻기, 닦기, 착탈의하기, 대소변 활동하기 등)이나 기초적인 생활기술들을 배울 때 비장애 또래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부모들은 발달장애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이 생긴다.

부모들이 발달장애 자녀들에게 자조기술과 기초생활기술들을 가르칠 때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는 자녀들이 배워야 하는 기술이고, 두 번째는 자녀들이 그 기술들을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옷을 갈아입는 활동은 사적 활동인데, 부모가 다른 일을 하면서 자녀에게 옷 입는 일을 사적 공간에서 가르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방문을 닫고 스스로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숙함은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가장 어려운 기술이자 개념이면서 또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정숙함을 배우는 일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구체적인 삶의 순간들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숙함에 대해 부모들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으며 또 부모들이 정숙함을 자녀들에게 어떤 태도와 행동으로 보여주고, 요구하고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은 매 순간 성장하고 있으며, 그렇게 성장하는 동안에 그들은 열심히 배우고 있다(장애가 있는 아이들조차). 그래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듣고, 요구받는지에 대해 아는 것은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비장애 아이들은 뭔가를 빨리 배우기 때문에 그것을 배우기 위해 많은 시도가 필요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프라이버시의 침해와 같은 문제를 별로 겪지 않는다.

그러나 발달장애 아이들은 뭔가를 배우는 게 느리고 또 많은 시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프라이버시 침해가 이루어지고 그럼으로써 이들은 정숙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 발달장애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성 정체성을 발달시키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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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옥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년 동안 조기교육실, 그룹홈, 생활시설, 요양시설, 직업재활시설 등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일하였다. 특수교육에서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주제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사회복지에서도 석·박사학위를 지니고 있다. 9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해 오고 있고, 부모교육과 종사자교육, 교사교육 등을 해 오고 있다.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에서 상·하반기에 걸쳐 발달장애인성교육전문가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단국대학교, 숭실사이버대학교 등의 외래교수로서 사회복지와 특수교육 관련 과목을 강의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성과 성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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