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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

기울어진 ‘기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10-19 09:14:17
그림을 그리던 규재가 불쑥, 중얼거립니다.

“옴마아~ 이규재는 아픈 친구입니다아~ 병원가서 나읍시다아~ 규재는 내과 가요오? 소아과 가요오? 이비인후과 가요오? 안과 가요오?” 온갖 진료 과목이 다 나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오늘 3시 20분에 마트에서 음료수 살 때 아줌마가 말했어요오~ 아픈 친구한테 양보해..말했습니다아~ 불쌍한 사람이야...말했습니다아~” 하교 때 들렀던 마트에서 누군가 하는 속닥거림을 귀 밝은 규재가 들었나 봅니다.

기억된 상황 설명을 스토리로 재생하기 힘든 규재의 기억 인출 방법은 토막토막 정지된 화면처럼 낱장으로 꺼내서 이야기합니다.

대충 감이 왔습니다. 마트에서 누군가 자신을 보며 하는 대화 속에서 어려운 단어는 흘리고,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만 귀에 쏙 담아왔겠지요. 아프다... 친구... 불쌍하다... 사람...이 정도 단어는 규재가 충분히 알고 있는 낱말이니까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장애, 장애인’에 대해 규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엄마 아들인 규재도 장애인이라고 일러 주고 있는 우리 집 가정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엄마와 자주 이야기하는 ‘장애인’을 설명하는 대화 속에서는 들은 적 없는 단어가 누군가 자기를 향해 수군거리는 말 중에 아픈 친구... 불쌍하다...가 들려오니 융통성 없이 곧이곧대로 표면적인 의미로만 이해할 줄 아는 규재는 이상했나 봅니다.

“이규재는 안 아픈데... 아프면 병원 가서 나아야 하는데... 상처 난 길고양이는 불쌍한데...규 재는 상처 없는데...”

마트에서 그 아줌마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으로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규재의 어눌한 언행을 조롱하는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분의 사고, 인식의 관점이겠지요.

왜!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해서 기울어진 온정적인 이미지만을 생산할까요?


영화나 언론에서 장애인의 모습은 장애를 극복하는 인간 승리와 신화 혹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절대 살아갈 수 없는 딱한 장애인의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불쌍하지 않은 장애인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은 것일까요?

장애인은 폼나게, 멋지게 살아 갈 수는 없을까요?

언젠가 <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라는 제목에 끌려 읽었던 책 내용이 생각납니다. 그 책은 장애인은 동정과 자선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착한 장애인’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사회 속의 장애인의 위치를 폭로하는 내용으로 기억되는데, 규재가 성인으로 성장해 가며 새삼 공감되는 부분이 되살아납니다.

아직 우리 사회 속의 장애인은 자선의 대상, 수동적 이미지, 항상 객체로 위치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정상성이 획일적으로 규정되는 우리 사회에서 ‘정상인’과 다른 장애인의 몸과 정신은 치료되어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잘못 뿌리내린 인식이 아직도 사회와 공간 속에서 은폐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규재 작 <아파트 불빛은 다 다르다.사람이 다르니까>ⓒ이규재 에이블포토로 보기 이규재 작 <아파트 불빛은 다 다르다.사람이 다르니까>ⓒ이규재
그러나 시대는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상생, 공존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조력이나 지지의 의미로 연결되어 가고 있습니다.

장애인도 여러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능동적인 주체로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장애인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사회야말로 ‘좋은 사회’일 것입니다.

이제는 불쌍한 장애인, 착한 장애인, 희생자 장애인 혹은 인간 승리의 장애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집단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고정된 견해와 사고)이 아닌, 장애인이 갖고 있는 잠재성과 가능성 등에 의해 개개인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사회’가 우리 모두에게는 필요합니다.

장애로 인한 차이가 차별의 근거와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있는 그대로 살아가며 사회와 소통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장애가 단순히 손상이나 결여가 아니라, 다른 지각 세계, 다른 생활 세계를 만드는 가능성의 영역임을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장애인들은 결여된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상을 경험하는 다른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우리 사회가 알아야 합니다.

이제껏 우리 사회에 설정되어 있는 장애, 장애인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왜 그 ‘기준’에 동의하고 있는 것일까요?

기울어진 ‘기준’을 깨고 장애인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주도권을 지니기 위해 ‘나쁜’ 장애인이 되겠다던 그 책 속의 글쓴이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순간! 규재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규재야! 넌 아픈 친구가 아니야! 넌 아주 건강하고 튼튼한 엄마 아들이고, 그림을 진~~~~짜로 사랑하는 멋진 화가잖아! 규재는 규재니까, 규재는 규재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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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은정 (boktt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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