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리나 ⓒWikimedia

나는 평소, 자기 전에 이응이에게 자기 준비물을 스스로 챙기도록 돕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아이는, 하루 이틀 반납 여유가 있는 학교 도서관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로 문득 생각이 나서 걱정이 되면, 쉬는 시간에 불쑥 콜렉트콜로 전화를 해서는, 자기 책이 생각하는 곳에 잘 있는지를 확인하곤 할 만큼,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이기 때문이다....(이 아이가 벌써 연채의 늪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아는 것인가?ㅋㅋㅋ)

아마, 나와 세대가 비슷한 사람들이라면 공감할텐데, 나는 이응이의 이런 전화를, ‘만득이 콜렉트콜’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일주일에 2, 3회 꼴로 걸려오기 시작한 이 전화가, 조금은 불편하기도, 거슬리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아이 본인도 워낙 꼼꼼해서 무언가를 빠뜨리는 일이 거의 없는 데다가, 엄마 아빠 역시 한 꼼꼼 하시는지라, 함께 챙겨야 할 것들을 못 챙겨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곰곰 생각하면서, 기저에 있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 보니, 불안이 높은 기질에, 완벽하고 싶은 맘, 지적 받기 싫은 맘, 잘 하고 싶은 맘 등을 갈무리 하는 방법으로, 그런 코핑 스킬을 선택한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니, 이젠, 편안하게 웃으면서, ‘왜? 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어서 또 전화 한거야?’라는 너스레로 전화를 받아 주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면, 이제 아들도 불안과 걱정을 누그러뜨리고는 웃는다.

며칠 전의 일이다.

아이가 잠든 후, 다 챙겨 놓은 아이의 가방에 알림장과 꿈가꾸기장(매일 독서록)을 사인해서 넣고, 한 번 더 체크하는데, 오카리나가 들어 있었다.

‘어! 오카리나는 어제 연습하는 날이었고, 오늘 수업 했을텐데… 왜 안 빼 놓았지?’

이렇게 생각한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 가방에서 오카리나를 빼 두었다. 아마도, 나름 꼼꼼한 엄마, 아이의 학교 생활에 관심이 많아 이런 것도 다예민하게 잘 챙겨주는 엄마라고, 무의식적으로나마 스스로에게 약간 도취되어 있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아들의 만득이 콜렉트콜이 또 울렸다.

나는, 뭐, 별일 아니겠지 하며 평소처럼 재미있는 농담이나 하나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 내 가방 속에 있던 오카리나 어디 갔어?’

‘어? 그거… 어제랑 그제 오카리나 하고, 오늘은 안 하는 날이잖아. 그래서, 엄마가 밤에 빼 두었는데, 왜?’

‘어떻게 해? 오늘 오카리나 한단 말야?’

‘왜?’

‘어제, **이가 말썽을 부려서 선생님께 크게 혼나는 바람에, 오카리나를 제대로 못해서, 오늘 또 할거라고 하셨단 말이야. 엄마! 집에 있으면 얼른 갖고 와줘.’

그야말로 요즘 애들 말로, ‘헐!’이었다.

마침, 그 날은 집에서 미친 듯이 제안서 하나에 매달리기로 했던 터라, 나는, 부랴부랴, 오카리나를 챙겨 들고, 1교시 쉬는 시간에 맞춰서 학교로 갔다.

마침, 이응이 반은 다른 선생님과 무용수업을 하고 있던 터라, 2교시 수업 준비를 해서 내려오고 계신 담임선생님과 복도에서 마주치게 되었고, 얼른 오카리나를 드리고는, 행여 누구에게라도 들킬 새라, 바람처럼 학교를 빠져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를 믿는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무슨 근거로(?),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한치의 의심조차 없이, 아이가 꼼꼼하게 잘 챙겨 둔 오카리나를 빼 두었던 걸까?

이응이는 여덟 살, 나는 마흔 한 살이라서 그랬을까?

나는 엄마, 이응이는 아이라서 그랬을까?

아이는 어른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성숙하고 실수도 잦으며, 아직 세상을 배워 나가는 존재이기에, 이런 것들을 좀 더 잘 할 수 있는 어른인 내가 이끌며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나는, 단지, 내가 엄마이고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껏 여덟 살 야무진 이응이가 잘 챙겨둔 오카리나를 빼놓는 실수를 저질렀다.

덕분에, 안 해도 되는 학교 방문까지 했으니, 엄마의 오만이 몸고생 마저 불러온 샘이 아닌가?

새삼, 오만한 엄마의 ‘전지적 엄마시점’을 내려 놓고, 아이와 아이의 능력, 아이의 가능성을 지금보다 좀 더 굳건하게 믿어 주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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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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