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인가 하와이에서 장애인 부모님들을 위한 정보 박람회 및 학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 부모 자격이자 회사일로 참석을 하였었는데 그중에 흥미로운 주제 하나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의 저축과 재정 준비 설명회였다.

아이들을 위한 재정 준비라니? 궁금한 마음에 설명회를 들었었다. 설명회에서 초청한 강사 중 한 분이 자폐증 아들을 둔 소아과 의사였는데 상당히 고소득층인 그분은 하와이 주의 장애 아동 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저축 프로그램을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끝내는 말로 그러나 아이를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저축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 세금을 열심히 내자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수백만불을 저축한다 해도 우리의 저축으로 아이의 평생을 책임질 방법은 없다고 나라가 그것을 하도록 하고 대신 우리는 성실한 납세자가 되면 된다고 그것이 우리 같은 부모들이 해야 할 몫이라는 말로 설명을 끝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부양의무제가 없이 성인 장애인에 대한 국가 책임제를 채택한 미국의 장애인 복지의 모토를 말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 장애인 뉴스를 통해 발달 장애인 국가 책임제를 촉구하는 부모들의 시위 소식을 접하게 된다. 안타까운 소식을 보며 멀리 떨어져 지내는 내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내가 사회복지사로 이곳에서 배운 미국의 복지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칼럼방에 여러 편에 걸쳐서 나누고자 한다.

미국은 만 18세가 되어 성인이 된 장애 아이들은 부모의 소득에서 서류상으로 분리가 된다. 한국처럼 부양가족 의무제가 없는 나라이므로 다시 말해 만 18세가 되어서 스스로 소득을 창출하기 힘든 장애가 있는 성인은 함께 사는 부모의 재산과 소득의 규모와 관계없이 나라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나라의 도움이라는 것이 약간의 재정적 도움이 아니라,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국가 책임제로 넘어가게 됨을 뜻한다.

부모가 백만장자이건 아니건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부모가 법적으로 아이를 책임을 져야 하는 만 18세가 넘었기 때문에 이 아이는 이제 국가의 책임이 된다. 물론 국가가 책임을 진다고 하지만 실상은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장애가 있는 성인은 가족과 함께 산다. 체력이 되는 한은 독립하기 어려운 장애인 자녀와 함께 살고자 하는 부모들이 현실적으로 가장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함께 거주를 할 뿐이지 성인이 된 장애인들의 돌봄은 대부분 이제 정부의 몫이 된다.

미국은 공교육인 특수 교육이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 만 21세까지 제공된다. 때문에 만 18세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몇 가지 선택지가 놓인다.

인지장애가 없이 신체장애만 있거나 인지 장애가 동반되는 발달 장애의 경우 아이의 능력에 따라 고기능성 장애의 경우 장애인 특별 입학과 도우미 서비스를 사용하여 대학을 가는 아이들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 바로 직장을 다니기도 한다.

만 18세에 자립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경우 보통 다른 비장애아이들이 전문대학 정도를 마치는 나이인 만 21세까지 대략 3년 정도 더 의무 교육인 특수 교육이 제공된다. 이 3년의 기간 동안 학교에서는 학업보다는 실질적인 자립과 직업에 대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제공한다.

만 21세가 넘어 이런 특수학교를 드디어 졸업하게 되는 성인 장애인들은 대부분 지역에 마련된 데이케어 프로그램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생활을 한다. 데이케어 프로그램은 센터 내에서 제공되는 여가 활동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직원들과 함께 커뮤니티로 나가서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다(그들의 하루 일과는 다음 편 칼럼에 직접 인턴을 하였던 내용을 기반으로 다시 소개하겠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직업 교육을 받고 일주일에 2-3일씩 파트타임으로 직장을 다니기도 한다.

이 외에도 성인이 된 장애인들의 거주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모나 다른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거주 형태가 가장 흔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지내기가 여의치 않거나 자식을 돌보기에 부모의 체력이 여의치 않은 경우 성인 장애인들은 자립 여부에 따라 장애인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정부의 보조비를 통해 얻은 개인 집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룹 홈이라는 환경으로 들어간다.

한국에도 적지 않다고 알고 있는 이 그룹 홈이란 어찌 보면 시설이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가정집에서 24시간 일하는 직원들의 도움으로 장애인 몇 명이 함께 생활하는 주거 형태이다. 내가 인턴을 하였던 곳의 그룹홈은 한 단지 내에 여러 채의 그룹홈이 함께 모여 있었고 이 그룹홈 단지안에 데이케어 센터나 작은 보건소, 사회복지 사무실 등등이 있었다. 마치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있는 듯한 형태였다.

더 나이가 들어서 혼자서 생활하거나 일반 직원의 도움으로 그룹홈에 생활하는 게 여의치 않는 의료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 연장자분들이 주로 가게 되는 양로원이나 요양원 같은 곳으로 옮기게 된다.

사실 한국에서도 많은 복지 시스템이 유사하게 실행되고 있다고 알고 있다.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런 시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재정 지원의 문제, 전문 인력의 구축, 다른 커뮤니티 자원과의 연계 등이 아닐까 싶다. 때문에 대략적인 미국의 복지 시스템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 편에서는 필자가 직접 일을 하면서 경험하였던 이런 기관들에서의 체험기를 바탕으로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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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니 칼럼리스트 현재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 도시가 속한 베어 카운티의 지적발달장애인 부서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바다 수영과 써핑을 사랑하는 자폐증이 있는 딸과 한발 한발 서로의 세상을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바다 꼬마가 사람들의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게 인생의 목표이다. 이곳에서 체험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와, 바다 꼬마와의 서툴지만 매일이 배움과 감동인 여정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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