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12일) 아침부터 봄비 치고는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쉬는 날이라 비가와도 무슨 걱정이 있으랴 하지만, 이날은 올해 처음 척수장애인들과 시각장애인들이 함께 산행을 가는 날이다. 전날부터 ‘비가와도 정말 가나요?‘ 라는 질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갑니다.‘라는 답변을 보냈다.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필자도 몇 번의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이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이다. 남들이 잘하지 않는 경험을 하는 것은 작은 용기가 되고 그 용기는 장애를 가지고 이 사회를 살아나가는데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사고로 장애를 입기 전에는 비가 오는 것이 커다란 변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고부터는 날씨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몸도 쑤시고 비 때문에 휠체어를 밀거나 제어하기가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손으로 우산을 들고 수동휠체어를 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굳이 비오는 날 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비가 오면 일체의 야외활동에 면죄부가 생긴다. 굳이 안가도 서로가 이해를 한다.

그러나 이번의 산행은 그럴 필요가 없다. 벌써 6년차의 산행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한 움큼의 작은 용기만 준비하면 된다.

한국트레킹연맹의 트레킹봉사단과의 인연은 2013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행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트레킹을 함께하면 좋겠다는 전문산악인들의 순수한 마음이 동기가 되어 적은 예산 속에서도 기꺼이 이 일들을 하고 계신다.

산행을 할 수 있는 특수휠체어를 주문제작하고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에티켓도 하나둘 배웠다. 처음에는 실수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제는 국내 최고의 산행 전문 봉사자가 되어 우리들의 필요를 알아서 준비해 주신다.

아침부터 내린 비로 약속장소에 설치된 텐트 모습. ⓒ이찬우

척수장애인을 위해 차량에서 바로 산행휠체어로 이동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이찬우

아침 10시에 모여서 출발하기로 한 우이령 입구의 약속장소에는 정말 비가 많이 내렸다. 조금 있으면 그치겠지 기다렸지만 기대를 저버렸다. 처음 봉사단에 오신 몇몇 분들도 우중산행이 가능한지 계속 책임자와 논의를 하였고, 필자에게도 와서 논의를 하였다.

함께한 장애인 가족들도 이런 날씨에 산행을 하다가 비 맞고 감기에 걸리면 안 되니 다음에 하면 안 되냐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필자는 단호하게 이야기를 했다. 비오는 날 산행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고... 비오는 소리와 풀냄새가 환상일 거라고....

처음 산행에 참가한 시각장애인분들도 설마 이런 날 산행을 한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그냥 약속장소에 모여서 인사하고 헤어질 것이라고 서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잠시의 소란과 갈등 끝에 산행을 가기로 최종결정을 하니 동작들이 매우 민첩해진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척수장애인들의 수고를 덜기 위해 차량에서 트래킹용 휠체어로 바로 이동을 하기로 했다. 먼저 6명이 한 조가 되어 대형 천막을 쳐서 비를 안 맞게 하여 휠체어로 이동을 시킨다.

추위를 막기 위하여 준비한 손수건으로 목을 감싸고 일회용 우비를 입히고 담요로 몸을 감싼 다음에 두꺼운 비닐을 머리가 들어갈 자리에 구멍을 뚫고 입힌 다음에 비가 들어오지 않도록 잘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이동할 때는 우산으로 씌어주어 가능한 장애인들이 비를 맞지 않도록 배려를 했다.

‘그렇게까지 모양새 없이 가야 되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이 봉사자들에게는 귀중한 훈련이 되고 기쁨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물샐틈없는 준비과정도 많은 경험을 통해 습득된 것이다. 그만큼 서로에 대해 알려고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처음 비오는 날 산행에 참여한 장애인들도 세심한 배려에 걱정을 덜고 귀한 경험을 하게 되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세상은 넓고 하고자 하는 것은 널렸지만, 우리에게도 조금의 용기가 필요하고, 도움에 대해 감사히 받는 마음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비는 세차게 오고 흙길은 진흙이 되어 이동 간에 봉사자분들이 어려움이 있었지만 서로의 마음이 통해서인지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다녀왔다. 5월의 여린 녹색의 향연과 나무사이로 내리는 빗소리, 옅은 안개가 주는 신비함, 미세먼지로 깊은 숨을 쉴 수 없었던 필자는 깊은 들숨 날숨으로 정화를 했다.

비오는 우이령은 신비감마저 든다. 휠체어로 이동하는 장면. ⓒ이찬우

중간 중간 이동 중에 쉬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모두의 표정이 밝다. ⓒ이찬우

도와주시는 봉사단 분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숲과 우리 일행 모두는 하나가 되었다. 함께 한다는 것,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던가..

산행을 마치고 돌아 온 그 장소에서 비가 쏟아지는 좁은 텐트 속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만찬을 했다. 봉사단들은 선채로 식사를 하면서도 빗물이 밥에 떨어져도 누구하나 불편함과 어색함을 표현하지 않았다. 귀한 추억을 위해 이야기꽃이 피었을 뿐이다.

비오는 궂은 날씨에도 장애인들의 산행을 위해 도움을 주신 한국트레킹연맹 관계자분들에게 다시 한 번 더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필자의 산행을 도와주신 분들과 함께. ⓒ이찬우

함께 모든 분들과 단체촬영. 감사합니다. ⓒ이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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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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