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영국의 브리스톨대학교 학생들과 화상통화로 언어교환을 하고 있다. 한국어 기초반을 수강하는 학생들이라서 한국 문화에 밝고 관심과 열정이 대단하다.

그중 뇌신경학을 전공하는 엘리자베스는 6월이면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오게 된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데 마냥 한국의 긍정적인 모습만 얘기해줄 수가 없어서 애를 먹었다.

엘리자베스는 천식이 있어서 한국의 미세먼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끼고 외출을 자제하라는 것 외에는 좋은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미세먼지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은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

지방선거 후보들이 내놓은 미세먼지 공약들은 마스크 지급, 공기청정기 설치처럼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발생원을 파악하고 각 지역 특성에 맞는 대책들이 이루어져야 할 터인데 앞에서만 반짝하고 그치는 현실은 우리나라의 모습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

이번에 엘리자베스가 이용하는 항공사는 대한항공이다. ‘빨리빨리 정신’에 입각한 친절한 서비스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겠지만, 그 이면엔 오너 일가의 갑질로 피해를 보는 직원들의 사정이 있다. 이쯤 되면 사회구조의 문제이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는 듯 보이나 그 속은 구멍이 숭숭 뚫린 꼴이다.

내가 맹학교에서 교육봉사를 시작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교육봉사를 마치면 시간대가 맞아 같이 귀가하는 시각장애인 동료 선생님이 있는데 지하철이나 버스를 같이 탈 때마다 이 사회가 얼마나 잘못 흘러가고 있는지 느낀다.

동료 선생님이 코레일 측에 시각장애 안내 요청을 했을 때 공익요원은 두 번 모두 그 자리에 나와 있지 않았다. 방향이 엇갈린 것도, 시간에 오해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자리에 나와 있지 않았고 찾는 전화도 없었다.

약자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와 복지는 없고 비장애인이 만든 세상에 장애인을 욱여넣는 조폭식 사회제도라 할 수 있겠다. 우측보행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급하다고 동료 선생님을 밀치고 갈 길을 가는 시민들의 모습 역시 이질감이 느껴진다.

동료 선생님과 내가 엘리베이터를 채 내리기도 전에 무작정 빨리 타버린다. 어떤 일이 그들을 그렇게 급하게 만드는 걸까? 내가 그동안 편리하다고 느끼며 살았던 대한민국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나 싶다.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한국의 모습이다.

엘리자베스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원래 살던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라고 했다. 영국과 미국 모두 복지 시설이 잘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엘리자베스 역시 나처럼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있는데 지금 요양병원에 계시며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했다.

한국의 요양원은 수도 적고 수면제 투약이 고작인 경우가 많다. 2015년 한 요양원에서 직원이 80대 노인을 밀치고 위협하는 일이 있었다. 작년에도 역시 말과 거동을 못 하는 치매 노인들을 상습 폭행한 요양 보호사가 붙잡히는 사건이 있었다.

이런 기사들을 접하면 할머니를 직접 보살펴드리는 것밖엔 대안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가 갈 길은 아직 멀다. 대세이며 다수이자 파워 엘리트인 지배집단에 모든 것이 맞추어 돌아가는 모양새는 분명 바뀌어야 할 것이다.

‘빨리빨리’ 진행된다고 해서 모두에게 편리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타자를 해치고 있다. 더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 사회를 조금 천천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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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준 칼럼리스트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학생이다. 숙명점역봉사단원, 평창동계패럴림픽 자원봉사자이며 시청자미디어재단에서 폐쇄자막방송모니터링단으로 활동했다. 대학생의 시각으로 장애인 이슈를 전하고 청년들의 장애인 운동과 봉사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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